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삼수 서울본부장
영화 ‘암살자(들)’를 둘러싼 논란의 열기가 자못 뜨겁다. 대중문화 영역에서 예술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마땅한 가치다. 영화라는 매체는 언제나 관객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역사적 개연성이 존재하는 미지의 영역을 창의적 시각으로 메우며 대중과 깊이 소통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확하게 확립된 객관적 역사적 사실(Fact)을 자의적으로 왜곡하는 창작 행위는 단순한 ‘예술적 허용’의 범위를 확연히 넘어선다. 이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갈등과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의 배후를 다루는 영화의 음모론적 시각에 있다. 영화는 이 비극적 역사 사건의 배후에 마치 당시 대한민국 정권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연루되어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자극적인 암시를 던진다. 그러나 이는 이미 역사적으로 철저하게 검증된 기록 및 객관적 팩트와 명백히 배치되는 주장이자 자극적인 왜곡에 불과하다.
역사적 진실은 명확하며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사건의 범인인 재일교포 문세광은 재일한국민주회복투쟁위원회(한민통) 및 조총련 간부 김호룡에게 포섭되어 테러를 감행했다. 당대의 수사 기록과 재판 과정에 따르면, 그는 1974년 5월 오사카항에 입항한 북한 만경봉호에 승선하여 공작금과 함께 대한민국 대통령 저격 지령을 직접 받았다. 범행에 사용된 무기 역시 일본 오사카 미나미 경찰서 파출소에서 도난당한 일제 경찰 총기였음이 일본 경찰과의 공조 수사를 통해 명확히 확인되었다. 당시 수사 결과는 물론이고, 문세광 본인의 진술과 사형 집행 전 국민을 향해 남긴 고백에서도 이 사건의 배후 세력이 조총련과 북한 정권이었음이 확실하게 밝혀졌다.
음모론자들이 끊임없이 제기해 온 정권 내부의 자작극이나 경호원 오발설 역시 법의학과 과학적 팩트 앞에 설 자리가 없다. 당시 단상 오른쪽에 위치했던 육 여사의 측두부를 관통한 총탄 궤적은 객석에서 단상으로 달려 나오며 사격했던 문세광의 위치에서만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각도였다. 경호원의 대응 사격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적 오발은 객석에 있던 여고생을 맞힌 탄환이었음이 과학적 감정을 통해 명백히 가려졌다.
무엇보다 북한 정권의 조직적 개입은 훗날 공개된 다각도의 교차 증거들로 명백히 입증되었다. 비밀 해제된 구 동독의 기밀 외교 문서에는 사건 직후 북한이 국제적 고립과 정세 악화를 피하기 위해 알리바이를 모색했던 정황이 생생히 담겨 있다. 나아가 2002년 5월 평양을 방문한 박근혜 당시 국회의원과의 면담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21 청와대 습격 사건과 1974년 문세광 사건을 직접 언급하며 “당시 김일성 주석도 몰랐고 극단적인 강경파 하급자들이 저지른 일”이라며 조직적 개입을 직접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처럼 법의학적 증거, 기밀 외교 문서, 나아가 북한 최고 지도자의 자백 증언으로까지 완결된 역사적 사실을 비틀어 자극적인 음모론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창작이 아닌 명백한 오류이자 진실에 대한 왜곡이다. 역사적 의문이 남아있는 빈 공간을 채우는 상상력과, 명확히 입증된 역사적 진실을 비틀어 왜곡하는 행위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최근 수행된 관련 여론조사 결과는 이러한 역사 왜곡에 대한 대중, 특히 젊은 세대의 시선을 명확히 보여준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의 음모론적 왜곡에 대해 2030세대 10명 중 7명이 강한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기성세대의 편향된 역사관 강요나 진영 논리에 기반한 사실 왜곡에 대한 청년층의 거부감과, 객관적 공정성을 중시하는 정치 성향 및 가치관의 변화가 반영된 매우 의미심장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논란을 과도한 진영 대립이나 확인되지 않은 배후설로 소비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은 좌우의 이념 잣대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존중’에 있다. 예술적 자유가 진실을 훼손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영화 ‘암살자(들)’가 던진 파장은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대하고 소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팩트에 기반한 진실의 가치가 얼마나 엄중한지를 다시금 깊이 묻고 있다.
윤삼수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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