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루냐 기후기금 소개 영상. 사진=Regions4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최종적으로 재정을 통해 표출된다. 에너지전환과 온실가스 감축, 산업의 탈탄소 전환, 기후적응과 거버넌스 등 전방위적이고 신속한 재정의 투입에 기후정책의 사활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지난 2022년 출범한 국가 기후대응기금은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별도의 재정수단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시작이었다. 실제로 기후대응기금은 올해 2조 9000억 원의 운용 규모를 갖추며 탄소중립 달성의 핵심 동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기후대응기금을 활용하여 적극적 기후재정을 펼치고자 하는 움직임에 지방정부가 활발히 동참하고 있다. 최근 4년간 6개 광역지자체와 12개 기초지자체가 ‘자발적으로’ 기후대응기금 설립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고, 이렇게 만들어진 ‘지역 기후대응기금’은 각 지자체의 온실가스 감축사업, RE100, 기후테크, 정의로운 전환 등 다양한 사업에 활용되고 있다.
지역 기후대응기금의 탄생, 기후정책의 새로운 장 열었으나 해결 과제도 산적
지역 기후대응기금이 단지 상징성을 지닌 행정적 표식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 지역과 시민들의 삶 그리고 경제와 산업을 실질적으로 바꿔내는 수단으로서 기능하려면 무엇보다 다음 세 가지 핵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안정적인 재원을 바탕으로 충분한 규모를 갖춰야 한다. 둘째, 기후위기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실효성 있는 사업을 구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거버넌스를 통해 운영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을 척도로 삼아 냉정히 평가하였을 때, 지역 기후대응기금은 적지 않은 성과와 더불어 중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필자는 현재 기후대응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5개 광역지자체(서울·경기·부산·전북·전남)로부터 관련 자료를 확보하여 면밀히 들여다보았다. (세종시는 조례 제정 후 아직 기금을 운용하고 있지 않다.)
우선 규모에 있어서 광역지자체 기후대응기금은 적극적 기후정책을 펼치기에 아직 충분치 않다. 2026년도를 기준으로 각 지자체가 운용하는 전체 기금의 지출액에서 기후대응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0.5% 안팎이며, 서울이 2%를 간신히 넘겼다. 규모가 가장 큰 서울조차도 최근 3년 연속으로 지출액이 크게 감소했으며(501억→314억→296억), 경기도는 기금이 출범한 2024년도 240억 원에 비해 절반 이하인 118억 원으로 축소됐다.
문제는 불안정하고 불충분한 재원구조에 있다. 서울과 부산이 재생에너지 판매수익과 가스ㆍ난방공사 배당금을 기금의 수입원으로 활용하여 에너지전환에 재투자하는 순환적 재원구조를 갖춘 것에 비하여, 경기·전남·전북의 기후대응기금은 수입의 80~90%를 타회계 전입금에 의존하고 있다. 기금을 지탱하는 핵심 세원이나 자체수입 없이 이전 재원에만 의존해서는 운용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기 어렵다.
기금이 투입되는 사업의 내용을 살펴보면,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기여도가 제한적인 기존 사업들의 경로의존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서울과 경기도는 ‘건물 에너지효율 개선’, ‘RE100 선도사업’, ‘기후테크 육성’과 같이 지역 특화 감축 프로젝트를 발굴하였으나, 나머지 지자체의 경우 ‘폐기물 감량’, ‘재활용 활성화’ 등 이미 자원·환경관리 차원에서 집행하던 사업을 이관하여 그대로 추진하는 사례가 다수를 차지했다
형식적인 거버넌스도 문제다. 지역별로 설치된 기후대응기금 운용심의위원회는 사업의 내용과 규모를 결정하는 과정에는 관여하지 못한 채 사후 심의할 뿐이며, 대개는 간략한 서면의견을 통해 만장일치로 운용계획안에 찬성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자칫 획일적인 사업 구성을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
카탈루냐와 브리티시컬럼비아 그리고 런던이 제시하는 지역 기후기금의 모델
아직은 실험단계에 있는 우리의 지역 기후대응기금에게, ‘지역 기후기금(Regional Climate Fund)’의 길을 먼저 개척해 온 해외 지방정부들은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스페인 카탈루냐주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그리고 영국 런던시가 대표적이다.
