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
최근 미국 테크기업들의 실적 발표에서 AI 관련 지출이 예상치를 크게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투자자들의 우려를 자극하고 있다. 투자 급증이 현금 흐름을 악화시키고 실적을 둔화시켜 향후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주가를 크게 흔들었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투자 급증의 원인과 이 흐름이 향후 어떤 위험으로 나타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최근 AI 투자 규모가 예상치를 상회한 것은 일차적으로 관련 수요가 가파르게 상승한 부분이 있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 투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가격의 급등 역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이 반도체 가격 상승이 지금 우리 수출과 주식시장을 견인하는 가장 중요한 동인이지만, ‘Chipflation’으로 표현되는 이면의 부정적인 효과가 향후 경기의 변곡점을 형성하는 요인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Chipflation’은 반도체가 주요 재료로 사용되는 PC나 핸드폰 등의 가격 상승과 이로 인한 수요 둔화 및 물가 지표 악영향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현재 나타나고 있는 가파른 반도체 가격 상승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위험은 투자 부담의 가중과 자금 경색, 그리고 이로 인한 신용위험 현실화 가능성이다.
실제로 현재 반도체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가격을 상승시키는 가장 주된 수요는 AI와 관련한 투자다. 이 투자 규모가 추산되는 시점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출발은 ‘Chat GPT’ 발표 이후 가파르게 투자 붐이 형성된 것이지만, 이후 같은 기울기로 가파르게 상승하는 GPU나 HBM 및 DRAM 등의 가격은 수요로 형성된 상승 기울기를 더 가파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 빠르게 늘어나는 데이터센터 투자에서 반도체와 관련된 비용은 절반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외부 자금의 조달 규모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하이퍼스케일러(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라 불리는 ‘테크자이언트’들의 올해 회사채 발행 규모는 1400억 달러에서 3000억 달러로 지난해 대비 1.5배에서 3배 정도 급증할 것으로 주요 IB들은 전망하고 있다. 전체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5.9%에서 올해에는 7.6% 내지 16%로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이일드 등급을 포함하면 AI 관련 회사채 발행 규모는 5000억 달러에서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미국 IB업계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회사채 시장뿐 아니라 최근 부실 우려로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는 사모대출(Private Credit, PC) 시장에서도 AI 기업 대출 잔액은 2020년 200억 달러 내외에서 2025년 2000억 달러를 넘는 수준으로 급증한 상황이다. 비중으로 보면 2% 수준에서 7% 수준으로 상승했다.(BIS 추산) 향후 투자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만큼 자금 시장으로부터의 조달 규모 역시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다.
투자금과 외부 자금 조달 규모의 급증은 당연히 기업과 자금 시장에 스트레스를 높이고 경색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구설수에 올랐던 오라클처럼 투자 주체인 AI 기업들이 직접적으로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투자 주체들의 직접적인 자금 경색 위험이 아니라, 이들로 인한 자금 시장의 경색 심화와 소외된 기업이나 산업군의 부도 위험 증가다.
현재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미래 경쟁력의 핵심으로 AI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만큼 관련 기업들은 투자를 원활하게 유치할 수 있고, 당연히 현금 흐름도 원활할 것이다. 이들 기업들은 대규모 자금 조달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용 스프레드는 투자 적격 등급 평균을 크게 하회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임으로써 다른 산업이나 기업들의 자금 경색이 심화되고 부도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23년 이후 미국 경제나 주식시장은 호황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 기간 미국의 파산 기업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파산한 미국 기업들을 업종별로 분류해 보면, 산업재와 소비재 그리고 헬스케어처럼 AI 투자에서 벗어나 있고 미국 소비경기에 기대고 있는 산업들에 몰려 있다.
최근 더 가팔라지고 있는 반도체 가격의 상승과 AI 투자 규모 증가는 이 흐름과 경향이 더 심화되고 강화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자금 조달 규모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금리(특히 장기금리)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이 될 뿐 아니라, 다른 산업들의 자금 조달 파이는 더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AI 중심의 투자가 미국 경제성장률과 주식시장의 기대치를 높이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그 이면의 금리 압박과 신용위험의 증가가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체력을 갉아먹고 있는 현실에도 점차 눈을 돌려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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