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윤은기 칼럼니스트] 흔히 미련하고 둔한 사람을 가리켜 ‘곰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동물학적으로도, 경영학적으로도 완전히 틀린 말이다.
실제 야생의 곰은 지능이 매우 높고 상황 판단력이 뛰어난 영리한 동물이다. 거대한 덩치와 달리 시속 50km가 넘는 속도로 달릴 수 있으며,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까지 지녔다. 먹이를 얻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경영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겉보기에 무겁고 오래된 ‘곰 같은 기업’이 판을 바꾸는 영리한 신의 한 수를 던질 때가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콜라보레이션 신화를 쓴 ‘곰표(대한제분)’의 성공스토리를 살펴보자.
곰이 미련하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갇힌 사람이야말로 가장 미련하다는 것을 이 영리한 곰은 ‘X경영(융합과 협업)’의 정수를 통해 증명해 보였다.
몇 년 전, 남성 빅사이즈 의류 브랜드인 ‘4XR’이 대한제분의 허락 없이 곰표 로고를 무단으로 사용한 의류를 출시했다. 대개의 기업이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당장 법무팀을 가동해 내용증명을 보내고 무단 도용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판매중지 처분을 내렸을 것이다. 법과 규정의 잣대로만 보면 그것이 당연한 대응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한제분의 선택은 전혀 달랐다. 그들은 항의와 법적 조치 대신, 오히려 “제대로 한번 같이 만들어보자”며 정식 협업을 제안했다.
그렇게 탄생한 ‘곰표 패딩’과 맨투맨 티셔츠는 출시되자마자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레트로 열풍의 중심에 섰다. 무단 도용이라는 감정적·법적 대립의 불씨를 창조적 비즈니스의 기회로 맞바꾼 것이다. 만약 이때 법적 대응을 먼저 들이밀었다면, 오늘날 전 국민을 열광시킨 곰표의 세계관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4XR과의 성공적인 첫 단추 이후, 곰표의 협업은 경계를 허물며 전방위로 확장되었다. 이른바 ‘곰표 콜라보 유니버스’의 탄생이다.
곰표 밀맥주 (with 세븐브로이, CU)는 곰표 콜라보의 정점이다. 밀가루 회사의 정체성을 ‘밀맥주’로 연결하여 출시 직후 카스, 테라 등 기성 대기업 맥주를 제치고 편의점 수제맥주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대량 생산이 수요를 못 따라갈 정도로 폭발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곰표 팝콘 & 나쵸 (with CU)는 밀가루 포대 자루 디자인을 그대로 살린 대용량 스낵이다. 인간 사료라는 애칭을 얻으며 가성비와 재미를 동시에 잡은 대박상품이 되었다.
곰표 밀가루 쿠션 (with 스와니코코)도 기발한 협업이다. 화장품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하얗고 깨끗해진다”는 밀가루의 시각적 이미지를 뷰티 제품에 투영하여 2030 여성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곰표 주방세제 (with 애경산업)의 협업을 보라. 주방의 찌든 때를 ‘하얗게 닦아낸다’는 콘셉트로, 브랜드의 백색 이미지를 생활용품으로 완벽하게 확장했다.
곰표의 협업은 왜 강력한 시너지를 내는가? 이러한 파격적인 협업이 단순히 일회성 화제에 그치지 않고 폭발적인 경영 성과, 즉 ‘시너지’로 이어진 데는 명확한 경영학적 이유가 있다. 필자가 주창한 ‘X경영’의 관점에서 분석한 세 가지 핵심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덧셈(+)이 아닌 곱셈(×)의 법칙이다
전통적인 경영이 기존 시장에서 점유율을 조금씩 늘리는 ‘덧셈(+)의 경쟁’이라면, 곰표의 협업은 전혀 다른 이종(異種) 산업이 만나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곱셈(×)의 경영’이다. 밀가루와 패딩, 밀가루와 맥주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만났을 때, 소비자들은 신선한 ‘인지적 충격’을 받는다. 이 이질성이 결합하는 순간 브랜드 가치는 산술적 합을 넘어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된다.
둘째. 헤리티지(Heritage)와 힙(Hip)의 융합이다
대한제분의 곰표는 1952년에 탄생해 7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초장수 브랜드다. 중장년층에게는 친숙하고 신뢰할 수 있는 ‘원조’의 이미지가 있고, MZ세대에게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선하고 ‘힙한 뉴트로(Newtro)’로 다가간다. 즉, 오랜 세월 축적된 브랜드의 신뢰도(Heritage)에 젊은 감성의 재미(Fun)를 결합함으로써 전 세대를 아우르는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다.
셋째. 심리적 반전 효과(Schema Congruity)
인간의 뇌는 익숙한 패턴에서 벗어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강한 흥미를 느낀다. 밀가루 포대 디자인의 옷을 입고, 밀가루 표백 이미지의 화장품을 바르는 행위는 소비자들에게 일종의 ‘유희’가 된다. 제품의 기능적 가치를 넘어 ‘스토리와 경험을 소비하는 펀슈머(Fun-sumer) 시장’을 정확히 꿰뚫은 결과다.
오늘날과 같은 초경쟁, 초변화의 시대에는 법과 제도의 장벽 뒤에 숨어 기득권을 지키려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기술과 시장의 트렌드는 빛의 속도로 변하는데 법적 공방을 벌이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 4XR의 무단 도용 사례에서 대한제분이 보여준 유연함과 민첩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갈등을 상생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경영의 스피드와 포용력을 보여주었다.
단단한 성벽을 쌓고 자기 영토만 지키려는 자는 고립되어 도태된다. 반면, 영리한 곰처럼 경계를 허물고 타인의 강점을 아우르는 ‘X경영’을 실천하는 자는 세상 모든 것을 자신의 영토로 만든다.
무단 도용마저 최고의 협업 파트너십으로 탈바꿈시킨 곰표의 영리한 선택을 보라. 아직도 고정관념에 갇혀 곰이 미련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기 자신이 곰보다 미련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부르는 명칭은 따로 있다. ‘미련곰탱이’라고 부른다.
“영리한 곰처럼 움직여라. 딱딱한 규정보다 강한 것은 상생을 향한 오픈 콜라보레이션이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윤은기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학 석사, 인하대학교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차관급),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 서울시공무원면책심의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협업발전포럼 회장, 대한민국 백강포럼 회장, 백소회 회장, 공군정책발전자문위원장, 도산애기애타지도자아카데미 학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방송활동으로 KBS 제1라디오 ‘생방송 오늘’, EBS TV ‘직업의 세계’, MBN TV ‘알기 쉬운 경제이야기’ 등이 있다. 주요저서로는 <X경영(2025)>, <협업으로 창조하라(2015)>, <대한민국 국격을 생각한다(2010)>, <매력이 경쟁력이다(2009)>, <時테크 시간창조의 기술(1992)>, <정보학 특강(1987)> 등이 있다.
수상경력으로 ‘공군을 빛낸 인물(2015)’, ‘대한민국공군전우회 자랑스러운 공군인(2015)’, ‘제9회 한국HRD대상 CHO부문 대상(2011)’, ‘홍조근정훈장(2009)’, ‘산업교육대상 명강사부문(199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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