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신문과 인터뷰 하는 김인숙 회장.
“2031년 어느 날, 인천 송도 앞바다의 수평선 위로 거대한 유리 돔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돔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높이 솟은 유리 천장을 따라 햇빛이 쏟아지며 1천800그루의 야자수가 숲처럼 펼쳐지고, 그 아래에는 60만 본의 열대 식물이 에메랄드빛 정원을 이룬다. 한쪽에서는 미네랄이 풍부한 온천수가 잔잔히 흐르고, 바다를 바라보며 몸을 맡길 수 있는 인피니티 스파가 펼쳐진다. 다른 쪽에서는 투명한 천장 아래로 파도처럼 이어지는 워터파크가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물 위를 가르는 빛과 음악, 그리고 거대한 스크린에 펼쳐지는 몰입형 미디어아트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5년 뒤 송도에 들어설 유럽형 스파 리조트의 청사진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2월 말 인천광역시와 테르메그룹 코리아의 협약 체결로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루마니아,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서 웰니스 시설을 운영해온 테르메그룹은 ‘온천’을 뜻하는 독일어 ‘테르메(Therme)’에서 이름을 따온 글로벌 기업이다.
이번 사업은 단순한 투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30년 넘게 유럽에서 기반을 다져온 한 재외동포 기업인의 삶이 축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김인숙(68) 테르메그룹 코리아 회장이다. 최근 을지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오랜 준비 끝에 협약을 마무리한 만큼 강한 확신과 책임감을 드러냈다.
“계약서에 서명하던 날, 그동안의 시간이 떠올라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해외에서 쌓아온 경험을 이제 고국에 돌려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송도를 세계인이 쉬어가는 ‘웰니스 오아시스’로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프로젝트는 송도 국제도시 9공구 골든하버 일대 약 9만9천㎡ 부지에 총 8,500억 원을 투입해 추진된다. 사계절 운영 가능한 유리 돔 형태의 복합 웰니스 리조트로, 내부에는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야자수 1천800그루와 열대 식물 60만 본이 식재된다. 규모 면에서는 서울식물원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김 회장은 “송도는 인천공항과 가까워 아시아 전역의 관광객을 확보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라며 “2031년 완공 이후 연간 180만 명이 찾는 아시아 대표 웰니스 관광지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인숙 회장은 재외동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스파리조트가 완공되면 연간 18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리조트의 친환경 설계도 핵심이다. 에어컨과 난방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개발한 통풍 시스템으로 온도를 조절하며, 에너지의 90%를 재활용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유럽에서 검증된 운영 모델을 그대로 도입한 것이다. 실제로 테르메그룹이 루마니아에서 운영하는 리조트는 연간 170만 명이 찾는 유럽 최대 규모 시설로 성장했다.
김 회장은 이 모델을 한국에 도입하기 위해 2021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사업 의향서를 제출했고, 수년간의 협의를 거쳐 이번 협약에 이르렀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의향서를 제출하던 해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도 계약 미팅에 참석했고, 두 달 만에 해외 출장을 다녀와야 했습니다.”
주변의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그는 결국 프로젝트를 현실로 만들었다. 김 회장이 구상하는 송도 리조트는 단순한 휴양 시설이 아니다. 한국적 미감과 첨단 기술이 결합된 글로벌 웰니스 공간이다. 건물 전체에는 국내 동종 업계 최초로 LEED 플래티넘 인증 기준이 적용되며, AI 기반 식물 관리 시스템도 도입된다. 스파와 워터파크뿐 아니라 몰입형 미디어아트 공간 ‘슈퍼블루’도 함께 운영될 예정이다.
인천시는 리조트 완공 시 약 2조8천억 원의 경제 효과와 3천 명 이상의 신규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꽃과 함께한 인생, 고국에서 피워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는 김인숙 회장.
