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산청 책방하며 환경운동 이해성 씨
동생 뜻 이은 ‘지금부터 판타지’ 서점
번역가에서 지리산 환경 지킴이로
자연 품은 생태적 삶과 실천가 소명
소박하지만 소중한 것 위해 투쟁
산청읍에 하나 밖에 없는 서점 주인이자 동네 사랑방 모임지기, 번역가, 환경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해성 씨. /김태섭 기자
지리산 자락 산청읍내 한 골목길에 들어서면 ‘지금부터 판타지’라는 서점이 있다. 책 향기가 스민 서점은 카페를 겸하고 있어 은은한 커피향까지 더한다. 얼마 전부터는 테디베어 인형 작업을 하는 이와 공간을 나눠 쓰게 돼 아기자기한 인형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1986년생 이해성(40) 씨가 주인장이다. 그는 서점 대표이자 동네 사랑방 모임지기다. 지리산 지킴이 환경활동가인 그는 몇 년 전부터는 산청난개발대책위원회 일도 맡았다. 자연 속 삶이 몸에 밴 그의 삶에 자연과 생태, 인간이라는 뿌리가 단단히 박혀 있다. 이웃과 더불어 공동체 가치를 찾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리산 기운이 서린 산청에서 그를 만났다.
산청, 자연의 품으로 들어가다
해성 씨와 산청의 인연은 서른다섯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다섯 살이던 그는 부모님 손을 잡고 산청에 들어왔다. 산청에 연고가 있어 찾아온 길은 아니지만 문명 비판적인 관점에서 의식주와 문화생활, 교육을 해결하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부모님이 찾아낸 곳이었다.
해성 씨 가족은 생태적인 삶을 위해 자급자족 터전을 일구며 정착했다. 산청군 오부면 일물마을. 이웃 마을에서 꼬박 40분을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일물마을 가는 길은 비탈길을 오르며 땀을 흘려야 한다. 이곳은 한때 텔레비전에 오지마을로 소개될 만큼 외딴 곳이기도 하다.
“자연 속 삶이랄까요? ‘생태적 귀농(?)’을 선택한 부모님을 따라 산청에 왔어요.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문명과 떨어져 있는 생활을 하고 살았죠. 부모님은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 자연에서 먹거리를 얻고, 집과 가족을 돌보는 삶을 사셨어요. 저도 자연 속 자유를 만끼하며 살았죠.”
해성 씨는 자연스럽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몸으로 익혔다. 많은 이가 삶의 방향을 고민할 때 자연 속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며 살았다. 그는 책으로 배우는 자연이 아니라 숨 쉬듯 실천하는 일상 자체가 자연이었다. 몸이 알아 움직이는 삶의 근원이 바로 자연이었다.
이해성 씨가 딸 단야와 함께 서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태섭 기자
“지금부터 판타지야” 세상으로 나오다
해성 씨가 일물마을을 벗어나 산청읍으로 나온 것은 5년 전이다. 남동생 죽음이 해성 씨를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 젊은 나이에 희귀암인 부비동암 판정을 받은 동생은 암세포를 멈추고자 67일간 단식을 이어가다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자 듬직한 지원자였던 동생의 죽음은 해성 씨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동생의 죽음에 “내가 알을 깨고 나와 세상과 본격적으로 부딪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동생은 세상을 떠나기 전 해성 씨에게 ‘읍내에 음식점이나 카페 같은 공간을 해보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거짓말처럼 동생 장례식에 알고 지내던 서점 ‘까치밥’ 사장이 조문와 가게 인수 의사를 물었고, 그는 동생이 준 소명이자 연결고리로 여겨 서점을 인수했다.
