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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사이트] 카메라의 차가움과 AI의 거만을 깨는 '인간성의 승리'

인공지능(AI)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4차 산업혁명의 격변기를 조명한다. 과거에는 예술이 기술의 지배를... 4막: AI 앞에 선 예술, 제5차 혁명은 인간의 숨결이다 그리고 2026년, 인공지능의 거대한 해일은 인간의 지성을...

[인사이트] 카메라의 차가움과 AI의 거만을 깨는 '인간성의 승리'

정경애 칼럼니스트는 23일 G아티언스 커넥팅데이 강연에서 예술가에 의한 5차 산업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G아티언스 사무국)

역사 속에서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늘 인류에게 경이로움과 오만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23일 윕스퀘어에서 열린 G아티언스 커넥팅데이 '인사이트' 강연의 연단에 오른 정경애 칼럼니스트는 이 거대한 오만의 역사를 정조준했다.

갤러리를 운영했던 경험을 자양분 삼아 현재까지 성인 미술사 강의에 짙은 애정을 쏟고 있는 그녀는, 인공지능(AI)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4차 산업혁명의 격변기를 조명한다. 과거에는 예술이 기술의 지배를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반추하며 '5차 혁명'이라는 거대한 화두를 던졌다.

1막: 기계의 눈동자가 '재현'의 시대를 끝내다

먼 과거 나침반이 미지의 대항해시대를 열어젖히고, 백열전구가 칠흑 같은 어둠을 밀어내며 화려한 밤문화를 잉태했듯 신문물은 늘 세상을 뒤흔들었다. 19세기 중반 페니실린의 등장은 급기야 인간의 생사 결정권을 신에게서 앗아왔고, '신은 죽었다'는 선언이 통용될 만큼 과학을 신격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돌로 지어진 유럽의 전통을 비웃듯 철강으로 쌓아 올린 에펠탑과 거대한 유리 건축물들이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기불이 등장하면서 밤문화와 새로운 유흥이 나타난다. 물랭 루주와 롱샹 경마장, 가르니에 오페라 극장에서 상위층 부르주아들이 향락을 즐기던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과학이 선사한 낙관론의 핑크빛 절정이었다.

당시 프랑스 미술계는 콧대 높은 제도권과 비제도권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다빈치나 라파엘로 같은 제도권의 거장들처럼,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나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웅장하게 그리고 귀부인의 피부를 대리석처럼 결점 없이 재현해 내는 완벽한 표현력이 당시 화가들의 절대적 지표였다.

그러나 '카메라'라는 무심한 렌즈의 등장은 오만했던 화가들의 숨통을 조였다. 기계가 피사체의 완벽한 재현을 대신하면서 화가의 존재 가치는 모호해졌다. 이 절망의 벼랑 끝에서 비제도권이었던 인상주의 화가들은 흐릿한 윤곽선과 빛의 산란을 무기 삼아 공원, 카페, 화려한 의상 등 시대의 가장 앞서가는 일상의 공기를 화폭에 담아냈다.

초기에는 기득권층의 싸늘한 외면 속에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지만, 비제도권 화가들은 오늘날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미술 사조로 굳건히 살아남았다.

2막: 캔버스 위로 쏟아진 광기와 내면, 그리고 세계의 해체

재현의 굴레에서 해방된 화가들은 카메라가 결코 엿볼 수 없는 완벽한 '주관'의 심연으로 몸을 던졌다. 고흐는 아를르의 론(Rhone) 강에서 밀짚모자에 촛불을 위태롭게 얹은 채 밤풍경을 그린다. 살기 고달파 죽어서라도 닿고 싶었던 별나라에 대한 강렬한 염원을 표현하려고, 별을 과장되게 크게 그리고 일렁이는 무늬로 토해냈다.

스스로를 미술계의 구원자라 칭하며 자화상에 오만하게 신의 후광을 그려 넣은 고갱, 환청과 환상이 빚어낸 공포를 묘사한 뭉크의 '절규', 파란색 윤곽선으로 객관적 색채를 파괴해 버린 마티스의 야수파, 외눈박이 괴물이 사랑에 빠진 눈빛을 그린 르동까지.

정경애 칼럼니스트는 23일 G아티언스 강연에서 "빈센트 반 고호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아를르에서 구원을 동경하면서 별을 과장되게 크게 그렸다"고 설명한다. (사진=G아티언스 사무국)

이 모든 걸작은 철저히 렌즈가 포착할 수 없는 화가 개인의 짙은 주관과 내면의 산물이었다.

