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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쟁통에도 지킨 유물… 복합문화 크게 그리는 ‘인천뮤지엄파크’ [2026 창간특집]

광복 이후 지방 자치 단체가 만든 대한민국의 첫 번째 공립 박물관은 어디일까. 정답은 바로 인천시립박물관이다. 도시 인천이 가진 수많은 ‘최초’ 가운데, 박물관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인천에 아직 없는 시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립미술관이다.

광복후 지자체 ‘최초’ 공립 박물관 설립

‘1세대 미술평론가’ 석남 이경성, 관장 임명

개관 당시 금속·토기·기와 364점 자료 선봬

‘세창양행 사택’ 사용, 인천항 내다보이는 조망

부평 조병창 버려진 유물 실어나르는 열정 결실

광복 이후 지방 자치 단체가 만든 대한민국의 첫 번째 공립 박물관은 어디일까. 정답은 바로 인천시립박물관이다. 도시 인천이 가진 수많은 ‘최초’ 가운데, 박물관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인천에 아직 없는 시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립미술관이다. 전국 특별·광역시 가운데 시립미술관이 없는 곳은 인천이 유일하다. 박물관은 1등이었지만, 미술관은 아직 꼴찌라는 타이틀 조차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이 같은 반갑지 않은 꼬리표는 곧 떨어질 예정이다. 2028년 말 준공 목표로 박물관과 미술관을 갖춘 ‘인천뮤지엄파크’가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 광복 후 첫 공립박물관의 시작

대중일보 1946년 4월 2일 기사.

1946년 4월2일자 대중일보(大衆日報)는 ‘시립박물관 개관-세계에 자랑할 문화의 전당(殿堂)’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이 문을 여는 순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시내 송학동 시립박물관 개관식은 1일 오전 11시부터 동관에서 거행되었다. 이날 식장에는 임(任)시장, 스틸만 군정관을 비롯하야 각계 유지제씨가 참석하였고 특히 박문고여 합창대도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폐식 후 일동의 관내 참관이 있었는데 동박물관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중략)…다채한 진열품이 풍부하여 조선 고대 문화를 세계에 자랑하기에 부끄럽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1946년 4월 1일 열린 인천시립박물관 개관식에는 임홍재 인천시장, 길영희 인천중학교 교장, 황광수 인천시교육감, 미군정 장관 스틸만 중령과 교육 담당관 홈펠 중위, 그 밖에 인천의 유지들이 내빈으로 참석했다. 개관 당시 전시 유물은 364점이었다. 인천향토관 자료와 ‘맘모스 상아’와 같은 적산 물품, 조병창 출토 중국 유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6개의 전시실에 시기와 종류별로 나눠 유물을 전시했다. 1진열실에 금제 풍차 등의 금속 유물, 2~4진열실에는 도자기, 5진열실에는 토기와 기와, 6진열실에는 러일전쟁·청일전쟁 관련 유물이 채워졌다.

박물관 건물로는 개항 이후 독일계 무역상사로 영업하던 세창양행의 ‘세창양행 사택’ 건물을 사용했다. 이 건물은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며 적산가옥이 됐고, 일제 치하인 1922년 인천부가 매입해 부립도서관으로 사용되다가, 다시 인천향토관이라는 이름의 전시관으로 운영된 건물이었다. 지금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이 서 있는 자리에 지어져 인천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벽돌 구조 단층 건물인데 9개의 아치로 구성된 회랑과 붉은 기와지붕이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 석남 이경성의 열정

인천 연수구 옥련동에 위치한 현재의 인천시립박물관 전경. 1990년 현재 위치로 신축 이전한 박물관을 2006년 증축해 다시 문을 열었다. /인천시립박물관 제공

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 우리나라는 좌우 진영 갈등, 치안 불안 등으로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국가 기틀이 될 헌법 조차 마련되지 않은 때였다. 문화재에 관심을 기울이기란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박물관 건립을 위해 동분서주한 이는 한국 미술계의 큰 스승으로 불리는 1세대 미술평론가 석남(石南) 이경성(1919~2009) 선생이다. 이경성은 인천 화평동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인천 출신 미술사학자이자 개성부립박물관장이던 우현 고유섭과의 인연으로 미학 공부를 시작해 미술 평론가의 길을 걸었다.

