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대학의 시릴리 스타흐니스 교수의 인터뷰 사진에 데이터 표준화, AI기술이전, 농기계 공동이용, 스마트농업 확산 관련 AI 활용 합성 이미지<사진 유환권 기자>
대동의 AI트랙터(HX1400AI)<사진 대동 제공>
대동의 AI트랙터(HX1400AI)<사진 대동 제공>
세계적인 전기·전자공학 분야 전문 학술단체인 IEEE(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가 수여한 로보틱스•자동화 분야의 연구 논문상 인증서가 독일 본대학 시릴리 스타흐니스(Cyrill Stachniss) 교수의 연구실 벽면에 걸려 있다.<사진 도복희 기자>
로봇공학, 자율주행, 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 3차원 포인트 클라우드 분석 분야에서 거둔 연구 성과가 독일 본대학 시릴리 스타흐니스(Cyrill Stachniss) 교수의 연구실 벽면에 걸려 있다.<사진 도복희 기자>
<5>유럽에서 찾은 충남 농업의 미래
농업에 인공지능(AI)과 로봇을 도입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비싼 농기계를 구입하고 첨단 센서를 장착하는 것이 출발점일까. 독일 본대학교의 시릴리 스타흐니스(Cyrill Stachniss) 교수의 설명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현장의 데이터를 축적하고, 서로 다른 장비와 시스템이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고령화와 인력난에 직면한 충남 농업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지자체가 농기계 구입 보조금을 지원하고 첨단 장비를 보급하더라도 농민이 활용하기 어렵거나 장비가 창고에 머문다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개별 장비의 보급 실적을 넘어 실제 이용률과 노동력 절감 효과를 따져야 한다.
본대학교에서 모바일 로봇공학과 자율주행 기술을 연구하는 스타흐니스 교수는 농업의 디지털 전환에서 데이터의 축적과 표준화, 기술의 현장 이전, 농민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 구조를 핵심 과제로 설명했다.
△데이터가 없으면 AI도 없다
AI는 스스로 농업의 모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무엇이 작물이고 무엇이 잡초인지, 어떤 조건에서 병해가 발생하는지, 언제 꽃이 피고 수확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농업 데이터에는 작물의 종류와 생육 상태, 토양과 기상 조건, 병해충 발생 기록, 농기계의 작업 정보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 자료가 여러 해에 걸쳐 축적되고 서로 비교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돼야 AI의 분석과 예측이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다.
문제는 데이터가 존재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농가와 장비 제조업체, 연구기관이 서로 다른 형식으로 자료를 기록하면 데이터를 결합하고 비교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 특정 기업의 장비에서 생성된 자료를 다른 시스템에서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스타흐니스 교수는 독일에서 추진되는 국가 차원의 연구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사례로 설명했다. 이 같은 사업은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데이터가 어떤 방식으로 수집·저장돼야 하는지에 관한 기준을 마련하고, 서로 다른 분야의 데이터가 호환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는 농업 분야에서도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저장하고 공통된 형식으로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관련 연구 인프라가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이러한 체계가 모든 농업 데이터를 정부가 직접 수집해 한곳에 모으는 방식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데이터 관리와 표준화에 필요한 규칙과 기반을 마련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충남이 검토할 과제도 여기에 있다. 농업기술센터와 연구기관, 농기계 임대사업소, 농가에서 생산되는 자료를 어떤 기준으로 기록하고 공유할 것인지부터 정리해야 한다. 병해충 발생 정보와 작목별 생육 데이터, 농기계 작업시간, 장비 고장 및 정비 기록 등을 공통된 기준으로 관리하면 지역별 농업정책을 설계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물론 데이터 공유가 농민의 동의와 개인정보·영업상 정보 보호를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고,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며, 다른 기관이나 기업과 공유할 때 어떤 권한과 책임을 적용할 것인지도 함께 정해야 한다.
△농기계가 데이터를 독점하면 농민은 선택권을 잃는다
첨단 농기계는 작업만 하는 장비가 아니다. GPS와 센서, 카메라가 장착된 기계는 작업 위치와 이동 경로, 작업량 등 다양한 정보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정보는 농작업을 분석하고 다음 작업을 계획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데이터가 특정 제조업체의 시스템에만 저장되고 다른 장비나 플랫폼에서 활용하기 어렵다면 농민의 선택권은 제한될 수 있다.
스타흐니스 교수는 대형 농기계 기업도 기계에 장착된 센서 등을 통해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때 데이터의 소유와 이용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실제 권리는 계약과 적용 법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농민이 자신의 작업 데이터를 어떻게 열람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농기계의 성능만 비교할 것이 아니라 데이터의 이동성과 호환성도 따져야 한다는 의미다. 한 제조업체의 장비를 사용하다 다른 회사 제품으로 바꾸더라도 기존 작업기록과 농장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충남의 농기계 지원사업에서도 기종과 작업기의 물리적 호환성뿐 아니라 데이터 연계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서로 다른 장비가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해서 모든 작업기가 기계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계적 결합, 전자제어, 통신규격, 안전성 등은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농기계 지원사업이 개별 장비의 구매에 머무르지 않고 장기적인 농업 디지털 기반을 구축하는 정책으로 발전해야 하는 이유다.
△독일의 기술이전에서 배울 점… 연구실에서 농장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농민이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스타흐니스 교수는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개발된 기술이 시장으로 이전되도록 돕는 지원사업이 독일과 유럽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나 유럽연합(EU)의 지원을 통해 창업과 기술사업화를 촉진하는 방식이다.
