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야경의 모습./사진=현대건설
대한민국 경제 지도의 정점에 있는 500대 기업 대표이사(CEO)들의 주거 지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 평창동이나 성북동으로 대변되던 전통적인 단독주택 선호 현상은 가라앉고, 대신 압도적인 규모의 신축 대단지나 철저한 보안을 갖춘 하이엔드 공동주택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모습이다. 특히 강남구 개포동의 대규모 재건축 단지가 삼성과 네이버 등 국내 정보기술(IT) 및 제조 강국 대표들의 새로운 전략적 요충지로 급부상했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29일 발표한 500대 기업 대표이사 640명의 주거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대한민국 CEO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단지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로 집계됐다. 총 11명의 CEO가 이곳에 주소지를 두고 있다.
이곳에는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을 필두로 최수연 네이버 사장, 이석희 SK온 사장 등이 거주호가 있다. 이외에도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사장, 남정운 한화솔루션 대표, 김대일 코리아세븐 대표,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 장용호 SK 사장, 서진석 셀트리온 대표 등이 이 단지를 선택했다. 과거 저층 아파트 단지였던 개포주공 1단지를 재건축해 탄생한 이 단지가 '신흥 부촌'의 상징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2위는 용산구 한남동의 '나인원한남'(8명)이 차지했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 강대현 넥슨코리아 대표, 김창수 F&F 회장 등이 거주 중인 이곳은 전통적인 부촌인 한남동의 명성을 이어가면서도 현대적인 보안과 프라이버시를 강조해 젊은 총수들과 전문 경영인들의 선호도가 높았다. 3위는 서초구 반포동의 '래미안퍼스티지'(7명)로,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과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 등이 거주하며 강남 핵심 입지의 저력을 과시했다.
업계에선 CEO들의 이러한 주거 이동 현상을 '효율성과 네트워크의 결합'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부촌이 외부와 차단된 '섬' 같은 주거 형태를 지향했다면, 최근의 경향은 대규모 단지 내에서 제공되는 최고급 커뮤니티 시설과 철저한 보안 시스템을 동시에 누리는 '시스템화된 부촌'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특히 6700여 가구에 달하는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의 경우, 단지 내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한 '원스톱 라이프'와 함께 입주민들 간의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결정권자들이 특정 단지에 모여 산다는 것 자체가 강력한 심리적 동질감을 부여한다"며 "이들에게 주거지는 단순한 휴식처를 넘어 유무형의 정보가 교환되고 자산 가치가 안정적으로 보전되는 전략적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지역별 집중 현상도 더욱 공고해졌다. 조사 대상 CEO의 91.6%(586명)가 수도권에 거주하며, 그중 서울 거주 비중은 67.0%에 달했다. 서울 내에서도 강남구(107명), 서초구(73명), 용산구(56명) 등 이른바 '강남·용산 라인'에 전체의 절반 이상이 밀집해 있다. 이는 기업 본사가 집중된 테헤란로 및 시청·광화문 일대와의 접근성을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향후 고위 경영진의 주거 트렌드는 더욱 양극화될 전망이다. 단순히 비싼 아파트가 아니라, 해당 단지가 어떤 상징성을 갖느냐가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다. 건설업계가 '디에이치'나 '아크로' 등 하이엔드 브랜드를 앞세워 수주전에 사활을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CEO들이 선택한 단지라는 평판은 곧 해당 브랜드의 위상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비수도권에서는 부산(11명)이 가장 많은 CEO를 보유하며 제2의 도시로서 자존심을 지켰지만, 수도권 쏠림 현상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외국계 기업 CEO들의 경우 조선팰리스, 그랜드머큐어 등 강남권 고급 호텔을 거주지로 등록하는 독특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무뇨스 바르셀로 호세 안토니오 현대자동차 사장과 저우유 오비맥주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 경제를 이끄는 640명의 주소지는 단순한 우편물 수령지를 넘어, 한국 사회의 권력 자본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개포와 한남을 중심으로 재편된 'CEO 벨트'는 당분간 대한민국 최고의 부촌 지도를 견고하게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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