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전라매일은 덕유산 계곡에 모인 전국 청소년 1만4000여명의 환경정화 활동을 사진으로 보도했다. 피서객이 남긴 쓰레기로 몸살을 앓던 계곡에서 청소년들은 “자연은 우리 미래”를 외쳤다. 30년이 지난 지금, 계곡의 풍경은 달라졌다. 쓰레기 투기는 줄었지만 자연을 돈벌이 공간으로 점유하는 불법 평상·그늘막·음식점 영업이 새 과제가 됐다.
1994년, 쓰레기와의 전쟁.
1994년 7월 28일자 전라매일 ‘전북의 환경’ 지면은 청소년 환경합창을 전면에 배치했다. 전국 청소년 1만4000여명이 덕유산 계곡에서 정화 활동을 벌이는 장면도 실었다. 당시 기사는 오염 감시, 쓰레기 투기 금지, 자연 보호 의식 확산을 촉구했다.
1990년대 여름 계곡은 피서객이 떠난 뒤 비닐봉지와 일회용품, 음식물 쓰레기로 뒤덮이기 일쑤였다. 자연을 공공의 자산이 아니라 버려도 되는 공간으로 보는 인식이 문제의 뿌리였다. 환경운동은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넘어 시민의 행동을 바꾸는 교육이었다.
변화는 분명하다. 오늘날 다수 시민은 계곡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되가져가는 일을 기본 예절로 받아들인다. 지자체와 국립공원,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정화 활동과 분리배출 문화 확산도 이런 변화를 뒷받침했다. 30년 전 청소년들이 던진 질문은 생활 속 규범으로 상당 부분 자리 잡았다.
쓰레기 대신 점령한 평상.
그러나 계곡 문제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모습을 바꿨다. 일부 업소는 하천과 계곡 주변에 평상과 그늘막, 물놀이 시설을 설치하고 자릿세를 받거나 식당 영업을 한다. 처음에는 피서객 편의를 위한 시설처럼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 공간을 사실상 사유화하는 영업 구조로 번졌다.
정부가 2025년 전국 하천·계곡을 조사해 확인한 불법 점용시설은 645건이다. 지방하천 266건, 국가하천 215건, 소하천 155건 순으로 많았으며, 평상·그늘막은 100건, 상행위는 71건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2월 국무회의에서 “전국 조사 건수가 수백건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전면 재조사와 감찰 검토를 지시했다. 전면 재조사가 마무리된 뒤 정부가 확인한 불법 점용행위는 약 3만3000건으로 늘었다. 지방하천 1만3736건, 소하천 1만153건, 구거 4277건, 국가하천 3575건 순이다. 이조차도 많이 축소된 숫자라는 게 일반 시민들의 판단이다. 불법시설은 하천 흐름을 막아 집중호우 때 안전사고 위험도 키운다.
불법 평상은 이용자의 선택권도 훼손한다. 누구나 이용해야 할 계곡 물가가 업주의 영업구역으로 바뀌고, 피서객은 음식 주문이나 자리 이용료를 사실상 강요받는다. 자연을 깨끗이 쓰자는 1994년의 환경운동이 이제 자연을 누구의 소유로 둘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간 이유다.
오수는 더 엄격히 봐야.
더 심각한 문제는 계곡 음식점과 숙박업소의 오수 관리다. 평상과 식당이 늘어나면 조리수와 세척수, 화장실 오수가 늘어난다. 적정 처리시설을 갖추지 않거나 시설을 제대로 가동하지 않으면 오염물질은 계곡과 하천으로 흘러든다.
오수 무단방류는 과거 단속에서도 확인된 문제다. 서울시 특별사법경찰은 2011년 하수처리구역 밖 대형음식점 50곳을 조사해 18곳의 위반을 적발했고, 일부 업소의 방류수는 하천 생활환경 기준을 크게 초과했다. 전북의 모든 계곡 음식점이 이런 방식으로 오수를 처리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계곡 영업시설의 오수 배출 경로와 처리시설 정상 가동 여부를 상시 점검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수질 정화에는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든다. 반면 오염원 관리는 배출 전에 차단할 수 있다. 주말에는 접어둔 평상을 다시 펴고, 휴일이 끝난 뒤 오수가 흘러드는 일이 반복된다면 하류 수질 개선 사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된다.
단속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는 2026년 하천·계곡 불법 점용시설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재설치 우려 지역은 특별관리하고 단속 인력과 순찰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단속 실적이 곧 해결을 뜻하지는 않는다. 불법시설은 휴가철에만 설치됐다가 단속 이후 다시 등장할 수 있다. 행정이 업주의 민원과 지역경제 논리에 밀리면 원상복구 명령은 종이 위 조치에 머문다. 반복 위반 업소에는 즉시 철거와 이행강제금, 영업 관련 행정처분을 연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는 반복 설치 시설에 대한 즉시 철거와 최대 1000만원 이행강제금 부과 근거를 담은 제도 개선도 추진했다.
전북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계곡을 중심으로 하천 점용허가, 식품위생 영업신고, 개인하수처리시설 신고, 오수처리시설 유지관리 기록을 한 번에 들여다보는 합동 점검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환경부와 지자체, 산림 당국, 경찰이 각자 단속하는 방식으로는 업소의 편법 영업을 따라가기 어렵다.
다음 30년의 기준.
30년 전의 과제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시민을 만드는 일이었다. 다음 30년의 과제는 공공의 자연을 사적 영업으로부터 지키는 일이다. 시민의 환경의식은 높아졌지만, 그 성숙한 의식이 불법 영업의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
해법은 명확하다. 첫째, 계곡별 불법시설과 점용허가 현황, 처분 결과를 공개하고 담당 공무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둘째, 성수기 전후만이 아니라 주말·야간을 포함한 상시 점검 체계로 재설치를 막아야 한다. 셋째, 음식점과 숙박업소의 오수처리시설을 불시 점검하고, 위반 때는 신속히 영업 제한과 원상복구를 병행해야 한다. 넷째, 합법적으로 이용 가능한 공영 물놀이 공간과 주차·화장실·쓰레기 회수 체계를 늘려 불법 영업의 틈을 줄여야 한다.
1994년 덕유산에서 쓰레기를 주웠던 청소년들은 자연이 우리의 미래라고 말했다. 이제 그 말은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깨끗한 계곡은 쓰레기 없는 계곡에 그치지 않는다. 누구도 돈벌이를 위해 독점하지 못하고, 오수가 흘러들지 않으며, 다음 세대가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계곡이어야 한다./황성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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