김 회장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경북 문경에서도 대규모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 중이다. 문경새재 인근 약 19만㎡ 부지에 호텔, 스파, 워터파크, 문화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지방자치단체가 토지를 제공하고 민간이 전액 투자하는 방식이다.
또 인천에 대형 화훼 유통센터를 조성해 한국을 아시아 화훼 산업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구체화하고 있다. 꽃과 함께해온 그의 인생이 다시 고국에서 새로운 결실을 맺고 있는 셈이다.
김 회장은 197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가 비즈니스를 공부했다. 이후 입국해 남편의 사업을 돕다가 1991년 함께 동유럽 민주화의 물결이 막 시작된 루마니아로 향했다.
아무 기반도 없는 낯선 시장에서 그는 삼성전자 에이전트로 활동하며 정부 기관에 모터 제어 장비를 납품했고, 에너지 절감 성과를 인정받으며 대규모 수주를 따냈다. 이어 삼성 TV 수만 대 판매 계약까지 성사시키며 사업 기반을 넓혔다.
그는 루마니아에서는 유일한 한국인으로 꽤나 인기를 끌었다. 이 인기에 힘입어 패션 사업에도 진출했다. 루마니아 국영 방송의 패션 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며 현지에서 이름을 알렸고, 이 시기 축적된 네트워크는 이후 사업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꽃 안좋아 하는 여성이 어디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죠.”
취미로 시작했던 꽃과 식물에 대한 관심은 결국 화훼 사업으로 이어졌다. 2000년 루마니아에 화훼·종자 무역회사 ‘오르히디아 디자인 그룹’을 세우며 본격적으로 꽃과의 인연을 맺었다.
그는 2017년 세계 최대 화훼 경매장인 ‘로열 플로라 홀란드’에서 한국인 최초로 납품권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는 이 경매장 설립 108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의 이름과 태극기가 전광판에 등장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 뒤에 붙는 ‘K-Insook 96178’이라는 번호는 바로 그 납품권 번호다.
“제가 납품권을 땄다는 것은 한국 농가들이 외국 업체의 이름을 빌려 수출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직접 세계 시장과 연결되는 플랫폼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해요. 누구도 못해낸 일을 제가 한 것이죠.”
김 회장은 포시즌, 인터컨티넨탈, 쉐라톤 등 세계 유명 호텔의 실내외 조경을 맡으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30년 이상의 플로리스트 경력을 바탕으로, 화훼를 단순한 상품이 아닌 외교와 문화의 언어로 활용한 것이다.
화훼 사업을 통해 세계 시장을 경험한 그는 점차 ‘공간의 치유’라는 새로운 분야에 눈을 돌렸고, ‘테르메 인천 프로젝트’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현재 테르메는 독일과 루마니아 5곳에 리조트를 운영 중이고, 영국 맨체스터, 미국 워싱턴 D.C.와 댈러스, 캐나다, 싱가포르, 두바이 등 전 세계 8곳에서 개발을 진행 중이다.
김 회장의 사업은 기부를 통해 꽃처럼 피어났다. '어느 나라에서든 사업에 성공하면 반드시 그 나라에 수익을 환원해야 한다'는 철학으로 살아온 그는 그동안 루마니아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고아원 기부, 음악회 스폰서, 나토 가입 시 국방부 지원 등 대규모 사회공헌을 실천했다.
"앞으로는 재단을 설립해 더 체계적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다음 세대가 세계 무대에서 도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2024년과 2025년 루마니아에서 자체비용으로 ‘한국의 날 문화 페스티벌’을 열었다. 올해는 독일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진과 무형문화재 등이 참가하는 문화예술축제를 개최할 계획이다.
김 회장의 인생은 이제 다시 한국에서 새로운 꽃을 피우고 있다. 송도에서 시작될 ‘웰니스 오아시스’가 그의 오랜 여정의 결실이 될지 주목된다.
글로벌 웰니스기업 테르메그룹 코리아 김인숙 회장.
저작권자 © 재외동포신문
왕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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