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갈랐다··· 에너지·반도체·방산으로 쏠린 자본
LNG·원전·광물까지··· 국가 안보 자산 재편
조선·원전·반도체 묶을 ‘안보 패키지’ 승부수
이란발 분쟁 장기화가 글로벌 자본시장 질서를 흔들고 있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이란발 분쟁 장기화가 글로벌 자본시장 질서를 흔들고 있다. 한때 주변으로 밀렸던 전통 에너지와 원전은 전략 자산으로 재편입됐고, 반도체는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격상됐다. 방산·사이버보안·공급망 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투자 축이 형성되면서 지정학 리스크가 구조적 프리미엄으로 전환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해협 봉쇄, 곧 아시아 에너지 위기”
17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중동 전쟁이 다시 한번 확인시킨 것은 에너지 초크포인트의 냉혹한 현실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석유 소비의 약 20%, 하루 평균 2000만 배럴이 통과하는 최대 해상 병목 지점이다. 이 물량의 80%가 한국·일본·중국·인도로 향한다. 해협 봉쇄가 곧 아시아 에너지 위기인 셈이다.
이란의 핵심 수출 거점인 하르그섬에 대한 공습과 봉쇄 위협이 겹치면서 시장은 유가 120~150달러 상단 시나리오까지 현실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애미리트(UAE)가 우회 수송 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대체 가능한 물량은 전체의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완전한 대체가 아니라 피해를 일부 완화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세계 석유 수요의 70% 이상이 호르무즈를 비롯한 전략적 해상 초크포인트에 묶여 있는 이상, 에너지 취약성은 구조적으로 해소되기 어렵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주요 싱크탱크들은 에너지 안보의 3대 축으로 연료 다변화, 비중동 공급선 확보, 상시 에너지원 확충 등을 제시한다. 여기에 액화천연가스(LNG)와 원전, 심지어 석탄까지 다시 포함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탈탄소와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각국의 현실적 계산이 전통 에너지의 귀환을 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미·호주·브라질의 비중동 산유·가스 개발, 대형 LNG 프로젝트, 부유식 원유 생산·하역설비(FPSO), 정유·석유화학 설비는 더 이상 경기 민감 산업이 아니다. 이제는 에너지 안보 인프라로 재분류된다. 기존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우라늄 채굴과 연료 가공, 전략비축유와 가스 저장 인프라도 국가 안보와 기후 정책을 동시에 떠받치는 전략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정학 리스크 때마다 ETF 지수 상승
2014~2024년 90개 기업과 ETF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지정학 리스크(GPR) 지수가 상승할수록 방산, 사이버보안, 에너지, 전략 자원 등 섹터는 변동성이 확대되면서도 분쟁 심화 구간에서는 가장 뚜렷한 초과 수익을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위기 국면마다 관련 ETF가 주요 지수 대비 두 자릿수 초과 수익을 낸 것도 같은 흐름이다.
전쟁 양상이 사이버·우주·광역 정찰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디지털 방산이라는 새로운 산업도 등장했다. 사이버보안 시장은 2030년대 초 600억달러 이상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제 국방비는 단순한 무기 구매가 아니라 물리 방산은 사이버 방산이라는 복합 구조로 바뀌고 있다.
전략 자원 측면에서도 리튬·희토류·구리 등 핵심 광물이 에너지 전환과 방위 산업 수요를 동시에 받으면서 미국과 EU, 한국 등 주요국에서 광물 안보 정책이 빠르게 구체화되고 있다.
반도체·데이터, 새로운 전장 무기
공급망이 흔들릴수록 디지털 인프라의 중요성은 커진다.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 전력반도체와 보안 칩은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국방 IT와 산업 제어 시스템을 떠받치는 핵심 부품이기 때문이다.
지정학 리스크가 커질수록 이 분야의 구조적 수요는 오히려 증가한다. 반도체는 이제 단순한 경기 사이클 산업이 아니라 지정학 내성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해상 통행 차질로 운임과 보험료가 급등하면서 인공지능(AI)·블록체인·사물인터넷(IoT) 기반의 공급망 관리(SCM) 소프트웨어와 실시간 화물 추적 기술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전통 에너지 인프라와 디지털 데이터 인프라가 하나의 통합 안보 체계로 결합되면서 공급망 테크과 디지털 인프라는 새로운 전략 산업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韓, 기회·리스크 교차··· 핵심 원재자 의존도 과제
한국은 이번 위기에서 수혜와 취약성이 동시에 교차하는 위치에 서 있다.
LNG 운반선과 원유 운반선, FPSO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조선 산업은 비중동 에너지의 장거리 해상 수송 확대라는 구조적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 원전 설계·시공·연료 공급을 패키지로 제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라는 점 역시 원전과 SMR 수출에서 중요한 전략적 강점이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전력반도체 기업들은 디지털 방산 생태계의 핵심 공급자로 떠오르고 있고, 사이버보안과 산업 보안 기업들도 중동과 동남아, 동유럽 시장에서 새로운 수출 기회를 맞고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여전히 원유와 가스, 핵심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유가와 운임 상승이 무역수지와 실물 경기를 동시에 압박하는 개방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업계 한 전문가는 “이를 타개하는 해답은 산업 전략의 결집인데 조선과 정유, 원전, 반도체, 해운, 물류, 보안 산업 등을 하나의 체계로 묶는 에너지·반도체 안보 패키지를 구축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이번 중동 전쟁 장기화 국면이 한국에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지 아니면 단순한 비용 충격으로 끝날지는 바로 이 전략적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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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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