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AI 기반 물류 전 과정 최적화로 ‘로켓배송’ 경쟁력 강화
신세계, 250MW 초대형 데이터센터 구축…AI 인프라 중심
롯데, 네이버·오카도 협업 통해 현장 적용형 ‘AX(AI 전환)’ 가속
아시쉬 수리야반시 쿠팡 엔지니어링 부사장. 사진=쿠팡Inc. 홈페이지
국내 유통업계에서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단순한 디지털 전환을 넘어 물류, 데이터, 인프라를 중심으로 기업 간 경쟁의 기준이 재편되는 양상이다. 주요 유통기업들은 글로벌 기술 기업과 협력을 확대하며 기존에 구축해 온 유통 인프라에 AI를 접목해 서비스 혁신과 운영 효율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쿠팡, 신세계그룹, 롯데그룹은 각각 다른 접근 방식으로 AI 전략을 추진하며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공통적으로는 물류·배송 고도화와 데이터 기반 운영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하지만, 실행 방식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쿠팡은 AI를 물류 전반에 적용해 운영 효율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쿠팡의 모기업 쿠팡Inc.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이른바 ‘AI 팩토리’를 구축하고 물류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자체 AI 클라우드 시스템인 ‘쿠팡 인텔리전트 클라우드(CIC)’를 기반으로 재고 관리, 작업 일정 조정, 상품 적재, 배송 경로 최적화 등 물류 전 과정에 AI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AI 인프라와 오픈소스 추론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이고 모델 개발과 적용 시간을 단축한 점이 특징이다.
이 같은 기술 도입은 실제 운영 효율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CIC 기반 AI 모델은 물류센터 작업 일정과 상품 적재 효율을 개선했으며 GPU 활용률은 기존 65%에서 95%까지 상승했다. 업계에서는 쿠팡이 AI를 통해 ‘로켓배송’의 속도와 안정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시쉬 수리야반시 쿠팡 엔지니어링 부사장은 “쿠팡의 핵심은 고객과의 ‘로켓배송’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며 “엔비디아와 협력을 통해 기존 AI·머신러닝 기술을 한층 고도화해 고객과 회사 모두를 위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왼쪽부터) Ioannis Antonoglou 리플렉션 AI CTO, Misha Laskin 리플렉션 AI CEO,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임영록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장이 현지시간 1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국 소버린 AI 팩토리 건립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MOU’에 참석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신세계그룹
신세계그룹은 AI 활용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 구축에 방점을 두고 있다. 신세계는 미국 AI 스타트업 리플렉션AI와 전략적 협력을 통해 국내에 전력용량 250㎿ 규모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현재 국내에서 구축됐거나 계획 중인 데이터센터 가운데 최대 수준으로 평가된다. 해당 데이터센터에는 엔비디아 GPU가 탑재될 예정이며, 이를 통해 대규모 연산이 가능한 AI 인프라를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양사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내셔널 AI 센터’에서 ‘한국 소버린(주권) AI 팩토리 건립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협약(MOU)’을 체결했다. 이 자리에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도 참석했다. 리플렉션AI는 구글 딥마인드 핵심 개발자 출신인 미샤 라스킨 최고경영자(CEO)와 알파고 개발 주역인 이오안니스 안톤글루 최고기술책임자(CTO)가 2024년 설립한 기업으로, 개방형 AI 모델 개발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신세계는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클라우드 서비스와 맞춤형 AI 솔루션을 결합한 ‘리테일 AI 풀스택(Retail AI Full-Stack)’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합작법인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재고 관리 효율을 높이고 보다 정밀한 물류 체계를 구현하는 한편, ‘이마트 2.0’ 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AI는 미래 산업과 경제, 인간의 삶 등 모든 분야를 총체적으로 변화시켜 AI 없는 미래 산업은 생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며 “리플렉션AI와의 데이터센터 건립 협업 프로젝트는 신세계의 미래 성장 기반에 토대가 되는 것은 물론 국내 산업 전반의 AI 생태계 고도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이노베이트 사옥 전경. 사진=롯데이노베이트
롯데그룹은 자체 인프라 구축보다는 검증된 파트너와의 협업을 통해 AI를 빠르게 현장에 적용하는 전략을 택했다. 신동빈 회장 주도로 추진 중인 ‘AX(AI 전환)’ 전략을 기반으로 네이버 등과 협력해 쇼핑, 마케팅, ESG 분야에 AI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또한 영국 리테일테크 기업 오카도와 협력해 자동화 물류센터 구축에도 나서고 있다.
롯데쇼핑은 오카도의 ‘오카도 스마트 플랫폼(OSP)’을 도입해 온라인 장보기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OSP는 로봇, AI, 빅데이터를 활용해 물류 자동화를 구현하는 시스템으로 배송 정확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올해 상반기 가동 예정인 ‘제타 스마트센터 부산’에는 해당 플랫폼이 처음 적용될 예정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OSP가 적용된 제타 스마트센터에서는 AI 기반 수요 예측과 재고 관리, 로봇을 활용한 상품 피킹·패킹, 배송 노선 및 배차 최적화가 자동화로 이뤄져, 기존 온라인 물류센터 대비 배송 처리량이 2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계열사 전반에서도 AI 도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AI BI 에이전트’는 데이터 분석 시간을 70% 이상 단축하고 마케팅 효율을 10% 높였으며, 롯데이노베이트의 AI 기반 업무 자동화 도구 사용량은 전년 대비 276% 증가했다. 롯데케미칼은 전남 율촌산단에 약 3000억원을 투자해 AI 기반 품질 검사와 공정 자동화를 도입하며 생산성을 높였다.
이처럼 주요 유통기업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AI 전략을 추진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물류 효율화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 구축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유통 산업의 경쟁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에는 가격 경쟁과 상품 구성, 오프라인 점포 확장이 경쟁력을 좌우했다면, 현재는 AI 기술과 데이터 처리 역량, 컴퓨팅 인프라 확보 여부가 물류 효율과 비용 구조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오프라인 유통 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고 온라인 시장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존 사업 구조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주력 사업 외 영역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기존 사업 구조만으로는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며 “AI 시대에 대비해 기업의 체질을 바꾸려는 성격이 강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경제 고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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