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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시 따라잡기] 日 작가 유키마사 이다 개인전…우손갤러리 서울·대구 10월까지

기억은 과거의 사실이 하나의 장면이나 형상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그래서 기억은 곧 이미지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특정 장소나 사람을 떠올릴 때 장소나 사람의 모습과 함께 그때 느꼈던 감정, 인상 등이 뒤섞인 특정한 이미지들이 기억 속에 저장된다.

“회화는 기억 속 사라지는 순간을 붙잡는 매체”

기억은 흔들리고 사라지고 ‘변화’

유일·순간성 개념이 예술적 주제

외형 기록보다 함께한 시간 초점

고흐 인물 아닌 이미지 그림 ‘눈길’

유키마사 이다 작가가 우손갤러리 대구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기억은 과거의 사실이 하나의 장면이나 형상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그래서 기억은 곧 이미지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특정 장소나 사람을 떠올릴 때 장소나 사람의 모습과 함께 그때 느꼈던 감정, 인상 등이 뒤섞인 특정한 이미지들이 기억 속에 저장된다.

일본 작가 유키마사 이다는 ‘기억’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화면 속 형상들은 기억에 대한 소환이며, 그에게 회화는 기억 속 사라지는 순간을 붙잡는 매체다. 그가 이해하는 기억의 속성은 고정되기보다 계속 변화하고 사라진다.

그의 화면 속 이미지들이 흔들리고 녹아내리는 것도 변화하는 기억의 속성과 무관치 않다. 그는 얼굴을 그리지만 얼굴의 일부를 물감으로 흘러내리듯 덮고, 풍경을 마주 하지만 형상을 흔든다. “저는 변형되는 기억의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지를 화면 위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업은 현상의 재현같은 명징한 형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물감을 겹쳐 올리는 과정에서 원래의 모습은 흐려지고, 그 위에서 새로운 이미지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물감을 겹치는 과정에서 기억과 현재, 실재와 이미지가 뒤섞인 결과다.

유키마사 이다 작 ‘End of today’. 우손갤러리 제공

과거는 기억으로 남지만 되돌릴 수 없는 속성을 가진다. 한 번 지나간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불가역적인 시간을 회화로 기록하며 그가 기반으로 하는 것은 일본 전통의 사유체계 중 하나인  ‘이치고 이치에(一期一會)’다.  일생은 단 한 번뿐인 만남으로 점철된다는 의미를 가졌다.

그가 ‘이치고 이치에’라는 무겁고도 엄중한 진리를 깨달은 것은 비교적 이른 나이였다. 10대 후반에 묘비 제작소에 근무했던 그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경험했다. 화장한 사람의 뼈를 직접 닦기도 했는데, 그때 죽음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당시 저에게도 죽음은 반드시 찾아올 사실이라는 것을 체감했어요.”

이후 떠난 인도 여행에서 경험은 삶의 유일성과 순간성에 대한 그의 확신을 굳혔다. 인도의 거리에서 죽음을 목격하고 시신이 바로 화장되는 모습을 목도하며 불가역적 시간에 대한 깨달음은 깊어졌다. 그는 인도에서 “한 번 만난 사람도, 한 번 본 풍경도 다시 똑같이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러면서 유일성과 순간성의 개념들은 그의 예술적 주제로 확대됐다.

이다 작 ‘G-Dragon’. 우손갤러리 제공

◇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 기억이 남는다

불가역적 시간을 포착하는 이다의 예술세계가 국내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27일부터 10월 31일까지 우손갤러리 서울과 대구에서 동시에 유키마사 이다의 한국 첫 개인전을 연다. 서울에서는 ‘See You Tomorrow’, 대구에서는 ‘Inner Garden’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다른 작업 세계를 펼친다. 그의 작품 총 50점이 서울과 대구에 나뉘어 전시된다.

대구 전시는 인물화(Portrait)와 풍경화(Landscape), 그리고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한 ‘반 고흐(Van Gogh)’ 연작을 중심으로 그의 역동적인 회화의 세계를 소개한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10년 이상 지속해 온 ‘End of today’를 통해 보다 개인적이고 내밀한 시간의 기록을 선보인다.

대구 전시장 1층에서 만나는 인물화는 이다의 회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화면 속 인물들은 일그러져 있다. 처음에는 비교적 사실적인 인물을 그렸지만, 그 위에 물감의 층을 계속해서 쌓아 인물의 형태를 허물어트린 결과다. 붓질은 얼굴의 윤곽을 덮고, 형상은 다시 드러났다가 사라진다.

화면 속 인물들은 그의 지인들이다. 그는 얼굴의 일부를 덮은 물감의 층을 ‘기억의 레이어’라고 불렀다. “기억은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억은 흔들리는 것이고 항상 변화합니다.”

