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삼수 서울본부장
1944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종반부에 아돌프 히틀러는 파리 점령군 사령관 디트리히 폰 콜티츠 장군에게 광기 어린 명령을 내렸다.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센강의 다리를 비롯한 파리의 주요 역사적 건축물에 폭약을 설치하고 초토화하라는 지시였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Is Paris burning?)" 히틀러는 수시로 장군에게 전화를 걸어 광분하며 확인했다. 하지만 콜티츠 장군은 연합군의 무차별 공습과 미사일 참화를 막고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이 무도한 명령을 거부했다. 덕분에 파리는 전란의 잿더미 속에서도 형형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 파리는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파리시청 창문 너머로 솟아오르는 화염과 검은 연기가 전 세계를 전율케 한다. 2차 대전 당시 포화도 비껴갔던 예술의 도시를 불태운 것은 이번엔 나치의 폭격도, 외세의 침략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파리에 불을 질렀는가.
방화의 주범은 거리에 뛰어든 분노한 시민이나 학생들이 아니다. 진짜 범인은 그들의 가슴속에 분노와 망상을 키워낸 '나쁜 정치'와 과도한 '복지 포퓰리즘'이다. 우리 몸에 생기는 모든 질병이 면역력 결핍과 균형 파괴에서 비롯되듯, 국가 시스템 역시 내적 모순이 한계점에 다다르면 폭발하게 마련이다.
프랑스는 수십 년간 노동시장을 기형적으로 악화시키는 대신 복지 지출을 과도하게 확대해 왔다. 노동자의 조기 은퇴를 장려하고, 일하지 않아도 국가가 삶을 책임져주는 포퓰리즘 시스템을 구축했다. 프랑스의 연금 소득대체율은 70~74% 수준으로, 은퇴 직전 받던 급여의 40% 안팎에 불과한 한국이나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다. 은퇴 후 받는 연금이 현재 피땀 흘려 일하는 청년 노동자의 소득보다 많은 기현상이 벌어졌고, 젊은 세대는 버는 족족 소득의 28%에 달하는 과중한 보험료를 빼앗겨 은퇴자들의 삶을 떠받쳐야 했다.
일하지 않고 소비하는 구조가 고착화된 결과는 참담했다. 경기침체와 국가 재정의 고갈이었다. 오죽했으면 고등학교 지원 예산조차 없어 학업 환경이 무너진 학생들이 거리로 들고일어났겠는가. 꿈을 꿔야 할 청소년들이 폭동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 오늘 프랑스가 처한 슬픈 현실이다.
프랑스 역대 정권들은 연금과 노동 개혁을 시도하다 번번이 좌초했다. 사르코지 정권은 노동 개혁의 저항에 밀렸고, 올랑드 정권 역시 연금 개혁 실패로 정권 재창출에 무릎을 꿇었다. 마크롱 정권이 정년을 기존 62세에서 64세로 단 2년 상향하고 연금 수급을 위한 납입 기간을 늘리는 개혁안을 내놓자, 거리는 거대한 거부와 폭동의 도가니로 변했다. 일하지 않고 권리만 누리려는 포퓰리즘에 중독된 사회는 개혁을 거부했고, 개혁의 실패는 다시 경기침체와 재정 악화를 가중시켰다. 그 모순의 폭발이 지금 불타는 파리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프랑스의 잔혹한 현실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연이은 포퓰리즘 선심성 정책으로 국가부채는 1천 조 원을 넘어 폭증하고 있으며, 노동시장은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다. 지금 정권은 국가 재정지출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아름다운 재정'이라며 나랏빚을 늘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나아가 기업의 손발을 묶고 불법 파업을 사실상 용인하는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켜 노동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프랑스는 적어도 역대 정권들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개혁을 시도하다가 좌절하는 몸부림이라도 쳤다. 그러나 한국의 정권들은 개혁에 착수조차 하지 않거나, 과거 박근혜 정부 때 공무원연금 개혁을 시도했던 미완의 과제 이후 사실상 개혁 손을 놓았다. 지금의 정권은 구조개혁은커녕 나라를 망치는 반(反)개혁의 도로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 나라의 패망 원인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모순과 포퓰리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2차 대전의 참화도 비껴갔던 파리가 포퓰리즘과 나쁜 정치의 유혹에 빠져 스스로 불타오르고 있는 이 광경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지금 당장 결단해야 한다. 결론은 하나다. 퍼주기식 나쁜 정치와 과감히 결별하고, 법치와 시장경제를 바로 세우는 좋은 정치를 세워야 한다.
윤삼수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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