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편이라면 난도질하는 문화
분노 팔아 혐오를 키우는 미디어
공론장을 감정의 배설구로 이용
이 대통령,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분노가 트렌드인 시대다. 적어도 정치에서는 그렇다. 국회의원도 평론가도 언론인도 종종 절제 없이 분노를 터뜨린다. 한번 잘 터뜨리면 ‘사이다’로 칭송받는다. 유튜브 방송에서는 이런 격정과 분노를 더 자주 접한다. 이런 분노의 장면들은 ‘참교육’이니 ‘끝장’이니 하는 자극적인 섬네일이 붙어 다시 쇼츠로 돌아다닌다.
이런 분노에 어느 정도의 연출이 들어 있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출연자 가운데는 방송을 통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고 대중과 권력자의 귀를 사로잡아 한자리 차지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제작자 측에서는 잘 연출된 분노는 상업적으로 이득이 된다.
문제는 그렇게 연출된 분노가 적의 이미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고 부풀리며 근거 없는 혐오를 퍼뜨린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위협받는 것은 민주주의다.
분노는 한국 정치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속성상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불평등과 부자유에 대한 대중의 분노 없이 민주주의는 생겨날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분노는 모든 민주주의의 씨앗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민주파 지도자 클레온에게 거친 말씨에 아무 곳에서나 정적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선동가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은 아마 그런 탓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분노 없는 민주주의란 존재할 수 없다. 특히 대한민국에는 분노의 뇌관이 사방에 깔려 있다. 지금 한국에는 한국전쟁 전후의 혼란 속에 소년기를 보낸 세대부터 처음부터 선진국으로 대한민국을 경험한 세대까지 여러 세대가 나란히 살고 있다. 다른 경험, 다른 사고 방식에서 손쉽게 오해와 반목이 자라난다. 더욱이 한국은 식민지배와 전쟁, 권위주의의 지배, 고도 성장 속 부와 지위의 양극화를 한꺼번에 겪은 사회다. 부당함과 불공정에 대해 사람들이 예민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제대로 분노하고 이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부자유와 불평등에 대한 당연한 저항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분노가 이용될 때 민주주의는 파괴된다.
나는 이제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올바른 분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유시민 작가를 둘러싼 논란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옹호하는 측도, 비난하는 측도, 모두의 언어에는 노기가 묻어났다. 평면적인 비교는 어렵겠지만 특히 유시민을 비난하는 소위 뉴재명 논객들 일부의 언사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거칠었다. 심지어 ‘나와 한판 붙자’는 식의 중2병 냄새나는 자극적인 언어까지 동원됐다. 대통령에게 유시민이 던지는 비판이 음모론에 불과하고 개혁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길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유시민이나 그의 주변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인신공격, 조롱,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오죽하면 별 관심 없는 사람조차 이들의 절제 없는 언어를 우려할 정도였다.
물론 이런 미디어상에서의 고삐 풀린 분노의 연출은 뉴재명만의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뉴재명의 거친 태도와 언어는 뿌리가 2010년대 초중반 보수정권 시기 팟캐스트를 중심으로 번져나간 저항문화에 닿아 있다. 저비용에 접근성이 좋고 법률의 규제는 상대적으로 적은 이 새로운 담론 공간에서 민주주의적 비판에 섞여 분노도, 조롱도 고삐가 풀렸다. 그리고 이런 문화는 유튜브가 보편화되면서 급속히 번져나갔다. 지금 뉴재명으로부터 비판받는 인사들이 이런 절제 없는 분노미디어의 확산과 관련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단 반대편이라면 말이 되든 안 되든 난도질하고 보는 문화, 비난과 조롱으로 린치하는 문화는 민주주의를 질식시킨다. 자유언론과 비평의 이름을 빌리지만 사실상 공론장을 감정의 배설구로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과 의견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런 구렁텅이에 발을 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이런 절제 없는 분노문화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 특히 대통령은 더욱 그렇다. 대통령은 당파가 아닌 국가의 지도자다. 공론장을 바로 세우는 것은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모든 노력을 바쳐야 할 대한민국 대통령의 소명이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지금의 소란에서 한 발 떨어져 건전한 공론장이 형성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요즘 대통령의 엑스(X)가 문제다. 빈도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대통령이 공론장에 대한 자신의 역할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절제는 거기서 나올 것이다.
윤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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