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2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을 찾은 잔니 인판티노 피파 회장과 대화를 하며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AS몸나코 소속 폴라린 발로건
벨기에 전 앞두고 출전정지 유예
인판티노 회장, 트럼프 행사 매번 참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축구대표팀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AS모나코)의 출전정지 유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제축구연맹(피파·FIFA)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6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판정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FIFA는 미국과 벨기에의 16강전을 하루 앞두고 직전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은 발로건의 1경기 출전정지를 1년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벨기에축구협회는 FIFA 항소위원회에 즉각 항소를 제기했다고 한다. 브뤼셀타임스는 항소 이유서를 당일 오후 2시까지 제출해야 해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벨기에와 미국의 16강전은 유럽시간 기준 7일 오전 2시에 열린다.
벨기에 정치권도 강하게 반발했다. 전직 축구 심판 출신인 막심 프레보 벨기에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진짜로 전화 한 통이 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이끌어냈다면 축구와 스포츠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훼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벨기에 사회당 역시 성명을 통해 “부끄러운 줄 알라. 돈이 좌우하면 월드컵은 모든 신뢰를 잃는다”며 “트럼프를 기쁘게 하려고 규정을 바꾸고 편법을 쓰다니 FIFA와 월드컵, 미국 모두에 참담한 일”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어권 중도정당 레장가제 소속 이방 브루그스트레트 유럽의회 의원도 “트럼프가 개입하자마자 퇴장이 갑자기 부당한 판정이 되다니 놀랍다. FIFA는 공정을 지켜야지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며 “경기장에서 보자. 데블스(벨기에 대표팀 별명)의 승리는 더욱 값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축구연맹(UEFA)도 이례적으로 FIFA를 정면 비판했다. UEFA는 성명을 내고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퇴장에 따르는 최소 1경기 자동 출전정지는 재량으로 선택할 수 없고 관할 기관의 결정도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례 없고 이해할 수 없고 정당화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축구는 어디서나 같은 규칙으로 경기하기 때문에 신뢰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규칙의 확실성이 그걸 지켜야 할 이들에 의해 더 이상 보장되지 않으면 경기의 온전함과 대회 신뢰가 훼손된다”고 덧붙였다.
FIFA는 징계위원회가 위원 18명의 독립적인 심의를 거쳐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다만 표결 여부나 심의 과정은 공개하지 않았고 관련 보고서도 내놓지 않았다.
영국 BBC에 따르면 월드컵 역사에서 레드카드는 지금까지 189차례 나왔지만 출전정지 처분을 피한 사례는 이번이 두 번째다. 다만 1962년 칠레 월드컵 당시 브라질의 가린샤 사례는 자동 출전정지 제도가 도입되기 전이어서, 현행 제도 아래 징계가 유예된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 축구계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독일 대표팀 차기 감독으로 내정된 위르겐 클롭은 “진짜 트럼프와 인판티노가 서로 합의해 결정했다면 미친 짓”이라며 “축구를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은 축구와 관련된 어떤 일에도 관여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제프 블라터 전 FIFA 회장도 엑스(X·옛 트위터)에 “레드카드는 정치적 통화로 취소되는 게 아니다”라며 “FIFA여, 어디로 가는가(Quo Vadis, FIFA)”라고 비판했다.
온라인에서는 이번 결정을 풍자하는 게시물도 잇따랐다. 소셜미디어에는 발로건이 레드카드를 꺼낸 심판에게 트럼프 얼굴이 그려진 카드를 내미는 인공지능(AI) 합성 영상 등 각종 밈이 확산하고 있다.
인판티노 회장은 그동안 축구와 무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행사에 참석하거나 지난해 FIFA 평화상을 신설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여하는 등 정치와 FIFA를 연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영국의 비영리단체 페어스퀘어는 FIFA 평화상 제정 과정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지난해 12월 FIFA 윤리위원회에 제출했으며, 최근 유럽의회 의원 50명도 FIFA에 조사 진행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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