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풍남초등학교
세대를 거듭하며 학교 모습은 달라졌지만, 교정에 남은 시간은 여전하다. 올해로 개교 107년을 맞은 '전주풍남초등학교' 이야기다. 손때 묻은 졸업앨범과 빛바랜 흑백사진, 긴 세월을 버틴 강당과 오래된 교훈 속에는 한 세기를 넘긴 학교의 기억이 남아 있다. 한때 학생 수 5000명을 넘기며 전주를 대표하는 학교로 불렸던 풍남초는 이제 졸업생 20여 명 규모의 작은 학교가 됐다. 규모는 달라졌지만 학교는 여전히 ‘우리는 전통에 빛나는 풍남의 후예’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에게 학교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누적 졸업생 수는 약 3만 7000명. 전주 원도심 한복판에서 107년을 이어온 풍남초를 찾아가 봤다.
강당 문을 열자 오래된 나무 냄새가 먼저 스친다. 길게 뻗은 창문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고, 아이들은 나무 바닥 위를 뛰어다닌다. 곳곳에 남은 세월의 흔적은 쉽게 감춰지지 않지만 공간은 여전히 살아 있다.
1936년 지어진 ‘풍남초 강당’이다. 이 강당은 전북특별자치도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긴 창문과 목조 구조, 높은 천장 등 근대 학교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오랜 세월 학생들의 입학식과 졸업식, 운동회와 발표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건물이라고 멈춘 공간은 아니다. 지금도 체육수업이 열리고 학교 행사가 열린다. 90년 가까운 시간을 지나온 강당은 오늘도 아이들 웃음소리로 채워진다. 풍남초는 1919년 전주여자공립보통학교로 출발했다. 이후 전주풍남공립소학교와 전주풍남국민학교를 거쳐 지금의 이름으로 이어졌다.
한때 풍남초는 전주를 대표하는 학교 가운데 하나였다. 학교와 가까운 전주북중·전주고가 지역 명문학교로 꼽히던 시절, 교육을 위해 인근으로 이사 오는 가정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풍남초를 거쳐 북중과 전주고로 이어지는 진학 흐름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지역 우수 학생들이 찾는 학교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누적 졸업생만 약 3만7000명에 이른다. 정치·교육·경제·법조계 등 지역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동문들도 적지 않다. 학교 측에 따르면 21대 국회 당시 풍남초 출신 국회의원이 5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의 변화는 학교 풍경도 바꿔놓았다. 한때 학생들로 북적였던 교정은 생활권 이동과 함께 점차 조용해졌다.
신도심이 생기고 생활권이 이동하면서 원도심 학교 대부분이 학생 수 감소를 겪었고 풍남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2025학년도 졸업생은 23명 수준이다. 한때 학생 수 5000명을 넘겼던 시절과 비교하면 학교 규모는 크게 줄었다.
지금의 풍남초가 가진 강점도 분명하다. 학생 수가 줄어든 만큼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더 가까이 살필 수 있게 됐다. 서로 얼굴과 이름을 알고 지내는 작은 학교 문화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규모는 달라졌지만 학교가 지켜온 시간과 전통은 여전히 교정 곳곳에 남아 있다.
학교 곳곳에는 107년 학교의 기억이 빼곡하다. 역사관에 자리한 오래된 졸업앨범과 단체사진, 옛 교문 현판, 교기, 역대 교장 사진까지 풍남초를 거쳐 간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 학생들은 오래전 교정을 떠났지만 학교는 여전히 그 기억을 현재 학생들과 나누고 있다.
역사관 한편의 타임캡슐도 눈길을 끈다. 졸업생들은 학교를 떠나며 30년 뒤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긴다. 캡슐마다 ‘2048년 2월 8일 개봉’과 같은 날짜가 적혀 있다. 훗날 다시 학교를 찾겠다는 약속이다. 학교는 오래된 기록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졸업생과 미래를 잇고 있었다. 100년 넘는 시간 동안 풍남초가 지켜온 가치는 결국 한 가지로 모인다. 학교를 아끼고, 스스로를 믿는 아이로 자라는 일이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전통에 빛나는 풍남의 후예다. 큰 꿈을 품고 그 훌륭한 자리에 서 우리 사회를 밝혀주는 등불이 되련다'라는 교훈처럼, 오래된 강당 나무 바닥 위를 뛰는 아이들처럼, 풍남초의 107년도 오늘을 지나고 있다.
▲전승복 전주풍남초 교장 미니 인터뷰
“풍남초의 107년 역사가 아이들에게 부담이 아니라 자부심이 됐으면 합니다.”
전승복 전주풍남초 교장은 오래된 학교의 가장 큰 가치로 ‘학교에 대한 애정’을 꼽았다. 단순히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가 아니라 학생들이 학교를 이해하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공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승복 교장은 “풍남초는 학교를 기억하고 관심을 갖는 동문과 학부모가 많아 책임감도 크다”며 “아이들이 ‘나는 풍남초 학생’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느끼며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학교는 학생들이 학교 역사를 놀이처럼 익히는 ‘학교 사랑 퀴즈’를 격주로 운영하고 있다. 교가 작사가와 학교 역사, 누적 졸업생 수 등을 맞히는 방식이다.
전 교장은 “단순히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아이들이 학교를 이해하고 애정을 갖도록 돕는 과정”이라며 “학교를 아끼는 마음은 결국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규모는 달라졌지만 아이들끼리 서로 더 잘 알고 가까워졌다”며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원도심 학교라는 강점을 살려 아이들이 한옥마을과 지역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교육도 이어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학생들이 학교를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후배들을 이끄는 풍남인으로 성장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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