해방 직후 27세의 젊은 이경성에게 당시 미군정관 홈펠 중위와 통역관이 함께 찾아왔다. 인천향토관(세창양행 사택)을 박물관으로 만들자고 의견을 낸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석남은 1945년 10월 31일 초대 인천시립박물관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임홍재 인천시장이 9월부터 활동한 것을 감안하면 인천시립박물관의 개관 준비가 매우 신속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석남의 목표는 불과 5개월 후인 1946년 4월 1일 개관이었다. 석남은 일제에 의해 흩어져있던 여러 자료를 발로 뛰며 찾아 모았다. 미군정과 협의를 통해 부평 조병창에 버려져 방치된 중국 철제 유물을 미군 트럭에 실어 나르는가 하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에서도 유물을 빌려와 박물관의 기틀을 갖춰갔다. 애초에 박물관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었다. 석남은 인천 시내 곳곳을 다니면서 건축 자재를 구하고 직접 낡은 건물을 수리해 무사히 개관에 이를 수 있었다.

석남이 박물관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시립박물관 관보 ‘고적(古跡)’ 창간호에 석남이 남긴 ‘인천박물관의 방향’이라는 글을 보면 조금이나마 그의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인천박물관의 방향을 말할지니 곧 지리적 특수성과 연관 지어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즉, 무역항이라는 데서 오는 인천의 국제성과 지방이라는 점에서 기인하는 향토성이 그것이다.…(중략)…인천박물관은 인천 부근의 도서를 포함한 향토사 연구에 주력하고, 그 분야의 권위가 되어야 한다. 문학산 부근, 계양산 부근, 그리고 강화도, 덕적도에서 멀리 석기시대로부터 고구려, 신라의 유물, 유적을 답사하고 조선 최근세사에 등장한 제물포 시대를 중심으로 외적의 침략에 대한 진실을 과학적으로 진열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인천박물관의 나가야 할 방향이고, 근본 사명이라 믿는다.”

2028년 준공 ‘인천뮤지엄파크’ 첫 시립미술관

문화시설 예술공원 결합·‘도시재생 프로젝트’

1946년 빚은 건립 가치, 국내외 경쟁력 이어져

■ ‘인천뮤지엄파크’ 도약 꿈꾼다

인천뮤지엄파크 국제설계공모에 선정된 (주)토문건축사사무소 컨소시엄 ‘Memories of Landscape’(경관의 기억) 조감도. /인천시 제공

인천시립박물관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잿더미가 된다. 다행히 유물은 석남이 다른 안전한 장소로 옮겨 놓은 후여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전쟁 발발 후 2년 10개월 동안 휴관 상태였던 박물관은 1953년 4월 소실된 건물 인근 제물포구락부 건물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현재 박물관이 위치한 옥련동으로 옮긴 것은 1990년 5월 4일이며 개관 60주년이던 2006년 7월 10일 증·개축해 새롭게 개관했다.

이제 인천시립박물관은 미추홀구 학익동에 들어설 ‘인천뮤지엄파크’로 또 한번의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지난 3월 인천시는 ‘인천뮤지엄파크 건립 착공식’을 열고 본격 공사에 들어갔다.

뮤지엄파크는 박물관과 미술관, 예술공원이 결합된 전국 최초의 시립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특히 인천은 전국 특별·광역시 중 유일하게 시립미술관이 없었는데, 마침내 ‘시립미술관 시대’를 연다는 점에서 뮤지엄파크 건립은 그 의미가 깊다.

뮤지엄파크는 미추홀구 학익동 587-53번지 일대 연면적 3만8천889㎡, 총사업비 약 2천416억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건립된다. 뮤지엄파크는 새로운 문화시설을 건립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도시재생 프로젝트’라는 의미도 있다. 산업시설 중심이었던 원도심의 공간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전환해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인천공항과 개항장 관광지구 등 지역의 기존 관광자원과 유기적으로 연계돼 10만여 명에 달하는 지역 거주 외국인을 비롯한 국내외 관광객들에게도 새로운 문화관광 콘텐츠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1946년 인천시립박물관 건립으로 발현된 석남 이경성의 정신이 2028년 문을 열 인천뮤지엄파크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이제 인천의 새로운 뮤지엄파크를 어떻게 가꿔갈 것인가는 인천 시민들의 몫으로 남게 됐다. 1947년 인천시립박물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해 박물관 관보 고적에 석남 이경성 선생이 남긴 당부를 많은 인천시민이 깊이 새겨들어야할 필요가 있다.

“박물관은 이제 겨우 한 살 먹은 유아(幼兒)다. 그 유아를 양육하는 것은 관원의 책임이지만 어디까지 유모에 지나지 않는다. 인천박물관은 인천부민이 8·15 이후 낳은 한 살 박이 유아다. 그를 발전시키는 것은 인천부민 전체의 공동 책임이다.”

/김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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