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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임명묵의 K맥짚기] 이란전쟁에 떠올리게 되는 '박정희 시대'

이번 전쟁은 AI의 위력이 드러난 전쟁이었다. 하지만 현대전은 자국이 통제 가능한 산업 역량과 군수 체계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는 철칙이 여전히 불변임이 드러난 전쟁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임명묵의 K맥짚기] 이란전쟁에 떠올리게 되는 '박정희 시대'

아시아 냉전의 유산, 그 어느 때보다 현재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미국 동부시간 4월 7일 밤 미국과 이란 사이에 2주 휴전이 선언되면서, 세계의 시선은 미국-이란 협상이 열릴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로 향했다. 이 휴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 직전까지 이란의 교량과 발전소를 다음 표적으로 거론하고, 계속 싸우면 “한 문명 전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식의 위협을 내놓으며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뒤 나왔다.

미국이 ‘레짐 체인지’를 호언장담하던 초기 입장을 누그러뜨리고, 휴전과 협상을 논하게 된 핵심적 이유는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다. 호르무즈는 세계 에너지 공급망에 거대한 충격을 가하고, 나아가 걸프 국가들과 연계된 세계 금융까지 공격할 수 있는 엄청난 레버리지다. 이쯤에서 이란의 지속적인 호르무즈 봉쇄가 가능한 핵심적인 기반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란의 산업 역량이다.

이번 전쟁은 AI의 위력이 드러난 전쟁이었다. 하지만 현대전은 자국이 통제 가능한 산업 역량과 군수 체계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는 철칙이 여전히 불변임이 드러난 전쟁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석유와 천연가스’로 대변되는 에너지 수출을 이란 경제의 유일한 얼굴로 생각하고는 한다. 하지만 이란은 중동, 서아시아에서 가장 산업 역량이 뛰어난 나라이기도 하다.

세계철강협회 기준으로 이란의 조강 생산은 대략 3000만-3200만 톤으로 세계 10위였고, 2025년에도 3180만 톤 수준을 유지했다. 직접환원철은 2024년 3410만 톤으로 세계 2위였는데, 전량이 이란에 풍부하게 매장된 천연가스 기반이다. 시멘트 생산량은 대략 7000만 톤으로, 세계 6위에서 8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제조업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생산량도 세계 15위권인 약 110만대를 자랑한다. 이란 자동차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서 분리되어 있어 성능은 떨어지더라도 독자 브랜드와 공급망을 유지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타브리즈 트랙터 공장을 중심으로 한 트랙터 생산량은 연 3만대로 역시 중동 최대급이고, 철도차량 생산량도 연간 최소 1000대다. 이란은 그 밖에 구리, 석유화학 등 제조업의 기초 원료 및 가공품도 자체 조달할 수 있는 산업 역량이 있다.

이 수치들은 이란이 어떻게 자국보다 10배 많은 국방 예산을 지출하는 사우디아라비아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군사 강국이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란 산업은 세계 시장에서의 무역을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이 제재로 애초부터 봉쇄돼 있었다. 대신 가능한 내부에서 물자를 최대한 자체 조달하고 생산하는 자급자족과 자력갱생 방향으로 산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이란의 산업은 평시에는 중복과 비효율이 클 수 있지만, 외부 공급망이 흔들리는 전시 상황에서는 오히려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원료 채굴에서 가공, 부품 생산과 완제품 조립에 이르는 과정이 대부분 국내에서 이어지기 때문에, 제재나 봉쇄 속에서도 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자국 내의 완결적 산업 기반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에도 증명되었듯 전쟁 수행의 핵심 기반이다. 철강과 시멘트, 차량과 기계, 화학 소재와 비철금속으로 이어지는 물자들이 없으면 군대가 유지될 수 없다. 장갑차와 포병, 수송 차량과 철도 장비, 연료와 폭발물, 통신과 전력 체계까지 산업 전반이 군사 생산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이란이 전장에서 손실을 입으면서도 미사일과 드론, 각종 장비를 계속 보충할 수 있다고 추정할 근거가 있다고 하겠다. 게다가 자체적인 대학과 연구소 체계를 통해 배출되는 엔지니어 수도 세계 5위권이며, 산업 숙련 노동자 풀도 광범위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후제스탄과 이스파한의 제철소, 테헤란의 파스퇴르 의학 연구소를 파괴하고,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발전소와 교량을 모두 날려버리겠다’라고 선언한 이유에는 이러한 이란의 자체적 산업 역량이 자리하는 것이다. 즉, 이란은 자국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이론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호르무즈 봉쇄 카드를 유지할 수 있기에, 바로 그 기반을 타격하여 전쟁 장기화를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습만으로 산업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가 불투명하다는 것은 미국-이스라엘 입장에서 문제가 된다. 제2차세계대전 독일에 대한 전략 폭격이 증명했듯, 대규모 산업 국가를 공습만으로 굴복시킬 수는 없었다. 나치 독일을 무너뜨린 것은 엄청난 규모의 소련 지상군 병력이었다. 물론 군사 기술의 발전을 무시할 수는 없다. 대규모 폭격 대신에 전력, 수자원, 교량, 저장설비 같은 이란의 산업 병목을 정밀 타격하여 산업 마비를 노려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 이란은 세계 경제와 공멸할 수 있게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UAE, 쿠웨이트에 위치한 취약점과 병목을 대응 타격할 수 있기 때문에 역시 쉽지 않은 선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결국에는 휴전과 협상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도 전략 폭격을 실제 선택하기 몹시 부담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란 전쟁은 강력한 산업 기반과 지구력의 존재가 국가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 자체를 넓혀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국방에 총력을 기울이는 국가가 되었으며, 박정희 시대 자주국방 노선에 힘 입어 자체적인 중공업 기반, 엔지니어와 숙련공 수급 체계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최근 ‘K-방산·K-조선 신화’ 역시 전쟁에 대비하여 산업 기반을 갖추고자 박정희 정부와 우리 기업인, 노동자들이 고군분투한 1970년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70년대의 유산을 우리는 ‘구시대적인 병영 국가의 잔재’ 혹은 ‘냉전의 유산’이라고 폄훼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세계화의 시대가 가고 지정학적 긴장과 공급망 단절이 갈수록 일상이 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아시아 냉전의 유산은 그 어느 때보다 현재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그러니 원료 조달선과 정제·가공 능력, 핵심 부품 생산, 숙련노동의 재생산 구조를 국토 안에 붙들어 두기 위한 범국민적 합의, 정부 차원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가 필요한 시점이다.

임명묵 작가 kerarara@naver.com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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