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코리아, 올해 말 신차판매 사업 접어
앞서 스바루, 미쓰비시, 닛산·인피니티 등도 철수
이지홍 혼다코리아 대표이사가 지난 4월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한국 시장 자동차 판매 사업 종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박현영 기자] 이지홍 혼다코리아 대표이사는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올해 말 한국 시장에서 자동차 판매 사업을 종료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중·장기적인 경쟁력 유지 강화를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는 것이 철수 이유다. 그러나 차 업계에선 사실상 한국 자동차 판매 경쟁에서 항복을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분석이 잇달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혼다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리라고는 예상하기 힘들었다. 2004년부터 국내에서 자동차 판매를 시작한 혼다 코리아는 수입차 시장 ‘1만대 클럽’을 최초로 달성한 브랜드다. 그러나 연 1만대 판매를 넘기며 얻은 국내 대표 수입차라는 명성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지난해에 이르러선 판매 실적이 1951대까지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현대자동차에서 가장 적게 팔린 모델인 제네시스 G70(1873대) 1개 차종 판매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올해 판매는 지난해보다 더 급감했다. 철수 발표 직전인 올 1분기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가까이 줄어든 211대에 그쳤다.
업계에선 혼다의 한국차 시장 철수가 한국법인인 혼다코리아의 잘못이 아닌, 일본 본사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혼다코리아의 마케팅 문제가 아니라, 혼다 제품 경쟁력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이번 혼다 철수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팔릴 만한 차량을 출시하지 못한 것”이라며 “과거 스테디셀러 모델인 혼다 어코드, CR-V 등 대표 모델에만 안주하면서 디자인, 새로운 시스템, 전기차 기술 등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가는 데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과거 혼다는 ‘기술의 혼다’라고 불리며 글로벌 자동차업계를 넘어 모빌리티 산업 전체를 리드했다. 특히 엔진 부분 경쟁력은 자동차 기술의 결정체라고 불리는 ‘포뮬러1’(F1)에 출전할 정도로 앞섰다. 친환경 부분 엔진 기술도 세계 정상급이었다. 1970년대 미국에서 배출가스 규제가 강화됐을 때 혼다만 유일하게 새로운 엔진을 개발해 환경 규제를 가장 먼저 통과하기도 했다.
혼다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 사진=혼다
최근 대두되기 시작한 로보틱스와 전기차 기술 역시, 이미 혼다가 1990년대부터 선보인 기술이다. 혼다는 1997년 ‘EV플러스’라는 전기차를 선보였고, 2000년에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인간형 로봇) ‘아시모’를 공개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각종 모빌리티 기술을 미리 선점했음에도 혼다는 기술 주도권을 유지하지 못했다. 보행 로봇 아시모는 10년 이상 기술 시연만 했을 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2018년 추가 개발을 포기했다. 전기차 모델의 개발 실패도 이어졌다. 혼다는 지난 3월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겨냥한 전략 모델 ‘제로 시리즈’와 ‘아큐라 RSX’ 등을 출시 직전에 포기했다.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은 당시 “미래에 부담을 남기지 않기 위해 창자가 끊어질 듯한 심정으로 결단했다”며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같은 달 혼다는 일본 소니와 함께 출범했던 ‘전기차 합작 프로젝트’의 무산 소식도 전했다.
전문가들은 혼다의 한국 시장 철수가 단순히 기업 하나의 문제가 아닌, 시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일본 전체 기업 문화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혼다에 앞서 스바루, 미쓰비시, 닛산·인피니티 등 일본 자동차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것도 비슷한 이유라는 설명이다. 실제 글로벌 자동차업계에서 평가한 한국 시장은 지식 수준이 높고,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가 중심을 이루는 시장이다. 이에 글로벌 자동차 기업은 글로벌 제품 경쟁력을 평가받는 테스트베드(시험 무대)로 한국 시장을 활용하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혼다뿐만 아니라, 소니와 니콘 등 일본 기업을 보면 장인 정신에 집중한 나머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이 늦는 경향이 있다”면서 “혼다 역시 전동화와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등 최신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가지 못해 소비자의 선택에서 밀려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대차 아이오닉V. 사진=현대차
반면, 전동화와 SDV 등 기술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한 자동차 브랜드는 최근 국내외 시장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미국의 테슬라와 중국의 BYD다. 테슬라는 첨단 소프트웨어 기술과 자율주행 기술을 차량에 선도적으로 적용했다. BYD는 자체 개발한 배터리와 전기차 플랫폼을 탑재, 성능과 가격의 균형을 맞춘 가성비 중심 제품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국내 시장에서도 이들 두 브랜드의 강세는 뚜렷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해 국내에서 5만 9916대를 판매하며 수입차 판매 3위에 올랐다. BYD는 한국 진출 첫해임에도 6107대를 판매하며 10위에 안착했다. 이들 두 브랜드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도 나란히 1위(BYD), 2위(테슬라)를 기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글로벌 기술 트렌드에 성공적으로 발맞추고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올해 현대차그룹은 세계 최대 가전 및 정보기술(IT) 기술 박람회인 ‘CES 2026’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한 바 있다. 이어 자율주행과 수소 및 전기차 부분 기술력도 제품 출시를 통해 선보였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 시장을 재공략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현대차는 지난달 24일 개막한 베이징 모터쇼에서 중국 시장 전용 중형 전기 세단 ‘아이오닉 V(브이)’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이어 중국 시장에 향후 5년간 20종의 신차를 투입해 연간 50만대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에 자신이 있었기에 나온 결정이다.
이호근 교수는 “전기차 부분에서 중국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특히 가격 경쟁력 면에서 쉽지 않은 도전이 될 듯하다”면서도 “중국에서 절반의 성공만 거두더라도 현대차그룹이 전동화와 SDV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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