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서울시의사회, ‘한국형 독립 면허관리기구’ 설립 공동 심포지엄
10월 시범·12월 출범 예고 … 징계권·시민 참여·지역의사회 역할 쟁점
의사의 면허 등록과 교육, 윤리 심사, 징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대한의사면허원’ 설립 논의가 구체화하고 있다. 정부 중심의 사후 처벌에서 벗어나 전문가가 직접 의사의 역량과 윤리를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문제제기 속에서 확산되고 있다. 다만 면허관리 권한을 확보하려면 ‘제 식구 감싸기’ 우려를 해소하는 국민 신뢰를 다져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대한의사협회 의사면허원 설립준비위원회와 서울특별시의사회는 22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공동심포지엄을 열고 의사면허원 설립 방향과 지역의사회 역할, 해외 면허관리 사례 등을 논의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이미정 단국대 의대 교수가 영미권의 의사면허 규제체계를, 이얼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팀장은 자율규제와 전문가 권익 보호의 관계를, 이재만 의협 정책이사는 지역의사회와 면허관리기구의 협력 방안을, 신기택 의사면허원 설립준비위원은 설립 추진 과정과 향후 일정을 발표했다.
대한의사협회 의사면허원 설립준비위원회와 서울특별시의사회는 22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공동심포지엄을 열고 의사면허원 설립 방향과 지역의사회 역할, 해외 면허관리 사례 등을 논의했다.
◆‘문제 의사’ 조사해도 면허 제재 권한 없어 =
면허원 설립 논의의 출발점은 현재 의사단체의 자율규제에 실질적인 권한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이다.
의협과 지역의사회가 비윤리적 의료행위를 조사하고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하더라도 면허 정지나 취소 등 행정처분 권한은 보건복지부에 있다. 이 때문에 의료계가 문제가 있는 회원을 적발하더라도 조사부터 제재, 재교육까지 책임 있게 관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그 책임을 이행할 권한을 주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자율규제가 작동할 수 있겠느냐”며 “의사면허 등록과 갱신, 면허 이력 관리, 지속적인 교육과 역량 평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조사와 개선까지 아우르는 전문적인 면허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면허원은 의사단체의 회원 권익 보호 기능과 의료 전문직에 대한 공익적 규제 기능을 분리하는 조직으로 구상된다. 의협이 의료정책 대응이나 회원 권익 보호를 담당한다면, 면허원은 환자 안전과 의료 전문성 유지에 초점을 맞춰 면허 등록, 교육, 윤리관리, 전문성 평가 등을 맡는 방식이다.
이는 면허를 한 번 취득하면 사실상 평생 보유하는 자격으로 보는 데서 벗어나 실제 진료 역량과 윤리성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체계로 전환한다는 의미다.
△준비위원회는 면허원이 의료인의 등록·교육 업무를 △전문가평가단은 현장 조사와 사례 발굴을 △중앙윤리위원회는 심의·징계를 담당하는 ‘3축 구조’를 제시했다. 조사와 심의, 등록 기능을 구분해 권한 집중을 막고 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이루겠다는 취지다.
◆영국은 의사·시민 함께 참여…5년마다 재인증 =
이미정 교수는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사례를 들어 의사면허관리기구와 의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분리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영국에서는 일반의학위원회(GMC)가 의사 등록과 자격 관리, 전문직 기준 마련, 민원 조사 등을 담당한다. 반면 영국의사협회(BMA)는 회원 권익과 근무조건 개선 등을 맡는다. 미국의 주별 의사면허위원회와 미국의사협회, 캐나다의 주별 의사·외과의사단체와 캐나다의사협회도 비슷하게 규제 기능과 이익대표 기능을 나눠 운영한다.
이들 국가의 면허관리기구는 대체로 △면허 등록과 갱신 △의료 전문직 기준의 제정과 유지 △지속적인 교육과 역량 관리 △민원 조사와 징계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영국은 5년마다 의사의 진료 적합성을 다시 확인하는 재인증 제도를 운영한다. 의사는 지속적인 전문성 개발 활동과 환자 안전사고, 민원, 동료·환자 평가 등 관련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지정기관 책임자의 권고를 바탕으로 GMC가 재인증 여부를 결정한다.
호주와 캐나다는 매년 등록을 갱신하면서 임상활동과 보수교육, 배상책임보험 등을 확인한다. 미국은 주에 따라 매년 또는 2년마다 면허를 갱신한다.
징계 절차에도 공공성이 반영돼 있다. 영국에서는 의료심판기구가 의료인의 진료 적합성을 독립적으로 심사한다. 환자 안전과 국민의 신뢰를 보호하고 의료 전문직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 심사의 핵심 목적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우선 의사 등록체계를 구축하고 등록 정보와 진료 자격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지속적인 전문성 개발과 동료평가를 등록·갱신제도와 연계하고, 조사와 심판 과정에는 의사뿐 아니라 일반 시민도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의사들끼리의 규제’가 아니라 환자 안전과 공공성을 우선하는 전문직 규제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규제 목표는 의사 보호 아닌 국민 보호” =
이얼 팀장은 자율규제기구의 존재 이유가 의사집단의 이익만을 보호하는 데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영국 의사법은 면허관리기구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공중의 건강과 안전, 복지 보호를 제시한다. 또 의사 직업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유지하고 전문직의 기준과 행동규범을 높이는 기능도 함께 명시하고 있다.
이 팀장은 자율규제가 제대로 작동하면 무자격자의 의료시장 진입을 차단하고 비전문가의 부당한 개입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비윤리적 행위를 하거나 역량이 부족한 의사를 적절히 조사하고 관리함으로써 의료계 전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봤다.
