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전혜은 시선] 한국 '반도체 호황 착시'에 가려진 중국 '반도체 굴기'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공정 혁신 투자, AI 맞춤형 메모리 전환, RSU 같은 선진 보상체계 도입, 스타트업과 소부장을 키울 공공 파운드리 구축, 규제·조세·노동 제도의 정비를 제시한다. 반도체 호황의 이익을 어디에...

[전혜은 시선] 한국 '반도체 호황 착시'에 가려진 중국 '반도체 굴기'

AI생성 이미지

[위클리오늘=전혜은 기자] AI 메모리 호황이 한국 경제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구조적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가 수출과 이익을 견인하는 동안, 다른 산업의 체력은 약해지고 있고, 기업 현장에서는 성과 배분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생산 차질 우려로 번지고 있다.

산업계와 학계는 “지금은 호황의 과실을 나눌 때가 아니라, 격차를 더 벌릴 체질을 바꿔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 반도체 굴기를 연구해온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이 관리하는 ‘차보즈(卡脖子·목을 죄는 기술)’ 목록에서 빈칸이 거의 사라졌다”며 “D램·낸드 등 메모리 핵심 영역에서 5~10년 내 상당한 추격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EUV 같은 최후 병목은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중국이 ‘우회 혁신’으로 돌파구를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최근 실적을 “HBM 수요 폭증이 만든 착시”로 규정하며, 메모리 공정을 AI 수요에 맞춘 맞춤형 생산으로 전환하고, 보상체계 역시 글로벌 수준으로 고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거시 지표는 이 ‘착시’를 뒷받침한다.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2025년 결산 기준 코스피 상장사 실적은 개선됐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감소했다. 두 회사의 이익이 전체를 떠받치는 구조다.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은 36%를 넘어섰다. 반도체를 걷어내면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노무라의 박정우 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가 이끈 수출과 투자가 1분기 성장률을 크게 끌어올렸다며 연간 전망치를 상향했지만, 동시에 “민간소비 회복은 여전히 더디다”고 진단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 역시 “소수 기업의 이익 독식이 경기 위축과 맞물릴 수 있다”며 신용 위험을 경고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이를 ‘반도체 착시’라고 표현하며,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전통 제조업과 내수 산업이 함께 살아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서 열린 투쟁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 2026.04.23.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예고는 산업계에 또 다른 불안 요인으로 떠올랐다. 영업이익의 15%를 상한 없이 성과급으로 배분하라는 요구와 함께 반도체 라인 가동 중단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우려의 초점은 ‘생산 손실’보다 ‘신뢰 훼손’에 맞춰진다.

AI 고객사들은 수년 단위로 공급 안정성을 본다. 한 번 ‘공급 불안’ 낙인이 찍히면 거래선은 빠르게 대체 공급처를 찾는다.

불과 2년 전, 삼성전자는 HBM 대응이 늦어지며 약 19개월 동안 엔비디아 공급망에서 사실상 이탈했고, 그 사이 SK하이닉스가 고수익 HBM으로 영업이익을 역전했다. 가까스로 신뢰를 회복한 시점에 또다시 생산 차질 우려가 커지자, “회복에 걸린 시간보다 신뢰를 잃는 속도가 더 빠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도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반도체 성과는 기업만의 결실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결과”라며 성숙한 판단을 촉구했다.

반도체 공정 하나가 멈추면 1700여 협력사와 지역 경제까지 파장이 번진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을 ‘임금 분쟁’이 아닌 ‘산업 체질’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공정 혁신 투자, AI 맞춤형 메모리 전환, RSU 같은 선진 보상체계 도입, 스타트업과 소부장을 키울 공공 파운드리 구축, 규제·조세·노동 제도의 정비를 제시한다. 반도체 호황의 이익을 어디에, 어떻게 재투자할지에 따라 슈퍼사이클 이후의 충격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기술 ‘빈칸’을 빠르게 메우고, 한국은 성과 ‘배분’을 두고 줄다리기를 한다. 반도체가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지금, 라인을 멈출지 체질을 바꿀지의 선택은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