카탈루냐주의 ‘기후기금(El Fons Climátic)’은 강력한 환경세를 재원으로 하는 ‘세입 연동형’ 기금이다. ‘기후변화법’에 따라 내연기관차의 탄소배출에 부과되는 세금의 50%가 이 기금에 적립된다. 오염자부담 원칙에 따른 안정적 재원을 바탕으로 기후기금은 2024년도 기준 약 1억7000만 유로를 산하 지자체와 기업의 감축 프로젝트와 연구개발(R&D), 시민기후행동에 전방위적으로 지원했다. 특히 5년 이상의 장기사업을 상당수 배치하여 일관성과 지속성을 확보한 점이 눈에 띈다.
이와 더불어 기후기금은 ‘기후변화에 관한 부처 간 위원회’가 우선순위와 배분계획을, 공무원과 외부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기금위원회’가 사업의 승인과 집행을 담당하는 체계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규모와 사업 구성 그리고 거버넌스에 이르기까지, 포괄적 지방 기후재정의 전형을 보여준다.
브리티시컬럼비아 OBPS 도식. 자료=브리티시컬럼비아주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청정산업기금(CIF)’은 탄소 감축에 대한 인센티브를 통해 산업계의 전환과 녹색기술 활성화에 집중하는 ‘부담금 환원형’ 기금이다. 2024년도 기준 약 1억1500만 캐나다달러를 지출한 CIF의 재원은 지역단위 탄소가격제인 ‘출력기반 가격제도(OBPS)’에서 발생하는데, 법정 배출한도를 초과한 사업체로부터 징수한 부담금을 기금에 적립하고 이를 해당 업종의 공정개선·기술혁신·전력화에 재투자함으로써 저탄소 경제를 촉진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사용하여 지역 주력산업인 에너지·광업·화학·펄프 등 고배출 분야의 탄소감축을 이끌어내는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인상적이다.
런던시의 ‘녹색금융기금(GFF)’은 다양한 층위의 금융을 통한 재원조달이 돋보이는 ‘차입 기반 금융형’ 기금이다. 국부펀드 차입, 녹색채권 발행, 민간대출과 지역주민 직접투자를 통해 마련한 재원을 공공부문 탄소중립 프로젝트에 저리로 재융자한 후, 그 수익금으로 부채를 상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최근 3년간 3억 파운드 이상을 투자한 GFF는 재정·기후환경·에너지 전문가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와 ‘신용위원회’의 2단계 심사를 거쳐 사업을 선정하며, 매년 보고서를 통해 사업의 예상 감축량과 실제 성과 및 사회적 영향에 대한 평가를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사업별 기대효과를 나타낸 런던 GFF의 보고서. 자료=런던시
기후대응과 탄소중립을 향한 새로운 재원·사업·거버넌스 이끌어내야
이들 세 해외 지방정부는 각자의 제도적 수단을 창의적으로 활용하여 기후기금을 형성, 확대함으로써 지방 기후재정의 혁신적 모델을 창출해냈다. 정치·경제적 환경의 차이가 있겠으나, 이들의 선도적 사례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역 기후대응기금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해외 지역 기후기금 사례의 주요 특징
한국의 지역 기후대응기금은 우선 내실 있는 재원을 확보하여 그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 중앙에 편중된 환경·에너지·교통 관련 세입의 과감한 지방 이전과 더불어 지역 중심의 기후금융을 촉진하는 제도 개편 및 지원이 필수적이다.
다음으로 선택과 집중의 전략으로 핵심적인 지역 특화 사업에 자금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각 지역의 주요 배출원에 상응하는 중장기·고비용·고감축 프로젝트를 발굴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기획 단계에서부터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참여하고 사업의 감축효과를 정확히 평가하는 체계적 거버넌스 구조를 갖춰나가야 한다.
궁극적으로 지역 기후대응기금은 지방 기후재정을 혁신할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새로운 재원과 사업 및 거버넌스를 이끌어낼 레버리지를 만들어낸다는 데에 지역 기후대응기금의 핵심 의의가 있다. 정치적 의지와 재정적 기반 그리고 정책적 전략이 기후대응기금과 같은 제도로서 발현될 때, 지역과 지방정부는 기후위기에 맞서는 핵심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조원영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 연구원]
조원영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 연구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