자율규제에는 징계만이 아니라 회복과 재교육도 포함된다. 정신적·신체적 건강 문제를 겪거나 진료 역량이 저하된 의사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해 안전하게 진료현장으로 복귀하도록 돕는 체계도 면허관리기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의료분쟁이 발생했을 때 전문직이 합의한 진료 기준을 마련하는 기능도 중요하다. 의료행위의 적절성을 판단할 때 획일적인 행정 기준이나 사후적인 법률 판단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문가 집단이 확립한 임상 기준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팀장은 전문가 주도 관리체계가 해당 직역의 내부 이익을 보호하는 데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세계의사회 원칙도 함께 제시했다. 국민의 안전과 사회적 신뢰, 전문직의 명예를 함께 지키는 구조여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시의사회 79건 조사…지역 조직이 현장 감시 =
지역의사회는 면허원 운영에서 문제 의료행위를 조기에 발견하는 현장 기반으로 제시됐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은 “2019년 5월부터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에 참여해 현재까지 79건의 사건을 조사·처리했다”며 “최근 다이어트 약물 부정처방 등을 비롯한 15건에 대해서는 행정처분 의뢰나 고발 등의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신기택 준비위원은 별도 발표에서 서울시 전문가평가단의 특정 집계 기간 실적으로 72건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행정처분 의뢰가 11건, 고발이 1건, 주의가 35건, 혐의없음이 17건이었다. 79건과 72건은 각각 집계 시점과 대상 기간이 다른 수치다.
전문가평가단은 불법 의료광고, 마약류와 향정신성 의약품의 부적절한 사용, 비윤리적 의료행위 등을 조사해 왔다. 의료현장을 잘 아는 지역 전문가가 문제를 조기에 확인하면 환자 피해를 예방하고 사무장병원이나 면허 대여도 보다 효과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재만 의사협회 정책이사는 면허원의 통합정보시스템과 지역의사회 조직을 연결해 의사 등록·신고와 보수교육, 회원 관리 등을 체계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면허신고와 연수교육을 디지털화하면 지역의사회가 회원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의료기관 개설·이전·폐업 정보도 관리할 수 있다. 감염병이나 재난 발생 시 지역 의료인력을 신속하게 확인하고 응급의료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기관 개설이나 이전 사실을 지역의사회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에는 검토할 문제가 있다. 이미 보건소에 개설 신고를 하고 관련 정보가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 연계되는 만큼 행정절차가 중복될 수 있다. 민간단체에 신고를 의무화할 경우 직업 수행 자유와 충돌할 가능성도 있어 별도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
◆설립되더라도 정부와 업무 분담 등 협의와 입법 남아 =
면허원 설립은 지난 4월 의협 정기대의원총회 의결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준비위원회에 따르면 4월 19일 제78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의사면허원 설치와 관련한 정관 신설안이 찬성 168명, 반대 29명, 기권 1명으로 통과됐다.
이어 4월 30일 제3차 의정협의체에서는 의료인단체의 자율규제 제도화가 공식 논의 안건으로 다뤄졌다고 준비위원회는 설명했다.
국회에는 의료인단체가 스스로 회원을 징계하고 그 결과를 복지부의 행정처분과 연계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준비위원회는 이를 조사와 심사 권한을 제도화하는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올해 하반기 일정도 제시됐다. 7~8월 정관과 운영규정 정비, 복지부 정관 승인 절차를 거쳐 10월에는 면허등록 전산시스템을 활용한 시범운영을 추진한다. 12월에는 전산시설을 확충하고 전문 인력을 확보해 면허원을 공식 출범시키는 것이 목표다.
다만 현재 면허원 설치를 위한 정관에 대해 복지부의 최종 승인이 완료된 것은 아니다. 면허 발급과 정지·취소 등 핵심 권한도 현행법상 정부에 있으므로, 면허원이 설립되더라도 실제 권한 범위와 정부와의 업무 분담은 별도의 협의와 입법을 거쳐야 한다.
◆관건은 독립성과 시민 참여…‘제 식구 감싸기’ 넘어야 =
면허원이 환자 보호기구로 자리 잡으려면 가장 먼저 의사단체로부터의 실질적인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협이 회원 권익을 대변하는 조직인 만큼 그 산하 조직이 회원의 비위와 의료사고를 심사한다면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 의사와 의사단체의 이해관계가 겹칠 경우 징계가 느슨해지거나 사건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피하기 어렵다.
김교웅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자율규제가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이롭고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라는 점을 국민에게 진정성 있게 증명하는 대국민 설득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면허원 운영기구와 징계위원회에 환자단체, 법률 전문가, 윤리 전문가, 일반 시민 등이 참여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 의사와 비의사 위원의 구성 비율을 명확히 하고 조사·징계 기준과 절차, 처리 결과를 공개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환자가 직접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독립적인 민원 창구를 마련하고, 이해충돌이 있는 위원은 심의에서 배제해야 한다. 성범죄나 폭력, 마약류 오남용, 무면허 의료행위 조장처럼 환자 안전에 중대한 위해를 가하는 사안은 신속히 조사하고 정부와 수사기관에 연계하는 기준도 갖춰야 한다.
반면 단순한 지식 부족이나 건강 문제로 진료 역량이 떨어진 의사에게는 재교육, 치료, 조건부 진료, 감독 아래 복귀 등 단계별 조치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모든 문제를 면허 박탈이나 형사처벌로만 해결하는 대신 환자 위험의 정도에 따라 적절한 규제와 회복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다.
전문가의 자율성과 사회적 감시가 함께 작동하면서 의사면허원이 국민이 신뢰하는 공적 면허관리체계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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