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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자사주 소각 의무화 후폭풍···주주는 웃고, 기업은 속탄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자사주 82.5%인 8700만주(약 16조원)를 올 상반기 소각하기로 했다. SK는 1469만주(약 5조2000억원)를, 롯데지주는 524만주(약 1663억원)를 이달 31일 소각할 예정이다. 현대자동차·LG·한화...

자사주 소각 의무화 후폭풍···주주는 웃고, 기업은 속탄다

삼성·SK·롯데 등 수십조 소각 결단···경영권 방어막 걷히며 '기업 사냥' 현실화 우려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대기업들이 수십조원을 쏟아내는 사이 경영권 방어 수단을 잃은 기업들은 외국계 투기 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 생성이미지

3차 상법 개정안 시행으로 재계에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증시는 주당 가치 상승을 기대하며 반색하지만, 기업들은 세금 추가 납부·경영권 방어 수단 박탈·미래 투자 여력 잠식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했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자사주 82.5%인 8700만주(약 16조원)를 올 상반기 소각하기로 했다. SK는 1469만주(약 5조2000억원)를, 롯데지주는 524만주(약 1663억원)를 이달 31일 소각할 예정이다. 현대자동차·LG·한화·포스코홀딩스·HD현대 등도 이번 주총 안건에 자사주 소각을 올렸다. 개정 상법은 신규 취득 자사주는 1년, 기존 보유 자사주는 시행일로부터 1년 6개월 내 소각 또는 처분하도록 못 박았다.

수십조 소각에 세금 폭탄까지···성장 실탄 고갈 우려

가장 직접적인 타격은 현금 유출이다. SK가 직면한 상황이 단적인 사례다. 2015년 SK C&C와의 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양도차익은 주식 형태로 보유하는 동안 과세가 미뤄졌다. 그런데 자사주를 소각하는 순간 이는 세법상 주식 처분으로 간주돼 유예됐던 세금이 한꺼번에 확정된다.

시장에서는 이 세금 규모가 5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본다. SK만의 문제가 아니다. 롯데지주·HD현대·한화 등 과거 지주사 전환이나 계열사 합병 과정에서 자사주를 쌓아온 기업들도 비슷한 처지로 수천억원대 세금 고지서가 줄줄이 날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 동력 잠식도 현실적인 우려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R&D에만 역대 최대인 37조7000억원을 쏟아부으며 반도체 경쟁력 유지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16조원어치 주식을 소각하는 데 현금을 묶어두게 됐다. SK하이닉스·TSMC·인텔 등 경쟁사들이 HBM과 첨단 공정 확보를 위한 설비 투자에 속도를 높이는 국면에서 삼성전자가 주주 환원에 실탄을 소진하게 된 셈이다. 전기차·로봇·바이오 등 신사업 전환을 추진 중인 현대자동차와 LG도 마찬가지 딜레마에 처했다.

'자사주 마법' 소멸···롯데·SK, 경영권 방어막 허물어져

숫자 너머의 더 큰 문제는 경영권 안전판의 소멸이다. 자사주는 평소엔 의결권이 없는 잠자는 지분이지만, 적대 세력이 경영권을 위협할 때 우호 주주에게 넘겨 의결권을 살릴 수 있는 비장의 카드였다. 이 카드가 사라지는 것이다.

SK의 경우 이번에 소각하는 물량이 전체 발행 주식의 20.1%에 달해 최태원 회장의 개인 지분(17.9%)을 웃돈다. 특수관계인을 모두 합산해도 25.4%에 불과한 지배구조에서 자사주는 외부 공격을 막는 사실상 유일한 완충재였다. 소각 후 지분율이 31.9%로 높아지지만, 과거 소버린 사태처럼 해외 자본이 집중 매집에 나설 경우 방어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롯데지주는 상황이 한층 복잡하다. 신동빈 회장은 2017년 주요 계열사의 인적분할을 통해 롯데지주를 출범시키는 과정에서 자사주를 활용해 추가 출연 없이도 지배력을 끌어올리는 구조를 완성했다. 인적분할 시 지주사가 배정받은 사업회사 신주가 타 법인 주식으로 처리돼 의결권이 부활하는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이었다.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라는 뼈아픈 경험을 가진 롯데로서는 이 자사주가 단순한 재무 자산이 아닌 생존 장치였다. 그 장치가 이번 소각 의무화로 해제될 위기에 처했다.

차등의결권·포이즌필 외면···중소·중견기업 '무방비' 노출

대기업조차 이 정도의 충격을 받는데, 재무 체력이 약한 중소·중견기업의 상황은 더욱 절박하다. 대기업은 신용도를 바탕으로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자금 조달 창구가 제한된 중소·중견기업에 자사주는 위기 시 긴급히 현금화하거나 담보로 활용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보루였다. 의무 소각은 이 선택지 자체를 지운다.

문제는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3차 상법 개정안은 자사주 소각을 강제하면서도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도입은 담지 않았다.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중소·중견기업일수록 적대적 M&A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재계는 제도적 보완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M&A 등 경영상 불가피하게 취득한 자사주까지 일괄 소각 대상으로 삼는 것은 기업 활동에 과도한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방어 수단도 없이 무장해제만 시키는 게 문제"라면서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 같은 보완 장치 없이는 기업들이 외국계 투기 자본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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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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