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세계 질서의 구축 과정에는 거부할 수 없는 정해진 공식이 존재했다. 군사 및 경제 등 물리적 강제력을 장악한 국가가 국제적인 ‘규칙(Rule)’을 설계하고 그 제도적 틀 위에서 해당 국가의 언어와 문화가 보편적 양식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해상 장악이 영어의 공용화와 의회 민주주의를 확산시켰고 미국의 달러 패권과 안보 동맹이 할리우드와 팝 음악을 세계인의 감성적 표준으로 정돈시켰다.
요즘 미래분석으로 핫한 이병한 교수는 중국이 농업의 시대를 열었고 미국이 기술의 시대를 열었으며 장차 한국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하게 되리라 전망한다.
21세기 초, 한국은 이들 경로와 결이 다른 궤적을 그리며 세계 무대의 전면에 등장했다. 강력한 군사적 패권이나 국제 사회의 규칙 설계권을 선점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인이 자발적으로 공감하고 모방하는 ‘문화적 영향력’을 획득했다.
BTS가 그 단적인 예다. K라는 접두어를 단 수많은 호명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는 단순한 문화 수출의 성공을 넘어 기존의 문명 전파 공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낯선 현상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이 현상은 일시적인 유행인가 아니면 새로운 유형의 탄생 신호인가?
‘실행 국가’의 한계와 ‘설계 국가’로의 요청, 문화공명 프로젝트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압축 성장을 이뤄냈다. 타인이 던진 문제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풀어내는 ‘실행 국가(Execution State)’로서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성을 증명했다고나 할까. 반도체, 배터리, 조선 등 하드웨어 영역에서의 정밀한 공정 기술과 K-pop으로 대변되는 고밀도 문화 콘텐츠가 그 중심에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한국은 여전히 ‘규칙을 만드는 나라’가 아닌 ‘규칙을 따르는 나라’다. K-컬처가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유통 플랫폼과 데이터 규범이 외부의 손에 쥐어져 있는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창의적 영감의 원천이 되는 비평과 담론의 ‘중간 장치’가 취약하다. ‘K-문명의 가능성’은 바로 이 지점, 즉 압축 성장으로 다져진 ‘기술의 정밀성’과 한국인 특유의 깊은 ‘감정의 밀도’를 결합하여 우리만의 고유한 삶의 형식을 보편적 제도로 번역해낼 수 있는가에 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문화 전략으로서 ‘문화 공명(Cultural Resonance)’이다. 기왕의 ‘문화강국’ 아젠다를 훨씬 뛰어넘는 전략으로 내가 오랫동안 ‘더불어 울림’이라는 제목으로 강조해온 것이기도 하다.
문화 공명이란 단순히 문화를 일방적으로 전파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적 삶의 특수성 예컨대 그리움, 한, 흥 등을 기술적 정밀도를 통해 직조하여 세계적 보편성으로 재구성하는 전략이다.
특히 전남·광주특별시의 출범을 기하여 이를 문명적 실험의 결정적 기회로 창안할 수 있다. 남도의 깊은 인문학적 자산과 약칭 광주특별시의 AI·에너지 기술 인프라를 결합한 모델이다. 내가 기왕에 제안했던 ‘솔라시도’에 부가한 ‘도레미파’론이기도 하다(내 이전 칼럼 참고).
그 실행프로그램으로 우선 ‘그리움이 있는 한나절’을 제안한다. 이는 임동확 시인을 비롯해 내 동료 선후배들과의 담론을 통해 고안한 안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 노동 시간의 단축이라는 사회적 권리의 선언이었다면, ‘그리움이 있는 한나절’은 그 시간을 문화적 격조와 인간적 품격으로 채우는 문명 주권을 선포하는 일이다.
지면의 제약상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른 단위에서 풀어내겠지만, 한국이 단순한 문화의 제조 강국을 넘어 새로운 ‘문명적 행위자(Civilizational Actor)’로 도약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일 수 있다.
1914년 6월 18일 진도 강강술래. 국립중앙박물관
승자독식의 잔혹한 게임으로 묘사된 영화 ‘오징어 게임’류의 파괴적 놀이가 아니라, 손과 손을 맞잡고 공동체의 리듬을 회복하는 강강술래류의 상생적 공명에 실마리가 있다.
