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적은 건립자금에 나서는 이 없어 우여곡절 끝 세운 창원경제 거점

적은 건립자금에 나서는 이 없어 우여곡절 끝 세운 창원경제 거점 건물은 살아있지 않지만 또 살아있는 것이기도 하다... 외관은 세월 속에서 흐트러지지만, 그 공간 속 이야기는 숙성돼 묵직이 쌓여간다... 1986년 준공된 창원상공회의소 회관(성산구 신월동)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본다... 지금의 경남사회적경제혁신타운 옆 기아 창원서비스센터 자리다...

적은 건립자금에 나서는 이 없어 우여곡절 끝 세운 창원경제 거점

[건물이 품고 있는 이야기] 창원상공회의소

애초 대원동 현 기아서비스센터 터 낙점

이정석 2대 회장 의지로 신월동 터 마련

부족한 공사비에 나서려는 건설사 없어

우여곡절 끝에 1986년 말 마침내 완공

전두환 정권 때 2인자 전경환 씨 방문도

창원상공회의소는 성산구 신월동에 자리하고 있다. /남석형 기자

창원상공회의소는 1986년 신월동에 건립돼 40년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남석형 기자

건물은 살아있지 않지만 또 살아있는 것이기도 하다. 외관은 세월 속에서 흐트러지지만, 그 공간 속 이야기는 숙성돼 묵직이 쌓여간다. 1986년 준공된 창원상공회의소 회관(성산구 신월동)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본다.

창원상공회의소는 1900년 ‘마산상호회’를 뿌리로 두며 126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곳은 2011년 11월 창원·마산·진해를 묶어 통합 창원상의로 새출발했다. 기존 창원상의 회관이 통합 청사로 활용되며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돈에 맞춰 건물을 지어 주시오”

통합 이전 창원상의는 ‘창원 시 승격’에 맞춰 1980년 7월 설립됐다. 하지만 번듯한 청사를 곧장 마련하지는 못했다. 창원시 청사에서 더부살이로 시작해 이후 경남은행 창원지점(성산구 중앙동) 2층을 임차해 청사로 활용했다. 1대 의원부(회장 김태수 동양교통 대표이사)는 조직 안착과 함께 청사 건립에 힘을 쏟았다.

창원상의는 청사 후보지로 한 곳을 점 찍었다. 당시 대원동 동남공단전시장 주변에 땅을 샀다. 지금의 경남사회적경제혁신타운 옆 기아 창원서비스센터 자리다.

1980년 창원상공회의소 창립 총회 모습. /창원상의

창원상의 창립 후 두번째 사무실이었던 경남은행 창원지점 2층. /창원상의

그러던 중 창원상의 제2대 의원부가 1983년 8월 구성됐다. 이정석 남광석유판매 대표이사가 2대 회장(3·4대 연임, 총 재임 기간 1983년 8월~1992년 6월)을 맡았다. 그는 공단 쪽에 자리한 터 위치를 탐탁지 않아 했다. 이에 업무 지구 쪽으로 눈 돌리다 찾은 곳이 창원시청사 건너편 지금의 신월동 97-6번지(현 KBS창원 옆)다. 이때 경남도 역시 공익적 목적의 창원상의 청사 터 마련에 힘을 보탰다. 당시 경남도지사는 훗날 건설부 장관을 지낸 이규효 씨였다.

우여곡절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창원상의는 건물 건립 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창원상의 임원들과 소속 회원사들이 보증을 서며 자금을 끌어왔다. 또한 완공 때 1층에 입점키로 한 경남은행으로부터 선납금까지 받아 건립에 보태기로 했다.

이정석 창원상의 2대 회장이 1985년 11월 신축 회관 기공식에서 인사 말을 하고 있다. /창원상의

1986년 신축 공사 중인 창원상의 신월동 회관 모습. /창원상의

공사 계약도 순탄치 않았다. 넉넉지 않은 공사비에 맡겠다는 건설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롯데건설이 움직이려다 결국 발을 빼 버렸다. 창원상의는 경남종합건설에 손을 내밀었다. 이 회사 회장은 훗날 동남일보, 마산 성안백화점 등을 운영한 지역 재벌 김인태 씨였다.

이정석 창원상의 회장은 두터운 관계였던 김인태 경남종합건설 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건립비가 넉넉하지 않소. 있는 자금에 맞춰서 건물을 지어주시오.”

이해관계는 맞아떨어졌다. 경남종합건설도 업계 발판을 마련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창원상의는 그렇게 1985년 11월 청사 착공에 들어갈 수 있었다.

준공식 후 보안사 불려 간 직원들

이정석 창원상의 회장은 공사 현장에 매일 직원들을 보냈다. 여러 의미가 있었다. 창원상의에 1984년 입사해 2023년 1월 퇴직한 손무곤 전 상근부회장 말이다.

