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반도체 라이징
중국의 반도체와 AI를 둘러싼 시선은 늘 과열돼 있었다. 누군가는 미국의 제재를 뚫고 기술 패권을 거머쥘 것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과잉 투자와 자급화의 한계가 결국 발목을 잡을 것이라 본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의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은 이 상반된 진단 사이에서 한 발 물러서 중국 산업의 실체를 해부한다. 화웨이, SMIC, CXMT, 딥시크 같은 사례를 좇되 기업의 흥망에만 시선을 묶어두지 않는다. 중앙과 지방의 투자 경쟁, 내수 중심의 팽창, 군·산업 결합, 공급망 재편, 미국 제재에 대한 우회 혁신까지 한 화면에 올려놓고 중국 첨단 지능화의 동력과 균열을 함께 읽게 한다.
더 주목할 대목은 결론이 결국 한국으로 향한다는 점이다. 메모리 중심의 성공 공식을 앞으로도 붙들 수 있는지,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 AI 반도체, 산업 지능화, 인력과 에너지 기반을 어디까지 새로 짜야 하는지 묻는다. 중국을 과장도 폄하도 하지 않으면서 한국이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구체적인 좌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중국 산업 분석서에 머물지 않는다. 미중 칩 전쟁 이후의 풍경을 읽는 동시에 한국 제조업의 다음 10년을 재정비하게 만드는 현실적인 전략서에 가깝다. (권석준 지음 | 사이언스북스)
지방 창생
'지방 창생'은 일본의 1,729개 지자체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구 감소를 추상적 위기가 아니라 지역별로 다른 조건과 속도를 지닌 현실로 보여준다. 봉쇄 인구와 이동 시나리오를 함께 놓고 읽으며, 어디는 출산율이 문제이고 어디는 청년 유출이 핵심인지 가른다. 수도권이 청년을 빨아들이지만 스스로는 재생산력을 잃는 '블랙홀형 지자체' 분석은, 서울과 비수도권의 오늘을 떠올리게 할 만큼 서늘하다.
이 책의 미덕은 공포를 부풀리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줄어드는 인구를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 감소 속도를 늦추는 정상화 전략과 줄어든 사회를 버티게 하는 강인화 전략을 함께 꺼내 든다. 보조금 살포와 구호로는 버틸 수 없고, 노동·교육·산업·복지 체계를 지역 현실에 맞게 다시 짜야 한다는 주장도 분명하다. 일본의 시행착오를 기록한 보고서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 더 크게 남는다. 지방을 살리는 문제를 넘어, 앞으로 어떤 나라의 구조를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책이다. (인구전략회의 지음·김영혜 옮김 | 와이즈베리)
괄호 밖은 안녕
이주혜의 '괄호 밖은 안녕'은 과거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봉합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소설집이다. 여기서 번역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한때 받아들이지 못했던 관계와 상처를 다시 읽어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유령, 여행, 몸짓 같은 낯선 형식들은 모두 기억이 돌아오는 방식이며, 작가는 그 흔들림을 섬세한 문장으로 붙든다.
인상적인 것은 이 책이 고통을 다루면서도 비장함에만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작품은 가족의 균열을, 어떤 작품은 떠나온 고향과 인연의 잔향을, 또 다른 작품은 식물과 기담의 형식을 빌려 삶의 미세한 회복을 건져 올린다. 일본이라는 공간 역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익숙하면서도 완전히 겹쳐지지 않는 장소로 놓이며 기억을 흔드는 장치가 된다. 이주혜의 문장은 상처를 크게 외치지 않고도 그 결을 오래 붙든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 남는 것은 비극의 크기보다도, 각자의 기억을 다시 써보려는 조용하고 질긴 의지다. (이주혜 지음 | 문학동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