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싱·발주·가격·물류·재고·고객관리 6대 영역 AI 전환
3월 AI 데이터센터 동맹 이어 리테일 전반 협력
러트닉 잇달아 행사 참석…미 AI 수출 전략 상징성 부각
신세계그룹과 리플렉션 AI가 지난 3월 ‘한국 소버린 AI 팩토리 건립을 위해 진행한 전략적 파트너십 MOU’ 사진(왼쪽부터 Misha Laskin 리플렉션 AI CEO,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신세계그룹이 오픈AI(OpenAI)와의 협업 논의를 중단하고 미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리플렉션AI(Reflection AI)와 손잡고 유통 전과정의 AI 혁신에 나섰다.
대화창에서 상품을 추천받고 주문하는 수준의 장보기 AI를 넘어, 상품 소싱과 발주, 가격 책정, 물류, 재고, 고객관리까지 유통 핵심 공정을 AI로 다시 짜겠다는 구상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난 3월 꺼내 든 ‘한국판 아마존’ 구상이 데이터센터 구축에서 본업 혁신으로 빠르게 확장되는 모습이다.
신세계그룹과 리플렉션AI는 17일 첨단 AI를 통한 리테일 혁신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양사가 AI를 접목할 영역은 상품 소싱, 발주, 가격 책정, 물류, 재고관리, 고객관리 등 6개 분야다. 사실상 유통기업 운영 전반이다. 신세계는 이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고객 만족도를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실행은 이마트가 맡는다. 그룹 내에서 가장 많은 상품을 직접 다루고 가장 넓은 고객 접점을 가진 계열사라는 점에서다. 이마트 실무진은 이달 말 방한하는 리플렉션AI 경영진·실무진과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미샤 라스킨(Misha Laskin)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리플렉션AI 인력은 이마트와 실무 협의를 진행하고 신세계그룹 경영진과 워크숍도 가질 계획이다. AI 데이터센터 건립과 운영 방안도 함께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의 AI 전략은 최근 한 달 사이 빠르게 재편됐다. 신세계그룹은 3월 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리플렉션AI와 ‘한국 소버린 AI 팩토리 건립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양해각서(MOU)를 맺고, 한국에 250메가와트(M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단일 기업 기준 최대급 AI 전용 데이터센터 구상으로, 유통을 넘어 AI 인프라와 클라우드까지 사업 축을 넓히겠다는 구상으로 해석됐다.
이 프로젝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AI 기술 수출 전략 첫 사례로도 평가됐다. 3월 행사에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직접 참석했다. 미국 정부가 리플렉션AI 프로젝트를 동맹국 대상 AI 인프라 확산의 상징적 사업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세계는 이후 4월 6일 오픈AI와 ‘AI 커머스 사업협력’ 양해각서를 맺고 연내 이마트에 AI 쇼핑 에이전트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챗GPT(ChatGPT) 대화창에서 상품 추천부터 장바구니 구성, 결제, 배송까지 이어지는 장보기 AI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열흘 남짓 만에 신세계는 다시 방향을 틀었다. 17일 신세계는 리플렉션AI와의 협업을 리테일 혁신 전반으로 확대하고, 오픈AI와의 협업 논의는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이를 AI 데이터센터와 기존 사업 혁신을 함께 밀어붙이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신세계가 AI 전략 축을 장보기 서비스에서 유통 운영 혁신으로 옮겨간 결정으로 보인다. AI를 쇼핑 보조 기능이 아니라 운영 체계 자체를 바꾸는 도구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오픈AI와의 협업이 검색·추천·장바구니·결제 등 소비자 접점의 대화형 쇼핑 경험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리플렉션AI와의 협업은 소싱·발주·가격·물류·재고·고객관리까지 밸류체인 전체를 손보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유통업의 경쟁력은 화면이 아니라 운영에서 갈린다. 어떤 상품을 얼마나 정확히 들여올지, 언제 발주할지, 어떤 가격에 팔지, 점포와 물류거점에 재고를 어떻게 나눌지, 배송 흐름을 어떻게 최적화할지가 실적을 좌우한다. 품절률과 폐기율, 재고 회전율, 물류 효율은 모두 수익성과 직결된다. 신세계가 제시한 6대 영역은 바로 이 본업의 핵심을 겨냥한다. AI를 붙여 고객 편의만 높이는 게 아니라, 원가와 운영 효율까지 건드리겠다는 뜻이다.
