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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제이의 시대산책] '사' 자 면허가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

대한민국에서 ‘변호사’라는 직함이 지녔던 사회적 위상과 경제적 풍요는 오랫동안 공고한 성역이었다. 하지만 최근 대한변호사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그 성역의 벽에 깊은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이의 시대산책] '사' 자 면허가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

법조 시장의 포화와 로스쿨 제도의 역설

대한민국에서 ‘변호사’라는 직함이 지녔던 사회적 위상과 경제적 풍요는 오랫동안 공고한 성역이었다. 하지만 최근 대한변호사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그 성역의 벽에 깊은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응답자의 98%가 “경쟁이 치열하다”고 답하고, 대다수가 수임료 급감을 호소하는 현실은 이제 법조계가 단순한 불황을 넘어 ‘구조적 붕괴’의 초입에 들어섰음을 시사한다. 한때 ‘개천에서 용이 나는’ 통로였던 법조계는 어쩌다가 근근이 살아가는 고학력 노동자들의 각축장이 되었는가.

과거 사법시험 체제에서 변호사는 국가가 공인한 소수의 선발 인원이라는 희소성을 바탕으로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법률 서비스의 문턱을 낮추고 양질의 서비스를 보급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로스쿨 제도는 매년 1,700명 이상의 신규 변호사를 배출하며 시장의 문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문제는 공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반면, 법률 수요의 파이는 그만큼 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제학의 기본 원리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법조 시장에서도 예외 없이 작동한다. 설문조사 결과처럼 최근 5년간 수임료가 30% 이상 급감한 것은 시장에 풀린 공급량이 수요를 압도했다는 명백한 증거다. 과거 고액의 착수금을 당연시하던 관행은 사라지고, 이제는 플랫폼을 통한 가격 비교와 저가 수임 경쟁이 일상이 되었다. 30대 청년 변호사가 “근근이 살아야 하는 현실이 좌절스럽다”고 토로하는 배경에는, 전문직 면허가 더 이상 고소득을 담보하는 ‘황금 티켓’이 아닌, 치열한 자영업 시장으로의 ‘입장권’에 불과해진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서초동 지하철 2호선 교대역에 붙은 변호사용 AI 및 변호사 광고 모습.@사진 연합뉴스

AI의 습격과 유사 직역의 잠식, 설 자리를 잃는 변호사

변호사들이 체감하는 위기감은 단순히 인원수 증가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외부 환경의 변화는 변호사의 업무 영역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과거 변호사들이 수백만 원을 받고 수행하던 기초적인 법률 자문, 판례 검색, 서면 작성 업무를 단 몇 초 만에 처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특히 저연차 어소시에이트(Associate) 변호사들이 수행하던 실무 영역을 직접적으로 타격하며 신규 인력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여기에 세무사, 법무사, 노무사 등 이른바 ‘유사 직역’과의 끊임없는 갈등 또한 시장 포화를 가속하는 요인이다. 각 직역은 전문성을 내세우며 변호사의 고유 영역이었던 소송 대리권이나 자문권을 공유하려 시도하고 있으며, 정부 기관 또한 자체적인 법률 처리 시스템을 강화하며 민간 변호사의 개입 여지를 줄이고 있다. 결국, 변호사들은 내부적으로는 동료들과 ‘제 살 깎기’식 가격 경쟁을 벌여야 하고, 외부로는 기술권과 타 전문직권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사면초가의 신세가 된 것이다.

로스쿨 제도의 재설계와 ‘법조 고시화’의 늪을 넘어서

현장 변호사의 80%가 신규 배출 인원을 ‘과잉’으로 규정하며 정원 축소를 외치는 것은 단순한 집단이기주의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이는 고비용의 교육 과정을 거친 인재들이 시장에서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매몰되는 국가적 인적 자원 낭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로스쿨 제도는 ‘교육을 통한 양성’이라는 본래 취지보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에 매몰된 ‘신종 고시 학원’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변협이 제시한 로스쿨 정원 축소와 결원보충제 폐지 등은 시장 정상화를 위한 단기 처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변호사 인력의 질적 고도화와 영역 다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단순히 인원수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AI가 대체할 수 없는 고도의 전략적 법률 서비스 시장을 개척하고, 글로벌 시장이나 신산업 분야로의 진출을 가속화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 또한, 법률 서비스의 문턱을 낮추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최소한의 서비스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 수임료 가이드라인 등 시장 질서의 확립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변호사 업계가 겪는 진통은 전문직의 정의가 ‘권위’에서 ‘서비스’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 진통이 너무 가혹해 법조인들이 생존에만 매몰된다면, 결국 피해는 양질의 법률 조력을 받지 못하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변호사인데 근근이 산다"는 서글픈 고백이 개인의 무능이 아닌 구조의 비명이 될 때, 우리 사회는 이 전문직 양성 시스템 전반에 대해 진지한 재검토를 시작해야 한다. 단순히 ‘덜 뽑는 것’ 이상의, 법조 시장의 파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국가적 솔루션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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