“현장을 감독하면서 우리 건물에 대한 애착도 키우라는 거죠.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공사장에 출근하다시피 했습니다. 우리가 본다고 뭘 알겠습니까. 그냥 함바(건설 현장 간이 식당)에서 막걸리 한잔 얻어먹고, 홍삼 같은 거 생기면 같이 나눠 먹으며 현장 사람들과 어울리곤 했죠.”

청사는 1986년 11월 10일 마침내 완공됐다.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였다. 건물 외관은 당시 상공회의소 전국 공통의 양식을 그대로 따랐다. 지금 구미·양산 상의 등과 비교해 보면 상단 이름만 다를 뿐 외관은 거의 흡사하다.

12월 8일 준공식도 직원들을 진땀 흘리게 했다. 창원상의는 건물 안내서를 만들어 귀빈들에게 배포했다. 그런데 전두환 당시 대통령 얼굴 사진이 뜬금없이 담겼다.

사연은 이랬다. 당시 공공기관 모두 그랬듯, 창원상의도 회장실 벽면에 전두환 당시 대통령 얼굴 사진을 걸어 놓았다. 창원상의 직원이 안내서 용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전두환 씨 모습이 회장실 탁자 유리에 비치며 사진에 담겼다. 언뜻 보면 전두환 씨 사진을 탁자 밑에 넣어둔 것 같았다. 독재정권은 불경스러운(?) 이 일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창원상의 직원들은 보안사에 불려 가 해명하며 아찔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1986년 11월 완공된 창원상의 신월동 회관. /창원상의

창원상공회의소는 1986년 신월동에 건립돼 40년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남석형 기자

창원상의 청사 40년 역사에서 대통령 방문 사례는 없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차기 권력을 눈앞에 뒀을 때인 1987년 5월 민주정의당 총재 자격으로 간담회에 참석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껏 방문자 중 최고 권력자는 전두환 씨 동생 전경환 씨라 할만하다. 이정석 창원상의 회장은 1980년대 대한체육회 이사도 맡고 있었다. 이에 남덕우 국무총리, 김집 체육부 장관 등 중앙 쪽에도 탄탄한 인맥을 자랑했다. 전경환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회장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는 전두환 정권 시절 ‘2인자’로 불리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전 회장은 새마을운동 행사차 경남에 왔다가 이 회장을 만나러 창원상의를 찾은 바 있다.

창원상의는 2006년 국가기술자격 상설 검정시험장을 개소했다. /창원상의

대회의실 한때 결혼식장으로 활용

공간 배치는 그 조직의 향후 방향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창원상의는 청사 마련 후 조사·통계·연구 기능에 중심을 두며 이 공간을 활용했다. ‘마산세관 창원출장소→창원세관 승격’은 신축 청사 마련 후 첫 결과물이었다. 또한 회원사를 위한 공간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창원상의 126년사> 집필 위원인 김기환 국립창원대학교 국제무역학과 교수 말이다.

“초창기 창원상의는 회의소라는 명칭에 걸맞게 회원사들 이용 공간을 많이 뒀습니다. 지하 등 곳곳에 회의실을 마련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특히 교육과 인재 양성에 공간을 할애하는 흐름을 보였습니다.”

창원상공회의소 내부 모습. /남석형 기자

대회의실은 주말에 회원사 임직원 결혼식장으로도 활용됐다. 초창기에는 매 주말 이용자가 있을 정도로 인기였다. 박희석 창원상의 기획조사국장은 이렇게 전했다.

“제가 1995년 입사했는데, 그때도 대회의실을 결혼식 공간으로 이용했습니다. 이후 번듯한 결혼식장이 많이 들어서면서 이용률이 갈수록 떨어졌고, 자연스레 1990년대 중후반부터 중단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창원상의는 복도 계단 벽면에 과거 미니갤러리 기념전 포스터를 전시해 놓고 있다. /남석형 기자

창원상의는 현 최재호 회장 체제에서 공간 재활용에 신경 쓰고 있다. 사진은 직원들을 위한 야외 쉼터 공간. /남석형 기자

창원상의는 2006년 국가기술자격 상설 검정시험장을 청사 내에 마련했다. 기술 자격시험을 연중 수시로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창원상의는 창원이라는 지역이 공업도시 이미지에 갇혀 있는 것에서 탈피하려는 노력도 병행했다. 공단 내 문학인과 문화 예술인 발굴에 시선을 뒀다. 연장선상에서 2009년 청사 1층에 미니 갤러리를 오픈해 지역 작가들에게 무료로 공간을 제공했다. 창원상의는 과거 기념전 포스터를 지금도 계단 복도에 전시해 놓았다.

이곳을 거쳐 간 기관도 여럿 있다. 대한무역진흥공사 창원지사는 1988년 3월 창원상의 건물에 입주했다가 이후 독립건물로 이사했다. 창원상의는 현재 5층 건물 가운데 지하 및 1~4층을 사용하고 5층 공간을 기업·기관에 임대하고 있다.

/남석형 기자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