연구성과가 농업 현장에서 사용되려면 제품 개발과 시험, 사업화, 유지관리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연구실에서는 작동하던 장비도 비가 내리는 밭이나 진흙이 많은 토양, 경사가 있는 농경지에서는 다른 성능을 보일 수 있다. 농업용 기술은 작업 환경의 변화에 견디는 내구성과 안정성이 중요하다.
교수의 설명은 정부가 단순히 연구비를 지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연구성과가 실제 산업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인터뷰에서 언급된 지원체계가 충남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법·제도와 산업구조에 맞게 사업화 지원과 현장 실증 방식을 설계해야 한다.
충남은 대학과 농업기술센터, 농기계 기업, 농민이 함께 참여하는 실증사업을 검토할 수 있다. 지역에서 해결이 시급한 작업을 선정하고, 장비의 성능과 경제성을 검증한 뒤, 결과를 공개해 후속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밭작물 제초로 인한 노동 부담이 크다면 작목별로 AI 잡초 탐지와 정밀 제초 기술을 시험할 수 있다. 기존 방식과 비교해 작업시간, 약제 사용량, 인건비, 장비 운영비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측정해야 한다. 효과가 확인된 기술은 공동이용 장비로 도입하고,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원인을 분석해 개선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억대 장비를 개별 농가에 맡기지 말고 함께 쓰는 구조로
첨단 농기계는 가격이 높고 사용 시기가 한정돼 있어 개별 농가가 구입하기에는 부담이 클 수 있다. 특히 농지 규모가 작고 필지가 분산된 지역에서는 장비의 연간 이용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스타흐니스 교수는 독일에서 농민들이 조직을 통해 기계를 공동으로 구입하고 회원 농가가 빌려 쓰는 형태의 공동이용 방식이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농가가 첨단 장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으로 제시했다.
다만 인터뷰에서 언급된 공동이용 방식이 독일 전체에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다. 조직의 운영 형태와 이용료, 장비 배분, 정비와 보험 체계는 지역과 사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충남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농기계를 함께 구입하는 데 그치지 않는 운영체계다. 장비 예약과 배차, 농번기 이용 순서, 고장 신고와 정비, 보험 및 사고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공동이용 장비가 필요한 시기에 도착하지 않거나 고장 난 상태로 방치되면 농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따라서 기존 농기계 임대사업을 기반으로 지역 공동이용 체계를 단계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농업기술센터와 임대사업소가 장비 수요를 파악하고, 이용률이 낮은 고가 장비는 여러 지역에서 함께 활용하도록 운영하는 방식이다.
공주·부여·논산·청양 등 충남 남부권의 공동이용 모델을 검토한다면 지역별 작목과 농번기, 이동거리, 정비 인력의 여건을 먼저 분석해야 한다. 모든 장비를 광역 단위로 한꺼번에 통합하기보다 수요가 확인된 장비와 작업부터 연결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충남형 3단계 전략… 공동이용에서 정밀농업으로
충남의 농업혁신은 세 단계로 접근할 수 있다.
첫째는 공동이용 기반을 만드는 단계다. 기존 농기계 임대사업과 지역 내 장비 수요를 분석해 고가 장비의 공동이용을 확대한다. 예약과 배차, 정비, 보험, 이용료 체계를 정비하고 실제 이용률을 관리한다.
둘째는 데이터와 정밀농업을 연결하는 단계다. GPS와 카메라, 센서 등을 활용해 작황과 작업 정보를 축적하고, 서로 다른 장비와 시스템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 관리 기준을 마련한다. 잡초 탐지와 정밀 방제처럼 현장에서 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분야부터 적용한다.
셋째는 자율주행과 AI 기반 작업으로 확장하는 단계다. 현장 실증에서 경제성과 안정성이 확인된 기술을 중심으로 자율주행 장비와 정밀 제초, 작물 상태 분석 등을 도입한다. 농민이 직접 사용하기 어려운 기술은 공동이용 서비스나 전문 작업 대행 방식으로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이 단계는 장비 보급의 순서를 정하는 동시에 정책 성과를 검증하는 기준이 돼야 한다. 농기계 구매 대수만으로 성과를 평가하지 않고 이용률, 작업시간 절감, 농약·비료 사용량 변화, 농가 비용 부담, 고장 대응시간 등을 함께 측정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장비 구매 지원을 넘어서는 것
스타흐니스 교수의 인터뷰에서 드러난 핵심은 기술 개발만으로 농업의 전환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데이터가 축적돼야 하고, 데이터 형식과 이용 기준이 마련돼야 하며, 연구성과가 현장에 이전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농민이 기술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충남의 정책도 이러한 관점에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첫째, 작목별 농업 데이터를 장기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장비와 데이터의 호환성을 검토해 특정 기종이나 기업에 대한 종속을 줄여야 한다. 셋째, 공동이용과 현장 실증을 통해 고가 기술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넷째, 실제 효과를 측정해 사업을 확대하거나 개선하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데이터 축적에는 농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농민이 기록과 정보 제공에 협력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고, 데이터 제공이 어떤 공익적 효과와 개인적 이익으로 이어지는지 설명해야 한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역할, 자료의 이용 권한과 보안 기준도 명확해야 한다.
고령화와 인력 부족은 농촌이 직면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첨단 장비로 해결할 수는 없다. 지역별 농업 여건과 농민의 부담을 고려하지 않은 기술 도입은 또 다른 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충남 농업의 혁신은 가장 비싼 기계를 먼저 사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어떤 작업이 가장 시급한지 파악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축적하며, 검증된 기술을 농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장비를 보급하는 행정에서 기술이 실제로 쓰이도록 만드는 행정으로. 독일의 연구와 공동이용 사례가 충남에 던지는 과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복희·유환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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