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정인호 칼럼니스트] 2019년 4월 4일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고 노회찬 의원을 언급하다 약 20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방송에서 20초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누군가는 이를 “프로답지 못한 침묵”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AI 시스템이라면 그 장면을 ‘비효율적인 진행’ 혹은 ‘감정 통제 실패’로 분석할 가능성이 높다. 방송은 끊김없이 흘러가야 하고, 앵커는 언제나 냉정해야 하며, 전달은 명확해야 한다는 기준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장면을 실패로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더 깊은 진심과 인간적인 품위를 느꼈다고 말한다. 왜 우리는 완벽한 문장보다 멈춰버린 호흡에서 더 큰 울림을 느끼는 것일까?
소설 『안녕이라 그랬어』의 저자인 김애란 작가는 MBC 《질문들》에 출연해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인간에게는 있고 AI에게는 없는 게 하나 있었어요. 망설임인데요.” 이 짧은 문장은 AI 시대 인간다움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다.
AI는 가장 적절한 답을 빠르게 생성한다. 논리적이고 효율적이며 망설임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누군가의 상처 앞에서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답장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며, 혹시라도 상대를 더 아프게 할까 봐 문장을 삼킨다. 인간은 정답을 몰라서 망설이는 존재가 아니다. 너무 쉽게 말해버리는 것이 때로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망설인다.
그래서 인간의 망설임은 결핍이 아니라 배려의 흔적이다. 침묵은 무능함이 아니라 상대의 슬픔을 함부로 지나치지 않으려는 마음의 속도다. 손석희 앵커의 20초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방송에 대해 기술적으로 완벽한 진행보다 먼저, 한 인간으로서 감당해야 할 슬픔 앞에 서 있었다. 그 순간의 침묵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언어로 다 담을 수 없는 감정의 무게였다.
우리는 오랫동안 유창함을 능력이라고 믿어왔다. 말을 잘하는 사람, 빠르게 판단하는 사람, 막힘없이 설명하는 사람이 경쟁력을 가진다고 여겼다. 그리고 AI는 바로 그 영역에서 인간을 압도하고 있다. 이제 정보의 속도와 정확성만으로 인간의 가치를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아픔 앞에서 잠시 멈출 수 있는 힘, 효율보다 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정답보다 맥락을 헤아리는 태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을 오래 붙드는 순간들은 대부분 완벽한 문장이 아니었다. 떨리는 목소리, 끝내 이어가지 못한 말, 한참의 침묵 뒤에 건네진 짧은 한마디 같은 것들이었다. 사람은 정확한 정보에 감탄할 수는 있어도,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누군가의 망설임 속에 담긴 진심이다. 어쩌면 인간의 품위는 바로 그 망설임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정인호 칼럼니스트는 경영학 박사이자 경영평론가, 협상전문가로서 현재 GGL리더십그룹 및 아방그로 대표로 있으며,《한국경제》,《이코노믹리뷰》,《인천일보》, 《한국강사신문》등의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국내외 기업과 기관을 대상으로 3,000회 강연을 했으며, 스타트기업 사내외 이사 및 스타트업 전문 멘토로도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인호의 강토꼴’을 11년째 재능 기부로 운영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아방그로》를 통해 경영, 리더십, 협상, 예술, 행동심리학, 이슈&인사이트 등 통찰력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저서로는 《AI 시대를 선도하는 리더의 조건 : 그릭》, 《사르트르의 경영학 수업》, 《리더 포비아》,《DE&I 성공 전략》,《10대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하버드대학 세계 고전》,《부자의 서재에는 반드시 심리학 책이 놓여 있다》,《다시 쓰는 경영학》,《아티스트 인사이트》,《언택트 심리학》,《화가의 통찰법》,《호모 에고이스트》,《갑을 이기는 을의 협상법》,《가까운 날들의 사회학》,《다음은 없다》,《소크라테스와 협상하라》,《당신도 몰랐던 행동심리학》,《협상의 심리학》,《HRD 컨설팅 인사이트》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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