감정의 폭발을 넘어 대상을 차갑게 '분석'하는 이성적 진화도 일어났다. 현대 미술의 아버지가 된 폴 세잔은 아내의 초상화나 생 빅투아르 산을 묘사하는 대신, 대상의 본질을 다각도에서 파악해 조각내듯 화면을 재조합했다. 세잔의 그림에 놀란 피카소는 대상을 더욱 완전히 해체하는 입체파(큐비즘)를 탄생시켰다.

급기야 다다이즘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은 캔버스와 물감마저 미련 없이 버렸다. 1910년대, 그는 자신이 출품하는 전시장 한가운데 기성품 소변기를 가져다 놓고 'R. Mutt'라는 서명을 한 뒤 '샘'이라 명명한다. 뒤샹은 자전거 바퀴를 작업장에 두는 파격도 일삼았다. 더 나아가 오프닝에서 누드의 여대생과 체스를 두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친구가 무심히 찍어준 이 장면의 사진 한 장이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미술은 물리적 캔버스를 떠나 관념과 행위의 영역으로 도약한 것이다.

3막: 잿더미가 된 이성,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찢다

그러나 눈부셨던 벨 에포크의 맹목적 낙관론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살육전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자신들이 맹신했던 과학 기술에 배신당한 인류는 깊은 상실감과 허무주의에 빠져 분노했다. 신도 과학도 인간 이성마저도 불신하게 된 암흑기 속에서, 프로이트가 제안한 '무의식'과 꿈의 세계는 새로운 도피처가 되어 살바도르 달리 등 초현실주의 화가들을 잉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60년대 미국은 인스턴트와 물질이 범람하는 대호황기를 맞이했다. 부를 거머쥔 대중은 예술을 소유하려 했으나 당시 주류였던 추상표현주의는 그들에게 너무나 난해했다. 앤디 워홀은 이 욕망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대중이 매일 소비하는 캠벨 수프 캔과 미국 국기, 종이 질이 나빠 망점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저급한 만화의 한 컷을 거대하게 확대하여 팝아트로 선보인 것이다.

화가의 복잡한 고뇌 대신 일상의 기성품과 복제된 이미지가 그 자체로 예술의 반열에 오르며, 마침내 일상과 예술을 가르던 경계마저 무너져 내렸다.

4막: AI 앞에 선 예술, 제5차 혁명은 인간의 숨결이다

그리고 2026년, 인공지능의 거대한 해일은 인간의 지성을 집어삼키면서 다시 한번 더 강하게 인간성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정경애 관장은 수많은 데이터를 집어삼켜 물감의 재질과 붓의 필력까지 렘브란트의 화풍을 완벽하게 모방해 낸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를 언급하며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위기감을 시사했다.

스스로 진화하는 AI가 인간의 지적 수준이 낮다며 대화를 거부하는 영화 속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된다면, 인류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에게 지배당하는 끔찍한 말로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AI가 인간의 예술적 혼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을까? 강연자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기계가 고흐의 절망과 죽고 싶은 우울을 데이터값으로 입력받아 별을 거대하게 그려낸다 한들, 과연 캔버스 앞에서 인간의 심장을 쥐어짜는 그 처절한 감동까지 복제해 낼 수 있겠는가.

정 관장은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렘브란트의 명작 '밧세바'를 증거로 꺼내 들었다. 렘브란트는 다윗왕의 부름을 받고 번민하는 유부녀 밧세바의 내면을 그려낸다. 화가는 그 그림에서 가난 속에서도 화가를 버리지 못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뇌하던 가정부이자 실질적 아내의 그 애틋하고 헌신적인 시선을 투영했다.

지독한 인간의 교감, 피가 흐르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복잡다단한 애환과 감동은 뜨거운 감정을 지닌 인간만이 화폭에 담아낼 수 있는 고유 영역이다.

"4차 산업혁명이 기계의 차가운 기술을 지향하고 있다면, 다가올 예술의 '5차 혁명'에서는 결코 인간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카메라의 충격에도, 참혹한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예술은 끈질기게 무의식과 일상을 파고들며 생존해 냈다. 정경애 관장이 세상에 던진 선언은 묵직하고도 분명하다.

인간미를 가득 품은 위대한 예술은 결코 AI 알고리즘 따위에게 도태되지 않으며, 시대가 아무리 격변하더라도 예술은 인간의 숨결을 간직한 채 살아남아 기계의 지배를 뛰어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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