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광주 반도체 투자 구상에서 전북이 빠졌다는 지역 위기감이 커진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전북의 이른바 ‘3중 소외론’을 거듭 언급하면서 전북 안팎의 박탈감은 여전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원택 전북지사가 새만금 활성화 해법으로 내국인 카지노 카드를 꺼냈지만, 결과는 투자 논의가 아니라 정책 혼선 논란으로 번졌다. 편집자
이원택 지사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새만금 관광·레저용지 활성화를 위해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추진 의사를 밝혔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만으로는 대규모 민간 투자와 체류형 관광 수요를 끌어오기 어렵다는 게 명분이었다. 하지만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즉각 반발했다. 선거 공약에도, 인수위 최종보고서에도 없던 사안을 충분한 설명이나 공론화 없이 던졌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논란을 키운 것은 발언의 수위보다 설명의 변화였다. 이 지사는 처음에는 새만금의 핵심 앵커 시설로 내국인 카지노가 포함된 복합리조트를 거론했지만, 비판이 거세지자 언론 인터뷰 등에서 원론적 구상일 뿐이며 도 차원에서 공식 검토를 지시한 적은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새만금개발공사 측에서는 이 사안이 이전부터 논의돼 왔다고 밝히면서, 정책 검토의 실체를 둘러싼 혼선은 더 커졌다. 이 대목에서 지역사회가 문제 삼는 지점은 카지노 찬반 그 자체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절차다. 내국인 카지노는 지역 경제와 관광산업, 사행산업 규제, 도박 중독과 공동체 비용까지 함께 걸린 민감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도민과의 숙의 과정 없이 도지사 공식 회견에서 먼저 꺼내 들었으니, 시민단체들이 “도민 기만” “밀실 추진”이라고 반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시민단체 "카지노 철회하라"
실제 전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새만금도박장저지군산범시민대책위원회 등 30여개 단체는 전북도청 앞 기자회견에서 새만금 내국인 카지노 계획의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이런 반발은 이례적이지 않다. 대형 개발사업은 절차적 정당성이 흔들리는 순간 추진 동력 자체를 잃는 경우가 많았다. 새만금 카지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들은 새만금 200조원 투자 유치 공약의 결론이 결국 도박장이냐고 반문하며, 전북의 미래를 사행산업에 맡길 수 없다고 비판했다. 강태창 전북도의원도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 공론화 없는 일방 추진은 도민주권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강원 폐광지역 주민과 단체들까지 생존권 위협을 이유로 반대에 가세하면서, 논란은 전북 내부를 넘어 전국적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강원 지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강원랜드는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다. 폐광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사회적 합의 속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새만금에 두 번째 내국인 카지노가 들어서면 이 독점 구조는 깨진다. 강원랜드 매출 감소는 곧 폐광지역 지원 재원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전북의 새만금 활성화 요구가 강원 폐광지역의 생존권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구조인 셈이다.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 다툼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년여 동안 이어진 쟁점 여전
이 논란이 더 예민한 이유는 새만금 카지노 구상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에도 새만금 내국인 카지노 도입을 위한 특별법 개정 논의가 있었지만, 강원권 반발과 시민사회 저항 속에 무산됐다. 당시에도 지역 경제 활성화 논리가 제시됐지만, 결국 도박 산업의 사회적 비용과 형평성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쟁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도박 규제와 지역 생존권 문제가 더 복잡해진 만큼, 더 무거운 설명 책임이 요구된다.
-속도보다 공론화가 우선
물론 전북특별자치도 처지에서 새만금의 돌파구를 서둘러 찾으려는 조급함은 이해할 수 있다. 새만금개발청은 최근 기본계획 재수립 방향을 통해 매립 목표 시점을 2050년에서 2035년으로 15년 앞당기고, 면적은 240.5㎢에서 169.6㎢로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매립 예산도 22조8000억원에서 22조4000억원으로 조정하고, 민간 중심 개발에서 공공 주도 방식으로 방향을 틀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9조원 투자 계획에 속도를 맞추겠다는 계산이 깔렸지만, 그럴수록 전북도는 더 신중했어야 했다. 전남·광주 반도체 투자와 비교되는 전북의 상대적 박탈감, 대통령의 전북 3중 소외론 반복, 새만금 개발 속도전은 분명 이 지사에게 강한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명분이 충분하다고 해서 절차가 생략되는 것은 아니다. 전북 몫을 찾겠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그 몫을 어떤 방식으로 찾을지부터 도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특히 내국인 카지노처럼 찬반이 첨예한 사안은 속도보다 공론화가 먼저다.
-도민 신뢰 '흔들' 우려
이 지사에게는 역설적으로 명분이 있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도민주권참여위원회 구성과 도민 제안 반영 등을 내세우며, 도민이 주인이 되는 도정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취임 뒤에도 도민 제안 80건을 민선 9기 공약과 도정과제에 반영하며 ‘도민주권정부’ 실현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새만금 카지노 문제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도민이 정책의 주체가 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내세웠다면, 이 문제도 공개 검토와 주민 숙의, 찬반 토론을 거치는 것이 순서다. 도민참여 공약은 선언에 그쳐선 안 된다. 이 지사가 강조해 온 도민주권정부는 정책 결정 과정 자체를 도민에게 개방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새만금 카지노처럼 찬반이 갈리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일수록 그 약속의 진정성이 시험대에 오른다. 도지사의 한마디가 곧바로 정책처럼 비치는 방식이 반복되면, 절차적 정당성은 물론 도정에 대한 신뢰까지 흔들릴 수 있다.
-경제적 편익-실질 비용 투명 공개 필요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철회 선언도, 무리한 강행도 아니다. 먼저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새만금 관광레저용지 개발에 카지노가 정말 필요한지, 경제적 편익과 사회적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법 개정 가능성과 지역 수용성은 있는지 도민 앞에 투명하게 내놓아야 한다. 그 뒤 공론화 과정을 통해 도민 판단을 구하는 것이 맞다. 전북이 새만금에서 또 한 번의 좌절을 겪지 않으려면, 절차를 지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원택 지사가 내건 도민참여 공약을 지키는 길이고, 10년 가까이 반복된 새만금 카지노 논란에 이번에는 마침표를 찍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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