해성 씨는 서점을 운영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타로를 공부하며 마음을 치유하는 강사 활동도 하고, 지역 단체들에 모임 공간을 제공하며 공동체 삶의 가치를 배웠다. 요즘은 ‘이로운 식탁’이라는 소셜다이닝 모임(밥이나 먹거리를 나누며 친구가 되는 모임)과 ‘영어 소설 꾸준히 읽기 모임’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동생 무덤에는 ‘나는 원래 꿈꾸는 자이니 한 번도 깨지 않았던 이 세상의 꿈을 깨러 간다’라는 묘비명이 적혀있다. 해성 씨도 이 세상에서 꿈을 꾸며 삶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판타지’라는 서점 이름도 49재 때 동생 친구가 꿈에 동생이 찾아왔다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잘 들어봐 지금부터 판타지야”라고 이야기한 데에서 따왔다. 해성 씨는 가끔이라도 환하게 웃던 동생이 꿈에 한번쯤 찾아와주길 바란다.
책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환경 활동가로
해성 씨는 책 4권을 한글로 옮긴 번역가다. 스무 살 무렵 시작한 번역은 산속 고립에서 벗어나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였다. 그가 번역한 작품은 <가이아의 정원>을 비롯해 <뒤뜰의 대장장이>,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매혹의 조련사 뮤즈>가 있다. 토비 헤멘웨이 쓴 <가이아의 정원>은 스스로 순환하는 숲의 원리를 마당과 텃밭에 적용하는 ‘퍼머컬처(지속가능한 농업·문화)’의 진수로 불리는 작품이다.
그의 번역에는 부모님을 따라 일물마을에서 삶의 경험이 고스란히 베어 있다. 평론가들은 그가 단순히 글자를 옮기는 작업을 넘어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문장에 녹여냈다고 평가했다. 어린 시절부터 마주하던 일상 그 자체가 번역에 투영된 것이다.
해성 씨는 이름 뒤엔 몇 년 전부터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이 따라붙었다. 서점을 시작한 뒤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을 반대하는 이들과 교류하다 환경운동에 동참하면서다. 해성 씨는 이 일을 두고 ‘소명’ 같다고 했다. ‘지구 어머니’ 관점에서 보면 환경을 지키는 일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구 어머니는 지구를 단순히 인간이 살아가는 물리적인 공간이나 자원으로 보지 않고, 모든 생명을 탄생시키고 기르고 품어주는 하나의 거대한 어머니(모성적 존재)로 인식하는 인류의 오래된 신화적, 철학적, 환경학적인 개념이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한눈에 다 담지 못하는 풍경까지…. 해성 씨는 신음하는 자연의 소리를 외면하지 못하고 환경활동가 길로 나섰다.
지난해 5월 20일 산청난개발대책위원회 창립 기자회견에서 이해성 씨가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하고 있다. /산청난개발대책위원회
소박하지만 소중한 것을 위한 투쟁
“개발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케이블카가 생기고 골프장이 들어서는 순간, 이 공공의 자산은 유료화되고 사유화됩니다.” 해성 씨는 세상으로 나와 가장 먼저 본 것은 개발로 몸살을 앓는 자연이었다.
그는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도시 지향적인 시선을 가질 때가 많다고도 했다. 개발사업이 진행되면 막연히 지역이 좋아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그는 주민들이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것이 우리의 삶과 터전을 살리고 파괴하는 일인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해성 씨는 지리산을 지키는 일에 힘을 보탰다. 지하수 개발에 신음하는 삼장면 사람들을 만났고,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차황면 주민과 함께 힘을 모았다. 해성 씨는 지금도 격렬한 투쟁의 현장이 어색할 때가 많다. 하지만, 당분간 환경 지킴이 소명을 다할 생각이다. 사람을 만나고, 자연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그들을 설득해 나갈 계획이다.
해성 씨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사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앞날 모습으로는 활동가로의 삶과 자연과 합일된 삶을 사는 두 가지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지금은 지리산과 지역 환경을 지키고자 활동가 쪽에 무게추가 실려 있지만, 앞으로 또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도 궁금하다고 했다.
서점 ‘지금부터 판타지’ 문은 오늘도 활짝 열려 있다. 지리산 품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꿈꾸는 그의 소박한 투쟁은 세상을 먼저 떠난 동생이 남겨준 선물처럼 이미 아름다운 ‘판타지’가 돼 산청의 푸른 자락 위에서 실현되고 있다.
[사니다] 산청 이해성 씨 제공
[사니다] 산청 이해성 씨 제공
/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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