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대구·광주·울산 4대 과기원 도시를 우선 거점으로 삼고, 2030년까지 글로벌 창업생태계 100위권 도시 5곳 조성 목표
정부가 지역 창업생태계를 수도권 의존 구조에서 다핵형 성장 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창업도시 조성 프로젝트’를 본격화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4월 24일 구윤철 경제부총리 주재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역 거점 창업도시 10곳을 조성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지역에서 창업이 시작되고, 성장하며,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동시에 마련하는 데 있다. 기존 지역 창업 정책이 공간 조성이나 개별 지원사업에 머무른 측면이 있었다면, 이번 계획은 인재·연구개발·투자·실증·정주 여건을 하나의 도시 단위 생태계로 묶는 구조다.
수도권 집중 완화에서 지역 정착형 창업으로
한국은 국가 단위 창업 생태계와 서울이 글로벌 상위권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비수도권 주요 도시는 여전히 경쟁력 격차가 큰 상황이다. 이번 정책은 이 흐름을 바꾸기 위한 시도다. 창업도시는 단순한 창업공간이 아니라, 지역 대학과 연구소의 혁신인재, 공공기관의 데이터와 실증 인프라, 정부의 사업화 R&D와 투자 지원을 결합한 지역 창업 거점으로 정의된다. 창업의 출발점뿐 아니라 기업이 지역에 머무를 이유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선 선정되는 도시는 4대 과학기술원 소재지인 대전, 대구, 광주, 울산이다. 정부는 이들 지역을 테크 창업도시 선도모델로 삼고, 이후 지역 주력산업과 연계해 6개 도시를 추가 선정할 계획이다.
4대 과기원 도시가 선도모델이 되는 이유
대전, 대구, 광주, 울산을 우선 선정한 것은 지역 창업도시의 출발점을 기술인재와 연구역량에 두겠다는 의미다. 4대 과기원은 딥테크 창업의 핵심 자원인 고급 연구인력과 기술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는 과기원별 딥테크 창업 중심대학 신규 지정, 과기원 내 창업원 신설, 지역 대학과의 교육 협력 강화를 통해 대학발 창업을 촉진할 계획이다.
특히 창업 휴직·겸직 기간 연장, 창업 휴학 제한 폐지 등 교수와 학생 창업을 가로막는 제도 완화는 주목할 대목이다. 기술창업은 아이디어보다 인재와 실행 시간이 더 중요하다. 연구자가 창업 과정에서 학사·인사 제도의 제약을 덜 받게 되면 대학 연구성과가 기업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커진다.
다만 과기원 중심 모델이 성공하려면 기술 이전을 넘어 시장 진입까지 연결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연구성과를 창업기업으로 만드는 단계와, 창업기업이 고객·투자·규제 실증을 확보하는 단계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정부가 공공데이터와 실증 인프라를 함께 제시한 것은 이 간극을 줄이려는 방향으로 볼 수 있다.
투자와 정착 환경을 함께 묶은 점이 관건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현실적인 요소는 성장·정착 기반을 정책 패키지 안에 포함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역별 특화산업과 연계한 사업화 패키지를 신설하고, 지역 이전 기업에는 부담금 감면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창업기업 전용 R&D와 팁스(TIPS) 지원도 확대된다.
투자 측면에서는 2026년 4,500억 원 규모의 지역성장펀드 조성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총 3.5조 원 규모의 자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 제시됐다. 지역 창업생태계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가 후속투자 접근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펀드 조성은 단순한 재정 지원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주(定住) 여건도 빠지지 않았다. 정부는 국·공유재산을 활용해 공동기숙사, 사무공간, 네트워킹 공간 등을 확충할 방침이다. 이는 지역 창업정책에서 자주 간과됐던 부분이다. 창업자가 지역에 남으려면 사무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주거, 인재 채용, 네트워크, 생활 인프라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지방정부 주도 모델의 가능성과 과제
6개 추가 창업도시는 지방정부가 지역 특색에 맞는 전략을 마련하고, 중앙정부가 예산과 사업을 집중 공급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이는 중앙정부가 일괄적으로 도시 모델을 설계하는 방식보다 현실성이 높다. 지역별 산업 기반과 대학, 공공기관, 기업 네트워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정부 주도 모델은 실행 역량의 차이가 곧 성과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 지역이 단순히 예산 확보 경쟁에 머물지 않으려면, 창업도시별로 명확한 산업 포지션과 기업 성장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 예컨대 에너지, 로컬, 벤처금융, 제조 AI, 바이오, 모빌리티 등 각 도시가 어떤 창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만들 것인지가 중요하다.
정부가 추진단 형태의 통합 거버넌스를 구성하겠다고 밝힌 점은 긍정적이다. 대학, 연구소, 유관기관, 투자기관이 따로 움직이면 창업기업 입장에서는 지원사업이 많아도 실제 활용이 어렵다. 창업도시 추진단이 사업화, 투자, R&D, 실증을 연결하는 창구가 된다면 정책 체감도는 높아질 수 있다.
글로벌 100위권 도시 5곳 목표의 의미
정부는 2030년까지 글로벌 창업생태계 100위권 창업도시 5곳을 조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목표는 단순한 순위 경쟁이 아니라, 한국의 창업 지형을 서울 중심에서 복수 거점 구조로 바꾸겠다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성공 여부는 세 가지에 달려 있다.
첫째, 지역 창업도시가 실제 투자와 인재 유입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둘째, 기술창업 기업이 지역에서 고객과 실증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느냐,
셋째, 창업기업이 성장한 뒤에도 본사와 핵심 인력을 지역에 유지할 수 있느냐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의식한 정책 설계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창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착’까지 정책 목표에 포함한 점은 기존 지역 창업정책과의 차별점이다.
다만 정책 효과가 실제로 나타나려면 창업도시가 또 하나의 행정사업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별 산업 전략, 대학의 창업 친화적 제도 개편, 민간투자자의 참여, 규제 실증의 속도, 정주 인프라 확충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정부의 재정 지원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 안에서 창업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신뢰를 만드는 일이다.
이번 창업도시 프로젝트는 지역 균형발전 정책이자, 한국 창업생태계의 구조 재편 전략이다. 서울에 가지 않아도 기술기업을 만들고 키울 수 있는 도시가 늘어난다면, 한국의 창업 경쟁력은 스타트업 수보다는 성장 효율과 생태계 완성도로 재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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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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