조원경 세종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글로벌 금융시장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가장 위험한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금융위기가 제도권 은행의 과도한 레버리지와 탐욕에서 비롯됐다면, 이번 위기는 규제 강화 이후 급성장한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의 핵심인 사모대출 시장에서 촉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19일(현지시각) 사모펀드 인덱스는 주식시장 하락과 맞물리며 약 1% 하락한 1836.44를 기록했고 이후 금주 기준 약 2% 반등했지만, 투자은행들이 사모펀드 공매도 상품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 불안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이 지수는 S&P 500처럼 사모펀드 시장 전반의 성과를 추적하는 대표 지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여기에 글로벌 인공지능(AI) 시장의 과열 역시 또 다른 시스템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AI 시장은 2030년까지 1조8000억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2025년 현재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등 인프라 투자만 급격히 확대된 반면 실질적인 수익화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영란은행은 AI 기업 주가 상승이 2000년대 닷컴 버블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경고하며, 특히 부채 기반으로 형성된 투자 구조가 붕괴될 경우 글로벌 금융 시스템 전반에 충격이 확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모대출 위기의 본질은 기술적 진보와 거시경제적 악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드러난다. 우선 사모대출 펀드는 환금성이 낮은 중소기업 대출이나 장기 인프라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자 유치를 위해 분기 또는 월 단위 환매를 허용하면서 자산과 부채 간 구조적 미스매치가 심화됐다. 고금리 환경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경기 둔화가 가시화되자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가 급증했고, 이는 이른바 ‘그림자 뱅크런’으로 이어졌다. 블랙록과 같은 대형 운용사들이 환매 제한 조치를 도입한 것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또한 최근 몇 년간 사모펀드들이 높은 수익률을 쫓아 담보가 불확실한 SaaS와 AI 스타트업에 대규모 대출을 실행한 점도 위기를 키운 핵심 요인이다. 실물자산이 아닌 미래 성장성과 현금흐름에 의존한 대출 구조는 AI 수익성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면서 직격탄을 맞았고, 기술 기업들의 기업가치 하락과 함께 담보가치 역시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는 곧 펀드 자산의 대규모 상각으로 이어지며 시장 전반의 신용 리스크를 증폭시키고 있다.
여기에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가 결합되면서 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 간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고조되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고,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재차 확대됐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과 물가 안정 사이에서 정책 딜레마에 직면했고, 결과적으로 고금리 환경이 장기화되면서 사모대출에 의존하던 중소 한계 기업들의 이자보상배율이 급격히 악화됐다. 이는 결국 펀드 전반의 부도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사모대출 시장의 또 다른 문제는 자산 가치 산정의 불투명성이다. 사모대출은 상장 주식과 달리 매일 시장 가격이 형성되지 않고 운용사가 자체적으로 평가하는 장부가 방식에 의존한다. 그동안 이는 시장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실제 손실을 은폐하는 기능도 수행해왔다. 최근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실제 자산 가치가 장부가 대비 20~30% 이상 낮을 수 있다는 의구심이 확산되면서 시장 신뢰가 급격히 붕괴되고 있다. 신뢰가 사라진 시장에서는 질서 있는 자금 회수가 불가능해지며, 결국 투매와 시장 마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운용사들이 선택한 ‘환매 제한’은 위기를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시장 불안을 증폭시키는 역설적 효과를 낳고 있다. 환매 제한은 자산의 강제 매각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지만 투자자에게는 자금이 묶였다는 신호로 작용해 공포를 확산시킨다. 일부 대형 운용사 임원들이 사재를 출연해 환매 대금을 마련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으나 이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사모대출이 은행 시스템과 직접 연결되지 않아 전염성이 낮다는 낙관론도 존재하지만, 이는 금융 시스템의 상호 연결성을 간과한 위험한 판단이다. 사모펀드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우량 자산을 급매할 경우 그 충격은 전통 금융시장으로 빠르게 전이될 수밖에 없다.
미국발 사모대출 부실은 한국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해외 대체투자 비중이 높은 국내 증권업계는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국내 증권사들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과 사모대출 펀드에 수조 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왔으며, 해당 자산의 가치 하락과 환매 제한은 대규모 손상차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 해외 투자 자금이 묶이면서 국내 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장에 대한 유동성 공급 여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이는 신용등급 하락과 조달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금융권 전반의 자금 중개 기능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건설업 역시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 경색은 대형 인프라 및 부동산 개발 사업의 중단으로 이어지며 중동과 북미 지역에서 수익을 창출하던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 실적을 악화시킬 수 있다. 동시에 국내에서는 금융기관들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 전환 실패와 고금리 브릿지론 부담이 겹쳐 연쇄 부도 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 분양 시장 침체와 자금 경색이 동시에 발생하는 ‘퍼펙트 스톰’ 가능성도 현실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현재의 사모대출 부실은 단순한 특정 금융 부문의 문제가 아니라 AI 투자 버블과 지정학적 리스크, 고금리 환경이 결합된 복합적 시스템 위기다. 사모대출 시장은 그동안 AI 인프라 확장의 핵심 자금 공급원이었지만 이제는 그 부채가 금융시스템 전체의 리스크로 전환되고 있다.
만약 이 시장이 본격적으로 붕괴할 경우 이는 2008년과는 다른 형태의 ‘유동성 블랙홀’을 형성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2026년 현재의 위기는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이 만들어낸 마지막 거품이 꺼지는 과정이며, 한국 역시 증권사와 건설사를 중심으로 선제적 리스크 관리에 실패할 경우 그 충격의 중심에 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향후 전개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향방이 좌우될 중대한 분기점에 진입하고 있다.
조원경 세종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조원경 세종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