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바다 끝에서 먼저 불어오면, 전북 서해안 사람들의 식탁에는 어김없이 전어 이야기가 오른다.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익살스러운 옛말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숯불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전어 한 마리에서는 기름진 향이 피어오르고, 그 냄새는 가을 저녁의 허기를 단번에 깨운다.
군산과 부안의 포구에서도 전어는 오랫동안 계절의 소식이었다. 격포 앞바다와 군산 연안으로 전어가 들면 어민들은 바빠졌고, 수산시장과 횟집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한 접시의 전어회에는 바다의 싱그러움이 담겼고, 소금구이 한 마리에는 가족이 둘러앉던 가을 저녁의 온기가 담겼다.
전어는 크지 않은 생선이다. 하지만 가을의 전어는 작아서 더 특별하다. 은빛 비늘을 가진 전어는 산란기를 지나며 살과 지방이 차오르고, 9~10월이면 특유의 고소한 맛이 절정에 이른다. 해양수산부도 올해 9월 이달의 수산물로 전어를 선정했다. 뼈째 먹을 수 있어 칼슘 섭취에 도움이 되고,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 EPA·DHA 등 오메가-3 지방산도 품고 있는 가을철 대표 수산물이다.
한 점의 회, 한 마리의 구이
전어를 가장 먼저 만나는 방법은 회다. 잘게 썬 전어를 뼈째 썰어낸 세꼬시는 오도독 씹히는 뼈의 식감과 부드러운 살맛이 한데 어우러진다. 초고추장을 곁들이기도 하지만, 전어 본연의 맛을 좋아하는 이들은 고소한 참기름이나 깻잎 한 장에 쌈장을 살짝 올린다. 입안에서 퍼지는 담백함 뒤로 은근한 기름맛이 따라온다.
회무침은 또 다른 가을의 표정이다. 아삭한 채소, 새콤달콤한 양념, 전어의 고소함이 어울리면 잃었던 입맛도 되살아난다. 빨갛게 버무린 전어회무침 한 젓가락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포구의 바람과 장터의 소란까지 함께 떠오른다.
그러나 전어의 진짜 매력은 역시 구이다. 천일염을 살짝 뿌린 전어를 통째로 불판에 올리면, 껍질은 바삭하게 익고 속살에서는 기름이 배어난다. 지글지글한 소리와 함께 피어나는 연기는 가을을 가장 잘 설명하는 향기다. 전어는 굽는 과정에서 뼈까지 부드러워져 통째로 먹기 좋다. 고소한 기름맛, 바삭한 껍질, 담백한 속살이 어우러져 한 마리를 먹고도 젓가락을 쉽게 놓지 못하게 한다. 전어 소금구이는 가을 전어 특유의 진한 풍미를 가장 잘 살리는 대표 조리법으로 꼽힌다.
줄어든 어장, 더 귀해진 가을맛
다만 전어를 기다리는 마음은 예전보다 간절해졌다. 군산과 부안 앞바다에서 활발하던 전어 조업은 시간이 흐르며 크게 줄었다. 특히 군산에서는 전어를 잡는 연안선망 어선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현장 목소리도 나온다. 2024년 당시 전북 연안의 높은 수온과 어획량 감소가 전어 공급에 영향을 줬으며, 군산·부안 해역의 평균 수온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3도 높은 27~28도 수준으로 관측되기도 했다.
부안의 전어 조업 풍경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2002년 부안의 9월 말 전어 어획량은 200t으로, 전년 같은 시기 300t의 약 3분의 2 수준에 그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에도 어민들은 줄어든 전어를 걱정했고, 8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이어지던 짧은 조업철을 아쉬워했다.
전어 감소의 원인을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수온 변화, 어장 환경, 조업 여건, 어선 수 감소 등이 함께 작용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예전처럼 “전어가 지천”이라는 표현을 듣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식탁에 오른 전어 한 접시는 단순한 제철 음식이 아니라, 전북 서해의 계절과 어민의 시간, 바다가 건네는 귀한 선물이 됐다.
포구에서 식탁까지, 전어의 짧은 여행
전어가 가장 맛있는 순간은 꼭 유명한 음식점의 접시 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벽 포구에서 갓 들어온 전어가 수산시장 좌판에 놓이고, 상인은 비늘에 남은 바닷물을 털어내며 손님을 맞는다. 은빛 몸을 반짝이는 전어를 고르는 손길에도 가을은 묻어난다. “이맘때 전어는 살이 차서 구워도 좋고, 회로 먹어도 좋다”는 상인의 말 한마디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계절의 안내다.
집으로 가져온 전어는 복잡한 손질이나 화려한 양념이 필요 없다. 굵은소금을 살짝 뿌려 팬이나 석쇠에 올리고, 노릇하게 익을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기름이 배어 나온 껍질은 바삭하고, 살은 부드럽다. 무, 양파, 풋고추를 곁들여도 좋고, 깻잎에 마늘과 쌈장을 얹어 한입에 먹어도 좋다. 한 마리의 전어가 식탁에 오르면 평범한 저녁은 어느새 작은 가을 잔치가 된다.
전어는 손님을 대접하는 음식이면서도 가족의 기억을 불러오는 음식이다. 고소한 냄새를 맡고 아이들은 불판 곁으로 다가오고, 어른들은 “예전에는 전어가 참 많았다”고 옛 포구의 이야기를 꺼낸다. 줄어든 어획량 탓에 더 귀해진 전어지만, 그래서 더욱 올가을의 한 접시는 바다와 사람, 계절이 함께 차려낸 소중한 맛으로 남는다.
전어가 건네는 가을의 안부
전어는 화려한 생선이 아니다. 살집이 두툼한 대형 횟감도 아니고, 값비싼 진미로만 기억되는 생선도 아니다. 그러나 가을이면 사람들은 전어를 찾는다. 그것은 전어에 맛 이상의 것이 있기 때문이다.
군산 수산시장의 활기, 부안 격포항의 바닷바람, 가족과 둘러앉은 불판, 검게 그을린 전어 껍질을 떼어내며 나누던 이야기. 전어는 그렇게 전북 서해안의 가을을 기억하게 하는 생선이다.
올가을 전어를 만난다면 서두르지 말 일이다. 한 점의 회를 천천히 씹고, 소금구이에서 피어나는 향을 충분히 맡아보자. 고소한 맛은 혀끝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맛은 바다를 지키며 살아온 어민들의 손길과, 조금씩 귀해지는 계절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던 전어의 향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다만 이제는 더 귀하게, 더 오래 기억하며 맛봐야 할 전북의 가을맛이 됐다. 최병호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