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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전중환의 진화의 창]생물학적 성은 두 가지다

대다수 생물종에는 암컷 혹은 수컷이라는 성별 차이가 있다. 생물학적 성은 생식세포의 크기 차이로 정의된다.

대다수 생물종에는 암컷 혹은 수컷이라는 성별 차이가 있다. 생물학적 성은 생식세포의 크기 차이로 정의된다. 진화생태학자 조안 러프가든이 저서 <진화의 무지개>에서 썼듯이, “‘수컷’은 작은 생식세포를 만들고, ‘암컷’은 큰 생식세포를 만든다… 생식세포의 크기 외에 암수를 구분하는 다른 보편적인 차이는 없다.”(역서 42쪽)

다 아는 당연한 이야기를 읊어댄다고 생각하시는가? 놀랍게도, 이 문제는 뜨거운 논란을 일으킨다. 트랜스젠더 선수가 여성 스포츠에 출전하도록 허용할지, 여권의 성별란에 제3의 성을 추가할지 등등 성평등을 둘러싼 논쟁에서 몇몇 생물학자와 젠더 이론가는 생물학적 성은 둘보다 더 많거나, 연속적으로 이어진 스펙트럼이거나, 혹은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했다. 생물학적 성에 대해 과학이 밝혀낸 바를 살펴보자.

“자연계에는 오직 두 가지 성별만 있다고? 트럼프나 할 헛소리를 진보언론에서 외치다니!” 이러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결론을 적겠다(내가 좀 소심하다). 생물학적 성은 둘이지만, 이는 모든 사람이 여성 혹은 남성으로 딱 떨어지게 구별된다는 뜻이 아니다. 날 때부터 여성·남성이라는 본질적 속성이 내재해 있기에 우리가 숙녀 혹은 신사로 자라난다는 본질주의적 시각은 틀렸다. 생물학적 성이 두 가지인 까닭은 유성생식 하는 종에서 유전자를 후대에 전파하고자 두 가지 다른 번식 전략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성장하면서 전략을 구사하는 능력을 얻는 양상은 제각각 다르다. 개인 간에 많은 변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제 본론이다. 왜 거의 모든 다세포성 동식물에서 생식세포는 큰 것과 작은 것, 단 두 종류일까? 왜 셋 이상의 종류는 없을까? 크기와 모양이 같은 생식세포들을 바다나 공기에 퍼뜨리고, 이들이 서로 합체해서 번식했던 조상 생물을 생각해보자. 생식세포에는 두 가지 임무가 있다. 첫째, 다른 생식세포를 잘 찾아서 합체해야 한다. 둘째, 합체한 후에 자식에게 자원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이 둘은 상충 관계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편은 그만큼 포기해야 한다. 결국 양극단의 두 전략, 즉 작은 생식세포를 많이 만드는 전략과 큰 생식세포를 적게 만드는 전략이 자연 선택됐다. 중간 크기의 생식세포를 적당히 만드는 전략은 이도 저도 아니어서 자식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

생물학적 성은 한 개체가 지닌 고정불변한 속성이 아니라,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두 가지 번식 전략이다. 종에 따라 개체마다 다른 전략을 쓸 수도 있고(암컷과 수컷,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흰동가리 같은 순차적 암수한몸), 한 개체가 두 전략을 함께 쓸 수도 있다(지렁이·달팽이 같은 동시성 암수한몸). 번식 전략의 차이가 성염색체, 성호르몬, 이차성징 같은 형질이나 자식 돌보기 행동 같은 성 역할에 영향을 준다.

일반인이 흔히 품는 오해는 생물학적 성을 성염색체 같은 성 결정 체계와 혼동하는 것이다. 성염색체가 XY면 수컷이고 XX면 암컷이라는 발상은 순전히 인간 중심주의적 편견이다. 유럽 두더지들쥐 같은 몇몇 포유류 종은 Y염색체가 아예 없지만 버젓이 암수가 있다. 악어, 바다거북, 그리고 많은 어류가 성염색체도 없고, 성을 결정하는 유전자도 없다. 이들은 온도나 사회관계에 따라 성별이 정해진다. 이를테면, 바다거북의 알은 낮은 온도에서 부화하면 수컷이 되고, 높은 온도에서 부화하면 암컷이 된다. 흰동가리는 어릴 때는 수컷으로 살다가 무리에서 번식을 독점하던 대장 암컷이 죽으면 암컷이 된다.

또 다른 오해는 생물학적 성을 성 역할과 혼동하는 것이다. 자식을 돌보는 행동은 포유류에서는 암컷의 몫이지만, 어류에서는 수컷의 몫이다. 몸 안에서 수정란을 키우는 행동조차 해마나 실고기에서는 수컷이 전담한다. 성 역할이 역전된 사례들은 대결 경쟁이나 난잡한 짝짓기가 수컷의 ‘본성’이 아님을 보여준다.

생물학적 성의 이분법적 정의는 생명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단, 그 정의가 스포츠에서의 공정한 경쟁이나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 등에도 가장 적절하리라고 믿을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진화생물학자 팀 야니케 등이 학술지 ‘이콜로지 레터스’에 낸 논문에서 강조했듯이, 생물학적 성이 두 개라는 이유로 인간 사회에서 젠더 정체성이 다채롭게 존재함을 부정하는 태도는 사실에서 당위로 건너뛰는 오류다. 반대로, 인간 사회에서 젠더 정체성이 다채롭게 존재한다는 이유로 생물학적 성이 두 개임을 부정하는 태도는 당위에서 사실로 건너뛰는 또 다른 오류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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