얼굴을 물감으로 덮는 행위 이면에는 현재의 모습보다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 그 사람을 바라본 자신의 감각에 대한 집중이 자리한다. 그가 “살아 있는 사람을 그린다고 해도 그림으로 옮기는 순간 그 대상은 이미 과거가 된다”고 했다. 이는 그의 초상이 ‘존재하는 사람’보다 ‘존재했던 사람’에 가까운 이유다.

재작년에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초상 작품에서 그의 태도는 더욱 분명해진다. 그는 “할머니의 초상을 그리면서 나의 작업이 한 사람의 외형을 기록하려는 것보다 함께했던 시간을 남기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대구 전시장 2층에는 들녘 풍경이 펼쳐진다. 이다는 영국과 일본을 거점으로 작업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풍경은 영국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나와 직접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그린 작품들이다. 그에게는 풍경 역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붙잡는 일이다.

“광활한 들판에 바람이 불고, 빛이 움직이고, 구름의 위치가 변하고, 색이 달라지는 풍경화에도 인물화처럼 변화가 전제돼 있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을 경우 더 걸리기도 하지만, 실외에서의 그림은 가능한 한 하루 안에 완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빛과 공기, 바람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을 하나의 서정으로 붙잡기 위해서는 단시간에 그리는 것이 최상이라는 생각에서다. ‘이치고 이치에’가 회화의 방법론이 되는 순간이다.

그의 풍경화에는 헤라클레이토스의 ‘판타 레이(Panta Rhei·만물은 흐른다)’라는 오래된 명제도 겹쳐진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 같은 풍경도 두 번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인 ‘판타 레이’와 일본 전통 철학 ‘이치고 이치에’가 묘하게 닮아있는 것.

화면에는 우연성도 허용된다. 변화를 통제하려 하기보다 변화 자체를 받아들이려는 태도에 대한 반영이다. 우연성은 ‘무작위’와 ‘무의식’의 허용으로 극대화된다. “자연을 정확하게 포착하려는 의식적인 행위와 자연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오히려 새로운 이미지들이 생겨났어요.”

유키마사 이다 작 ‘Van Gogh No.3’. 우손갤러리 제공

◇ 고흐를 흉내 내지 않고 고흐를 다시 만나다

이번 대구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업은 새롭게 제작한 ‘반 고흐(Van Gogh)’ 연작이다. 이번 전시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고흐는 그에게 회화 역사의 출발점으로 인식된다. 특히 고흐를 두꺼운 물감과 격렬한 붓질을 사용하는 현대 회화의 원류 가운데 하나로 여겼다.

그러나 고흐의 모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남겨진 그의 이미지는 그림이다. ‘초상화’나 ‘해바라기’, ‘밀밭’, ‘별이 빛나는 밤’ 등 회화가 시간을 초월하고 있다. 이다는 “오늘날 고흐의 초상을 그린다는 것은 실제 인물을 재현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기억하는 이미지들을 그리는 것인가”라는 말을 던졌다.

그는 후자를 택했다. 고흐가 남긴 초상화 속 얼굴 위에 해바라기와 밀밭, 모자 등 그가 남긴 이미지들을 겹쳤다. 여러 이미지가 한 화면 안에서 충돌하고 뒤섞이며 고흐의 얼굴이 만들어졌다. 이다에게 고흐는 과거에 존재했던 인물이라기보다 ‘그림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가는 존재’였다. 이다는 “고흐를 흉내 내는 것으로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유키마사 이다 작. 황인옥기자

서울엔 10년 그림일기 ‘매일의 끝’

“꾸밈 없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

경주서 다양한 작품 50점 소개도

회화·영상 등 총 5개 섹션 구분

◇ 하루를 차곡차곡 쌓은 ‘End of today’

서울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 ‘오늘의 끝(End of today)’ 연작은 이다의 작업을 보다 사적인 차원에서 보여준다. 그는 10년 이상 매일의 끝에서 그림을 그려왔다. 그날 보고 느낀 것, 기억한 것을 화면에 남겼다. 말하자면 그림일기였다.

대구 전시장에 걸린 거대한 인물화와 풍경화들이 한순간의 강렬한 감각을 붙잡는다면, 서울 전시장의 ‘End of today’는 하루를 차곡차곡 쌓는다. 한 점의 그림이 하나의 기록이고, 그 기록들이 모여 작가가 살아온 시간의 궤적이 된다. 이다는 이 시리즈를 자신의 작업 가운데 가장 “꾸밈 없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그리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 경주 오아르미술관 ‘기억의 행위’전

우손갤러리 전시와 함께 경주 오아르미술관의 유키마사의 개인전 ‘Remembering You: 기억의 행위’도 23일부터 2027년 3월 14일까지 펼쳐진다. ‘기억’을 매개로 한 회화와 조각, 영상 등 총 50점 내외의 다채로운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는 가족과 연인의 존재를 담은 초상화부터 피카소의 ‘게르니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재해석한 ‘미술사의 기억’, 하루에 한 점씩 완성하는 대표 연작 ‘오늘의 끝’, 캔버스를 불태우며 생성과 소멸을 묻는 영상 작업 등 총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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