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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라 Insight] 중기 보호정책 폐지와 부활의 의미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잘한 일이 많다’는 평가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누굴까? 2025년 말 한국갤럽에 따르면 노무현,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이명박, 문재인 대통령의 순이었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노무현 대통령은 막상 재임 중에는 인기가 없었다.

[전라 Insight] 중기 보호정책 폐지와 부활의 의미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잘한 일이 많다’는 평가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누굴까? 2025년 말 한국갤럽에 따르면 노무현,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이명박, 문재인 대통령의 순이었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노무현 대통령은 막상 재임 중에는 인기가 없었다. 지지층이 반대하는 정책이라도 나라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첫째,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추진이었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진보층과 중소기업, 농어민 등은 한미 FTA 협상과 그에 따른 시장개방에 반대했다. 하지만, 해외 시장 개척, 수출입 규모 확대, 나라 경제의 중장기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밀어붙였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평가해보면 신의 한 수였다. 2025년 기준 한국의 대미 경상수지 흑자는 1,114.2억 달러로서, 2005년의 72.7억 달러보다 15배 이상 크다.

둘째, 중소기업 보호정책의 폐지였다. 중소기업이라고 온실 속 화초처럼 키워서는 험한 세상 속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취지였다. 중소기업정책의 혁신을 실천에 옮겨 지정계열화제도(2006년 6월), 단체수의계약제도와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2007년 1월)를 폐지했다. 중소기업 지원방식을 직접적인 보호·육성 기조에서 간접적인 성장기반 조성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혁신수석비서관을 신설할 정도로 혁신과 경쟁을 강조했다. 이런 정책들은 서민과 중산층의 지지를 토대로 하는 민주당의 색깔과 맞지 않았고, 이익집단의 반발을 샀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고 했던가? 노무현 정부가 국정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면서 힘들게 폐지했던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는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되살아났고, 2018년 문재인 정부는 한술 더 떠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을 추가했다.

모든 정책과 제도에는 각각의 이유가 있다. 박정희 정부 초기부터 수출-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20여 년 밀고 온 결과 1970년대 말에 수출 중심 대기업과 내수 중심 중소기업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그 격차를 메우고자 1979년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를 도입했다. 중소기업만 영위할 수 있는 ‘고유업종’을 정부가 지정하면 대기업은 진입할 수 없었다. 노태우 정부(1989년) 당시 237개로 정점을 찍었고, 김영삼 정부에서 크게 줄었으며, 김대중 정부에서 절반 이하가 되었고, 노무현 정부에서 완전히 폐지됐다.

이명박 정부는 왜 폐지된 제도를 되살렸을까? 2008년 5월부터 미국산 소고기 수입 관련 광우병 시위가 커지면서 임기 첫해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했다. 그해 9월 15일 미국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었다. 양극화, 골목상권 살리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정치적 의제가 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2011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적합업종은 정부가 지정하는 게 아니라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지정한다. 과거의 고유업종과는 규제 방식과 강도가 다르다(<표 1> 참고). 2011년 최초로 79개 품목을 적합업종으로 지정했고, 2013~2015년 약 100개 내외로 확대됐다. 이후 상당수는 상생협약이나 시장감시 대상으로 전환되었고, 지정 종료됐다. 그 결과 현재는 방역소독업, PVC수도관, PE수도관, 아스콘, 펌프카 등 10여 개만 운영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중소기업 중에서도 더 열악한 소상공인에 대한 보호 및 지원을 강조했다. 2018년 통과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을 지정했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29개 업종·품목이 신청되었고, 심의를 거쳐 11개 업종·품목이 지정되었다. 나머지 상당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약 등 다른 방식으로 해결되었다. 2026년 현재 두부,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콩나물, 떡(일부), 김치(일부), 국수, 서적-잡지 소매업, LPG 판매업 등 총 11개 업종·품목이 유지되고 있다.

프랑스와 일본 등에서도 대규모 유통점(할인매장)에 대한 입지 규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폐지되었다. 특정 업종이나 품목을 두고 대기업의 진입을 규제하는 사례는 한국이 예외적이다. 인도에서 유사한 규제가 있었지만, WTO 가입 이후 축소되었고 지금은 없어졌다.

대기업의 진입을 규제한 후 중소기업은 더 좋아졌을까? KDI(2022)의 성과 분석에 따르면, 적합업종 제도는 중소기업의 퇴출률을 낮춰 '보호정책'으로서는 효과가 있지만, 생산성, 고용, 투자 등 경쟁력 제고에는 효과가 없다. 이런 결과는 노무현 정부가 보호보다 경쟁력 강화를 선택했던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KDI는 진입규제보다는 경쟁 질서의 확립과 혁신역량 강화 중심으로 제도의 패러다임을 바꾸라고 권고했다.

한국에서 이처럼 특정 업종이나 품목에 대한 진입규제가 남아있는 이유는 뭘까? 노무현 대통령이 없앤 제도가 왜 다시 살아났을까? 해방 이후 오래 이어진 수출·대기업 편향의 경제발전 전략이 초래한 후과(後果), 즉, 한국적 특수성일까? 미국에서는 일반적 현상이라고 본다. 정부 업무는 이해관계(interest)와 이익집단(interest group)의 영향을 받으며, 정부 기관과 이익집단 사이에 규제 정치가 작동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제임스 윌슨(1980)은 정책별로 예상되는 1인당 비용·편익의 크기 또는 총비용·총편익의 분포(분산 또는 집중)에 따라 형성되는 정부 기관과 이익집단의 정치 유형을 고객 정치(client politics), 이익집단 정치(interest group politics), 기업가 정치(entrepreneurial politics), 대중 정치(majoritarian politics)의 4가지로 분류했다(<표 2> 참고).

중소기업 지원정책은 소수의 수혜 중소기업에 정부의 투·융자 자금과 보조금을 지급하고 다수의 국민이 비용을 부담하는 ‘고객 정치’에 해당한다. 정부 기관은 이익집단의 자원에 의해 포획되기 쉬우며 공생관계가 형성되기 쉽다. 중소기업 정책이 백화점식으로 많고 예산이 계속 늘어나는 배경에 ‘고객 정치’가 있다고 해석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나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과 같은 진입규제 정책에서는 ‘이익집단 정치’가 발생한다. 규제에 따른 혜택을 크게 보는 기업들은 정책을 강하게 지지하지만, 진입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손해가 크므로, 두 이익집단의 찬성-반대 로비가 치열하다. 박정희 정부가 도입한 ‘고유업종’ 제도가 노무현 정부에서 폐지되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적합업종’으로 되살아나고, 문재인 정부에서 ‘생계형 적합업종’이 추가된 것처럼 이익집단 정치는 생명력이 강하다. 한 번 형성된 이해관계는 정책의 성패와 무관하게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이익집단 정치를 간과하면 정책이 실패하기 쉽다. 지난 2024년 윤석열 정부는 3,058명이던 의대 입학정원을 갑자기 1년 만에 1,500명 더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의사들과 의대생 모두 크게 반발했고 정부 발표는 허언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사후 재평가받은 이유는 뭘까?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보다 한국경제의 미래를 우선했던 공심(公心) 때문이다. 중소기업 보호 대신 혁신과 경쟁을 권했기 때문이다. 경쟁이 에디슨보다 훌륭한 인류 최고의 발명가이며, 그로 인한 발명과 경쟁력 제고가 중소기업을 보호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당장의 표보다 미래의 경쟁력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제도와 정치다.

전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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