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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라 Insight] 남원추어탕 '미꾸라지 활력 통째로 담은 영양 한가득'

남원의 새벽은 미꾸라지 삶는 김으로 시작된다. 아직 해가 산 너머로 고개를 내밀기 전, 추어탕집 주방에서는 솥이 먼저 깨어난다. 팔팔 끓는 국물 위로 피어오르는 수증기 속에는 남원 사람들의 삶과 시간이 녹아 있다.

[전라 Insight] 남원추어탕 '미꾸라지 활력 통째로 담은 영양 한가득'

남원의 새벽은 미꾸라지 삶는 김으로 시작된다. 아직 해가 산 너머로 고개를 내밀기 전, 추어탕집 주방에서는 솥이 먼저 깨어난다. 팔팔 끓는 국물 위로 피어오르는 수증기 속에는 남원 사람들의 삶과 시간이 녹아 있다. 남원을 대표하는 음식, 추어탕은 단순한 향토음식을 넘어 이 도시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하나의 문화다.  편집자

이른 시간, 주인은 말없이 손을 움직인다. 미꾸라지를 깨끗이 씻어 솥에 넣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거품을 걷어낸다. 불의 세기를 낮추며 국물을 다스리는 손길에는 오랜 경험이 배어 있다. “불이 세면 맛이 거칠어져요.” 짧은 한마디 뒤로 다시 고요한 시간이 흐른다. 이처럼 추어탕 한 그릇에는 손과 시간이 켜켜이 쌓인다.

추어탕의 뿌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번기, 논에서 잡은 미꾸라지로 허기를 달래던 데서 비롯됐다. 진흙 속에서 건져 올린 작은 생명은 그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됐다. 섬진강과 요천이 흐르는 남원의 자연은 그 기억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남원 추어탕의 특징은 ‘통추어’ 방식이다.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통째로 삶아내는 조리법이다. 솥 안에서 미꾸라지는 서서히 풀리며 국물에 스며들고, 들깨가루가 더해지면서 고소한 향이 살아난다. 여기에 산초가루를 얹으면 특유의 향이 더해진다. 남원 사람들은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보다 재료의 질감을 살린 ‘씹히는 맛’에서 음식의 깊이를 찾는다.

이 한 그릇이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이유는 맛에만 있지 않다. 추어탕은 대표적인 보양식이다. 미꾸라지는 단백질 함량이 높은 식재료로, 100g 기준 약 15~18g의 단백질을 함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칼슘과 철분이 풍부해 뼈 건강과 빈혈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미꾸라지의 점액 성분에는 콘드로이틴 황산이 포함돼 있어 관절 건강과 피부 탄력 유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물에 더해지는 들깨 역시 영양적 가치가 높다. 들깨에는 오메가-3 지방산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혈관 건강과 콜레스테롤 개선에 도움을 준다. 실제로 국내 영양학계에서는 들깨가 심혈관 질환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식재료로 평가된다. 여기에 산초는 소화를 돕고 특유의 향으로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추어탕 한 그릇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다양한 영양 성분이 결합된 ‘균형식’에 가깝다.

한의학적으로도 추어탕은 여름철 대표 보양식으로 꼽힌다. 기력을 보하고 위장을 따뜻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무더위로 체력이 떨어지기 쉬운 시기, 뜨거운 추어탕을 먹으며 땀을 내는 ‘이열치열’의 식문화가 이어져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아침이 밝아오면 식당 안에는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는다. “뜨겁게 한 그릇 주세요.” 짧은 주문이 오가고, 곧이어 뚝배기가 상 위에 놓인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함께 김이 올라오고, 숟가락이 국물 속으로 들어간다. 첫 숟가락을 넘기는 순간, 굳어 있던 얼굴이 풀린다.

주방과 홀 사이를 오가는 발걸음도 분주해진다. “들깨 더 드릴까요?” “산초는 취향껏 넣으세요.” 익숙한 말들이 오가며 식당 안의 온도를 높인다. 벽시계는 느리게 흐르는 듯하지만, 그 안의 시간은 따뜻하게 움직인다.

남원의 한 노포 주인은 말한다. “추어탕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입니다. 미꾸라지를 손질하고 삶고, 국물을 내는 데 시간이 걸리죠. 그 시간만큼 정성이 들어갑니다.” 실제로 한 솥의 국이 상에 오르기까지는 여러 번의 손질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 맛을 만든다.

점심 무렵이 되면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 찬다. 여행객과 주민, 일꾼과 직장인이 한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나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안고 들어온 사람들이지만, 뜨거운 국물 앞에서는 모두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 말은 길지 않지만, 한 그릇을 사이에 둔 공기는 충분히 따뜻하다.

계절도 이 한 그릇에 담긴다. 여름에는 지친 몸을 추슬러 주고, 겨울에는 얼어붙은 속을 녹인다. 비 오는 날에는 국물의 향이 더 진하게 퍼지고, 바람 부는 날에는 뚝배기의 온기가 더 오래 남는다. 추어탕은 그렇게 날씨와 함께 숨 쉰다.

남원은 춘향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또 하나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바로 추어탕이다. 화려함 대신 시간을 쌓아온 음식, 그 소박함이 도시의 깊이를 말해준다.

해가 완전히 떠오른 뒤에도 주방의 솥은 쉬지 않는다. 국자는 계속 움직이고 김은 끊임없이 피어오른다. 누군가는 그 냄새를 따라 문을 열고 들어오고, 누군가는 익숙한 자리에서 같은 맛을 기다린다. 그리고 또 한 그릇이 완성된다.

남원 추어탕은 그렇게 이어져 왔다. 논에서 시작된 한 그릇의 국이 도시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기까지, 그 중심에는 변하지 않는 맛과 사람의 시간이 있다. 그리고 오늘도 남원의 아침은 그 이야기를 다시 끓이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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