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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라 Insight] 김현철의 ‘보리밭’과 ‘산길’에 나타난 향토적 조형성

부안 출신 김현철은 전북 근대미술의 형성과 미술교육에 참여하며 지역의 자연을 꾸준히 그렸다.

[전라 Insight] 김현철의 ‘보리밭’과 ‘산길’에 나타난 향토적 조형성

부안 출신 김현철은 전북 근대미술의 형성과 미술교육에 참여하며 지역의 자연을 꾸준히 그렸다. 이 글은 두 점의 ‘보리밭’과 ‘산길’을 중심으로 그의 풍경에 나타난 향토적 조형성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김현철 산길

전북 근대미술에서 김현철(1924~1980)은 지역 화단의 형성에 참여하며 자신의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 바다와 암벽, 산과 계곡, 들녘 등 지역의 자연은 그의 주요 소재였다.

그러나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옮기는 데 머물지 않았다. 지형의 구조와 색채, 표면의 감각을 화면의 구성과 물감의 질감으로 풀어냈다. ‘보리밭’과 ‘산길’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김현철이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978년에 제작한 두 점의 ‘보리밭’은 같은 크기와 제목을 지녔지만 색채와 분위기는 서로 다르다.

푸른 하늘 아래 황금빛 들판이 펼쳐진 ‘보리밭’(33×41cm, 하드보드에 유채, 1978)은 화면 아래쪽에 넓은 들판을 두었다. 그 위로 낮은 산등성이와 하늘이 이어진다. 황색과 황토색을 중심으로 녹색과 청록색이 겹쳐지며 밝은 들녘을 이룬다. 낮은 지평과 넓은 색면은 땅의 펼쳐짐을 강조한다. 물감의 두께와 방향은 밭의 고랑과 흙의 결을 연상시킨다. 보리이삭의 세밀한 묘사보다 땅의 넓이와 색채의 층이 화면을 이끈다.

보리밭 하드보드

보리밭. 캔버스

또 다른 ‘보리밭’(33×41cm, 캔버스에 유채, 1978)은 짙은 회색과 녹회색의 하늘 아래 황색 들판이 놓여 있다. 앞의 작품보다 색조가 무겁고 하늘과 땅의 대비도 강하다. 황색과 갈색, 녹색이 겹쳐진 들판은 화면에 묵직한 밀도를 더한다.

두 작품의 색채는 다르지만 낮은 지평과 넓은 들판을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한다는 점은 같다. 같은 보리밭을 다루면서도 색채와 물감의 밀도를 달리해 서로 다른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두 ‘보리밭’에서 눈여겨볼 것은 보리이삭의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다. 그는 낮은 지평과 수평으로 이어지는 색면을 통해 들판의 넓이를, 나이프로 밀고 긁은 물감은 땅의 결을 드러낸다. 실제 들녘의 평평한 지형이 화면에서는 수평적인 구성으로 바뀐다. 자연의 외형보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공간과 표면의 특징을 화면에 담은 것이다.

보리밭은 자연인 동시에 사람이 일구어 온 생활의 공간이다. 화면에 사람은 등장하지 않지만 밭의 구획과 고랑에는 경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이 이어져 온 들판에는 자연과 사람의 시간이 함께 쌓여 있다.

김현철의 ‘보리밭’에서 읽히는 향토성도 여기에 있다. 농촌 풍경을 그렸다는 사실보다 사람이 살아온 땅의 모습을 화면의 구성과 질감으로 옮겼다는 점이 중요하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산길’(53×65cm, 캔버스에 유채)은 다른 공간을 보여준다. 비탈과 바위가 화면을 크게 차지하고 그 사이로 길이 굽어 올라간다. 먼 능선과 하늘은 화면 위쪽에 좁게 놓였다. 화면 대부분은 산비탈과 바위, 풀과 흙으로 채워져 있다. 넓게 펼쳐지는 ‘보리밭’과 달리 ‘산길’에서는 경사와 굽은 길이 화면의 움직임과 깊이를 만든다.

두 작품을 함께 보면 지형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가 더욱 분명하다. ‘보리밭’에서는 시선이 낮은 지평을 따라 좌우로 펼쳐진다. ‘산길’에서는 굽은 길을 따라 화면 안쪽으로 들어간다. 하나는 넓이로, 다른 하나는 깊이로 공간을 만든다. 그는 지형의 특징에 따라 화면의 질서를 달리했다.

그는 나이프의 사용을 달리해 자연의 모습뿐 아니라 그 표면에서 느껴지는 감각까지 물감의 흔적으로 옮겨 온다. 나이프는 회화의 질감으로 바꾸는 조형적 수단이다. 같은 도구를 사용하면서도 지형에 따라 움직임과 밀도를 달리한 것이다. 자연의 표면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물감의 두께와 긁힘을 통해 다시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

김현철의 향토적 조형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향토성을 고향의 산과 들을 그렸다는 사실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무엇을 그렸는가와 함께 그것을 어떻게 그렸는가를 보아야 한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지역적 성격은 김현철이 전북에서 이어 간 활동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1924년 부안에서 태어나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중퇴했다. 1947년 대한미술협회전 특선, 1948년 문교부전에 입선했다. 30여 년 동안 중·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하면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며 작품 활동을 이어 갔다. 권영술과 함께 신상미술회 창립 회원으로 활동했다. 1969년 전북도전 창립위원으로 참여했고, 1970년에는 전북미술연구소를 창설했다.

그의 행보를 보면 창작과 미술교육, 지역 화단에서의 활동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오랜 기간 미술교육을 담당하면서 작품 제작을 이어 갔고, 신상미술회와 전북도전, 전북미술연구소 등을 통해 지역 화단에도 참여했다. 교육과 창작, 화단 활동이 전북이라는 지역 안에서 함께 이어졌다는 점은 그의 미술사적 위치를 이해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지역미술의 역사는 제도와 단체, 전시의 기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 화가가 자신이 살아온 곳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것을 어떤 회화의 언어로 남겼는가도 중요하다. 김현철은 전북 화단과 미술교육에 참여하는 한편 지역의 자연을 꾸준히 화면에 담았다.

김현철은 자신이 살아온 자연의 구조와 감각을 자신의 회화적 형식으로 바꾸어 냈다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전북의 향토적 미감을 근대 회화의 언어로 보여주며 전북미술의 한 흐름을 이루고 있다.

전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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