리플렉션AI가 오픈AI보다 신세계에 더 매력적인 파트너로 떠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픈AI가 강한 분야는 범용 대화형 AI와 소비자 친화적 인터페이스다. 반면 신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대화형 쇼핑 비서에 그치지 않는다. 수요 예측, 가격 조정, 재고 재배치, 물류 흐름 설계, 업무 자동화처럼 복합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실행형 AI가 더 중요하다.
리플렉션AI는 구글 딥마인드 출신 인력들이 세운 회사로, 추론과 자율적 업무 수행을 포함한 에이전트형 AI 역량이 강점으로 거론된다. 유통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잘 말하는 AI보다 잘 움직이는 AI라는 게 신세계의 판단으로 보인다.
데이터 통제권과 ‘소버린 AI(Sovereign AI)’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오픈AI와 협력할 경우 신세계는 외부 플랫폼을 활용하는 고객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반면 리플렉션AI는 오픈 웨이트(Open-weight) 기반 전략을 지향하고 있어, 신세계가 자사 유통 데이터와 업무 구조에 맞춰 모델을 더 깊게 맞춤화할 여지가 크다.
구매 이력, 고객 선호, 점포별 판매 패턴, 재고 흐름, 물류 데이터 같은 핵심 자산을 자사 인프라 위에서 축적·활용할 수 있다면, 이는 단순한 AI 도입이 아니라 신세계만의 운영형 AI를 구축하는 작업이 된다.
인프라 측면에서 격차는 더 크다. 리플렉션AI와의 협력은 단순한 소프트웨어 제휴가 아니라 250MW급 AI 데이터센터 건립으로 이어진다. 신세계는 데이터센터 부지 선정과 전력 확보, 구축과 운영을 맡고, 리플렉션AI는 GPU(그래픽처리장치) 인프라 설계와 AI 모델·서비스 기술을 맡는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완공 이후에는 정부와 기업을 대상으로 AI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유통기업이 AI 서비스를 써보는 수준이 아니라, 직접 인프라를 보유하고 새 수익원을 키우겠다는 의미다.
GPU 확보도 전략적이다. AI 데이터센터와 실행형 AI 고도화에는 막대한 연산 자원이 필요하다. 최근 AI 산업에서는 GPU 공급 부족이 대표적 병목이다. 리플렉션AI는 엔비디아(NVIDIA) 투자 유치 이력을 바탕으로 GPU 공급망 측면에서 강점을 가진 파트너로 평가된다. 신세계로서는 리테일용 AI와 AI 데이터센터를 함께 키우는 데 필요한 연산 자원 확보 가능성을 높이는 셈이다.
정용진 회장이 3월 내세운 ‘한국판 아마존’ 구상도 여기와 맞물린다. 아마존은 전자상거래를 넘어 아마존웹서비스(Amazon Web Services·AWS)를 통해 세계 최대 클라우드 기업으로 성장했다.
신세계 역시 유통 본업에 AI를 붙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데이터센터와 AI 클라우드를 미래 성장 축으로 키우는 구조를 그리고 있다. 오픈AI 협업이 장보기 AI의 실험이었다면, 리플렉션AI 협업은 유통과 인프라를 묶은 장기 전략에 가깝다.
물론 과제도 있다. AI 데이터센터 구축에는 막대한 투자와 전력 확보가 필요하다. 유통 전과정 AI 혁신 역시 계열사별로 흩어진 데이터를 연결하고 현업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지 못하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소비자 접점에서 오픈AI가 가진 대중성과 브랜드 파급력을 포기하는 부담도 있다.
그럼에도 신세계의 방향은 분명하다. 리플렉션AI와의 리테일 혁신 발표는 유통기업의 뼈대를 AI로 바꾸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정용진 회장은 장보기 AI보다 더 큰 판을 택했다. 신세계가 실제로 소싱·발주·가격·물류·재고·고객관리 전반에 AI를 깊숙이 심어 본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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