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이란 선례 따라 ‘초크포인트’ 무기화 늘 것…우회 방법 찾아야”

지정학 및 경제 분야에서 병목 현상을 일으키는 전략적 요충지를 뜻한다. 조임목이라고도 불린다.

에드워드 피시먼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

사진 크게보기

대형 선박이 지난 20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에 떠 있다. 오만 정보부가 제공한 사진이다. 신화연합뉴스

▲초크포인트

지정학 및 경제 분야에서 병목 현상을 일으키는 전략적 요충지를 뜻한다. 조임목이라고도 불린다.

가장 좁은 곳의 폭이 40㎞에 불과한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30%가량이 통과하는 요충지다. 이란이 미국과의 갈등 끝에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자 한국 역시 원유 수급에 큰 차질을 빚었다. 해협 안쪽에 억류된 2000척 이상의 선박과 이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은 이란의 강력한 협상 지렛대였다.

전략적 요충지, 병목 지점, 급소를 뜻하는 초크포인트(Chokepoint)라는 용어는 최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제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무기화는 전혀 예측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의 저자 에드워드 피시먼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전쟁이 일어나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것이라는 우려는 이미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존재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란이 드론과 대함 미사일을 활용해 특정 선박을 표적 공격하는 등 해협을 선택적으로 봉쇄하는 능력을 터득했다는 점이 과거와 달라진 대목”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해협 안쪽에 고립돼 있던 한국 선박 나무호는 지난달 4일 이란산으로 추정되는 대함 미사일에 두 차례 피격됐다.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의 원제는 초크포인츠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처럼 특정 국가가 지배적 통제권을 쥐고 있으면서 단기적으로 대체재를 찾기 어려운 경우 초크포인트의 조건을 갖췄다고 본다.

올해 3월 국내에 번역·출간된 이 책은 미국이 이란·중국·러시아를 상대로 펼친 경제 제재의 역사를 다룬다. 미국은 그동안 패권 지위와 기축 통화인 달러를 무기로 삼았고 2000년대 이후에는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는 이란, 북한 등에 경제 제재를 가했다. 정부에 흘러가는 돈줄을 차단하는 전략이었다.

오바마 정부의 국무부,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던 피시먼과 이달 초부터 e메일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전쟁을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란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요충지를 장악한 상황”이라며 “(미국의) 제재 체제는 약화되고 있는 반면 초크포인트를 활용하는 중견국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국 희토류 수출 통제 이어

이란도 호르무즈 활용 ‘보복’

미국 경제 제재·압박 무력화

인니는 말라카 수익화 언급

중·러와 밀착, 살길 찾는 북

제재만으론 행동 못 바꿀 것

- 왜 초크포인트가 주목받게 되었을까.

“지금은 경제 제재와 관세 부과, 수출 통제가 강대국 간 경쟁의 핵심 수단이 된 경제 전쟁의 시대다. 지난 20년 동안 이 전쟁이 급격히 확산된 것은 각국이 병목 지점을 무기로 활용하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초크포인트로 활용했다.

“그동안 미국은 이란을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고립시키고 달러를 이용해 이란의 원유 수출 수익을 줄이는 데 주력했다. 과거 이란은 미국을 경제적으로 보복할 여력이 없었지만 이번 전쟁은 달랐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드론과 미사일을 이용해 불과 수십 척의 선박을 표적으로 보복했다. 이란과 같은 중견국도 초크포인트를 무기로 삼으면 미국과 경제 전쟁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 이런 접근법은 예전에도 가능했을 것 같다.

“오바마 정부에서도 전쟁이 일어나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것이라는 우려는 있었다. 당시엔 해저 기뢰를 통한 해상 봉쇄만 가정했고 기뢰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기 때문에 사용이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이란이 이번에 드론과 대함 미사일을 활용해 해협을 선택적으로 봉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 같은 접근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놀라게 했다.”

- 이란의 사례를 참고해 자국의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가 늘어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여러 국가가 초크포인트를 무기화할 상당한 위험이 있다고 본다. 지난해에는 중국이 희토류 통제권을 활용해 미국의 대중 견제를 효과적으로 막아섰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통항료를 부과하려 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초크포인트를 무기로 활용하면서 수익까지 창출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 이란처럼 초크포인트로 이익을 창출하려는 나라가 또 있을까.

“이미 인도네시아에서 공개적으로 말라카 해협을 수익화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지난 4월에 제기했다. 앞으로 생겨날 일들의 전조라고 생각한다.”

호르무즈 해협이 통제되면서 한국 정부와 기업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원유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대체 에너지 발굴·확보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원유 외에도 광물, 금융 연결망 등 초크포인트는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 주요 원유 수입국인 한국 정부도 고민이 크다.

“에너지 수급 위기는 당분간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미국·이란 전쟁 이전의 개방된 수로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화석연료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는 어떻게 에너지 안보를 보장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 주변국의 대책도 필요해 보인다.

“주변국이 초크포인트를 무기화하는 것을 본 다른 국가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흐름이 있다. 세계적으로 정부 주도 산업정책이 부상하는 현상은 다른 나라가 자국에 행사하는 영향력에 대비해 방어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 이란 움직임에 대안도 나타날 듯.

“향후 10년 내에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카타르와 같은 걸프 국가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더 많은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출하려고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각종 인프라와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석유를 수출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 전문가들은 원유 수급처 다변화와 대체 에너지 도입을 대안으로 거론한다.

“여러 국가가 배터리 중심의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 대체 에너지 도입을 가속화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이 관련 산업에서 70~90%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한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중국의 공장으로 초크포인트가 바뀌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초크포인트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북한에서도 발견된다.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는 북한은 최근 중국·러시아와 밀착해 경제적 이익을 얻으며 제재 충격을 벗어나려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유럽·주요 7개국(G7) 순방 결과 브리핑에서 “제재와 압박은 효과가 없다. 러시아와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군사협력을 하면서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졌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했다고 전했다.

-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 대등한 관계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하며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량이 중국으로 수출하는 물량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관세를 부과하면 무역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국은 관세뿐만 아니라 희토류 등의 수출 통제를 통해 보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단순한 무역 전쟁이 아니라 다중 영역의 경제 전쟁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 중국은 미국이 경제 제재를 가하는 국가들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 효과를 방해하는 역할을 해왔다. 마두로 정권의 베네수엘라, 이란, 러시아, 그리고 지금의 북한에서 이를 목격할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이 고립시키려는 국가들의 경제력을 뒷받침해준다는 평판을 구축하며 다른 형태의 영향력을 쌓으려 하고 있다.”

- 북한이 중국·러시아와 밀착하며 미국 중심의 경제 제재를 덜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경제 제재 체제는 수년간 약화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며 공개적으로 무기, 군사력을 북한에 의존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를 판매하고 병력을 파견하며 새로운 경제적 생명선을 찾았다. 북한은 지정학적 갈등을 수익과 영향력으로 전환하고 있다.”

- 경제 제재를 초크포인트로 활용하는 방식도 여러 국가가 협력하지 않으면 무력화될 수 있다는 뜻인가.

“북한은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국가들에 유용한 존재가 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동북아 안보 질서를 좌우하는 것을 원치 않고 이는 북한에 예전보다 더 큰 운신의 폭을 제공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에 경제적·정치적 지원을 할 의향이 있다면, 제재만으론 북한의 행동에 전략적 변화를 강요하긴 어려울 것이다. 경제 제재는 집행력과 지정학적 연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것이다.”

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