그간 내가 말해온 K-컬처는 감정의 생산, 기술의 정밀성, 제도의 설계 등이 한 사회 안에서 얼마나 의식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가를 묻는 프로젝트다. 실행 국가로서의 탁월함도 훌륭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설정하고 세계의 표준을 제안하는 ‘설계 국가’의 모델을 세계에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파편화된 기술과 소모적인 감정 소비를 넘어 감성을 장기적 자산으로 축적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시경 내용 일부. 국립민속박물관
남도인문학팁
‘그리움이 있는 한나절’, 광주·전남특별시의 새로운 시경(詩經) 시대를 열자
주지하듯이 ‘시경’은 동양 최고의 고전으로 정서의 정화와 공감, 관계의 인문학, 비판적 소통과 언어의 품격 등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소양을 노래한 오리지널 텍스트다.
그래서 제안한다. 일주일에 한나절 정도는 시를 읽고 시를 쓰고 시를 노래하는 시간을 갖는 신 시경의 시대를 열자. 배부른 베짱이라고 힐난해도 좋다. 지금 우리가 처한 비루하고 천박한 상업자본으로의 매몰을 상기한다. OECD 자살률 1위를 24년째 유지하고 있는 참혹한 현실을 직시한다.
일찍이 김대중 대통령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균형있게 설계하고 실천하기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AI시대의 현실은 척박하기만 하다. 인문 따위는 개에게나 던져버리고 오로지 상업과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상인의 현실감각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최소한 서생의 문제의식과 균형을 갖추자는 얘기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여기 제안하는 ‘그리움이 있는 한나절’ 프로젝트는 감정의 깊이와 여백을 동시에 담고 있는 매우 매력적인 슬로건일 수 있다. 한국 문화의 힘 특히 남도의 힘은 결핍, 고독, 연대 등 익숙한 정서를 높은 밀도로 조직하는 데 탁월하다.
‘그리움’은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감정이다. 이를 단순한 향수가 아닌 창조적 동력으로 전환하는 게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시민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 담긴 ‘그리움의 무늬’를 발견하고 표현하게 함으로써 삶의 격조를 높이는 문명적 실천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리움 기술은 자신의 서사를 기술(디지털 매체, AI, 전통 예술 등)과 결합하는 통합 교육으로 구성할 수 있다. 어르신들의 생애사(그리움)를 청년 예술가의 기술적 정밀함과 연결하는 공동 훈련 과정으로 연결한다.
개인의 그리움을 웹툰, 수필, 짧은 영상 등 ‘확장 가능한 자산’으로 기록한다. 일회성 행사가 아닌 데이터 거버넌스와 결합된 장기적인 ‘감정 아카이브’로 설계할 수 있다. 좀 낯설긴 하겠지만 ‘그리움 센터’같은 컨트롤타워가 가능하다.
지역의 유휴 공간을 ‘그리움이 있는 한나절’을 보낼 수 있는 고밀도 문화 생산 거점으로 재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비평과 담론이 생성되는 문화장치로 기능할 수 있고 지역 공동체의 문명적 수준을 높이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보아하니 광주전남특별시가 출범하면 지역 정체성 상실 및 소외감이 팽배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타운 입지, 사회기반시설(SOC) 우선순위를 둘러싼 시·군 간 격돌 등 갈등 조정에 행정력이 매몰되어 통합 시너지 창출이 지연될 수 있다. 전략적 돌파구가 긴요하다. 정량적 자원 배분이 아닌 ‘정서적 공명’을 통해 통합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남도의 ‘대동(大同)’ 정신을 이른바 강강술래류의 공명으로 재해석하여 통합의 에너지로 전환시킬 필요가 여기에 있다.
‘남도의 길’로 잇는 문화 신경망을 조직하고 갈등 조정력을 갖춘 ‘공명 예술가’를 그물망처럼 네트워크하며 다각적인 시민사회운영회를 가동하는 거버넌스 전략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그 핵심기구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문화공명센터와 실행 프로그램으로 ‘그리움이 있는 한나절’을 제안한다. 구체적인 실행전략이야 더 촘촘하게 기획하면 되겠지만 그 핵심은 분명하다. 문화적 불평등 해소, 시·군 간 문화 교류 설계, 문화 공명 지수 관리. ‘문화공명학교’ 표준 모델 등 대동사회의 문화공명이 설계국가로 나아가는 길이다.
1970년대 강강술래 연습을 하고 있는 진도 인지리 사람들. 설진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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