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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원유길 봉쇄, 전 산업 비상…일상까지 번진 ‘3차 오일쇼크’

반도체 필수 냉매인 헬륨 가격도 1주일 새 50% 급등했다. 요소수는 10L당 1만원 안팎에서 1주일 새 2만원대 초중반으로 가격이 급등했다. 2021년 중국발 요소수 대란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전 세계...

원유길 봉쇄, 전 산업 비상…일상까지 번진 ‘3차 오일쇼크’

오만 무스카트에 정박중인 유조선 벌크선. 사진=로이터·연합뉴스

1973년 10월, 아랍 산유국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한 서방에 석유 수출을 끊었다. 몇 달 만에 원유 가격이 4배로 뛰었다. 영국은 석탄 부족까지 겹쳐 공장들이 주 3일만 돌아가는 ‘3일 근무제’를 강제 시행했다. 고물가·고실업·잦은 파업이 뒤엉킨 이른바 ‘영국병(British Disease)’의 정점이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원유 가격은 다시 3배로 치솟았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카디건을 걸치고 TV에 나와 에너지 절약을 호소했다. 그 충격은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1981년까지 세계 경제를 짓눌렀다.

그로부터 반세기. 2026년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호르무즈 해협을 닫아버렸다. 세계 해상 원유의 20%, LNG의 22%가 통과하는 폭 21마일의 이 바닷길이 사상 처음 실전 봉쇄됐다. 1차도, 2차 오일쇼크 때도 막히지 않았던 통로다.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는 벌써 ‘제3차 오일쇼크’라는 단어가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

제2차 석유파동 시기인 1980년 1월 기름값 상승으로 차에 기름을 넣으려는 차들이 갈월동 주유소에 길게 줄을 늘어서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이란 전쟁, 역대 최대 에너지 안보 위기 초래”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이 사태를 “역사상 최악의 에너지 안보 위기”로 규정했다. 농업용 비료, 플라스틱, 석유화학 제품, 황, 헬륨 등 전 세계 필수 자원 공급까지 연쇄 타격을 받고 있다는 진단이다.

유가는 개전 전 배럴당 72달러에서 출발해 수일 만에 100달러를 넘어섰다. 중동산 원유 가격의 대표적 벤치마크인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지난 3월 19일 사상 최고치인 166달러까지 치솟은 데 이어 3월 20일에는 장중 176달러를 넘어서며 170달러선마저 뚫었다.

반면 국내 주유소 가격은 달랐다.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3월 셋째 주(15~19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전주 대비 리터(L)당 72.3원 내린 1,829.3원, 경유는 96.5원 하락한 1,828.0원으로 집계됐다.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이 국내 소매가를 일정 수준 붙들어 놓은 결과다.

그러나 국제유가 변동이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통상 2~3주의 시차가 발생하는 만큼, 최근 폭등분이 반영되는 시점부터는 다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유가를 잡으려는 카드도 꺼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3월 20일 “현재 해상에 발이 묶여 있는 이란산 원유 판매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조치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란은 즉각 “해상에 남아있는 원유가 없고 공급할 물량도 없다”고 반박했다. IEA의 역대 최대 비축유 방출(4억 배럴) 카드도 꺼내 들었지만, 골드만삭스는 공급 감소분의 12일 치에 불과하다고 추산했다.

2023년 12월 6일 대전의 한 대형마트에 요소수를 1인당 한 개만 구입할 것을 요청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스1

에틸렌·요소수·종량제봉투까지…전 산업 도미노

업계에 따르면 충남 서산 대산항에 지난 3월 20일 이글 밸로어호가 200만 배럴의 원유를 싣고 도착한 것을 끝으로 중동발 원유 수급은 사실상 중단됐다. 4월 도착 예정인 중동산 유조선도 전년 대비 70%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정유사들은 이달 말부터 정제시설 가동 축소를 검토 중이며, 4~5월에는 가동률이 50~60%대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안정적 정제를 위한 최소 가동률(70%대) 아래로 떨어지는 수치다.

충격은 정유·석유화학을 넘어 전 산업으로 번졌다. 조선업계는 ‘산업의 쌀’ 에틸렌 원재료인 나프타 공급이 줄면서 철판 절단용 에틸렌 재고 고갈로 정부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플라스틱 원료비는 한 달 새 톤(t)당 150만원에서 230만원으로 50% 넘게 올랐다.

중동 사태로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겨 비닐 원료인 폴리에틸렌(PE) 부족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종량제 봉투의 주원료는 PE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완성차 업계는 내·외장재 핵심 원료인 ABS(아크릴로니트릴 부타디엔 스티렌) 공급에 대한 ‘불가항력’ 통보를 받으며 생산 차질이 현실화하고 있다. 반도체 필수 냉매인 헬륨 가격도 1주일 새 50% 급등했다.

요소수는 10L당 1만원 안팎에서 1주일 새 2만원대 초중반으로 가격이 급등했다. 2021년 중국발 요소수 대란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전 세계 요소·황 수출의 약 50%와 질소 비료 원료인 액화천연가스(LNG)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탓이다. 일부 온라인 쇼핑몰은 판매를 중단했고 1인당 1~2통으로 제한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석유화학 원료 수급 차질은 쓰레기 종량제봉투로까지 이어졌다. 정부는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종량제봉투 재고 현황 긴급 점검에 착수했다. 연간 약 18억장이 소비되는 종량제봉투는 대부분 폴리에틸렌에 의존한다. 봉투 제조업체들에 따르면 원료 재고는 한 달 분량에 그친다.

주4일제부터 미지근한 맥주까지…‘덜 쓰기’로 돌아선 세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월 20일(현지 시간) 유가 급등 초기 가격 통제로 버티던 각국 정부가 결국 ‘덜 쓰기’로 방향을 틀었다고 보도했다. IEA가 “공급 확대만으로는 이번 충격을 상쇄할 수 없다”며 수요 억제를 공식 강조하면서다.

스리랑카는 공공기관·학교 대상 주4일 근무제와 연료 배급제를 시행했고, 방글라데시·파키스탄은 학교 문을 닫았다. 태국에서는 TV 진행자들이 재킷 없이 방송에 출연해 냉방 절제를 독려했다.

영국은 주점과 식당에 야간 병맥주 냉장고 전원 차단을 권고해 ‘미지근한 맥주’ 논란을 불렀다. 독일에서는 연료 절감 효과를 주장하는 USB 장치와 연료 분자 정렬을 돕는다는 자석 등 연료 절감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상품 광고가 급증했다. 독일 최대 자동차 서비스 단체 ADAC는 “불빛이 깜빡이지만 실제 효과는 없다”고 경고했다.

한국도 29년 만에 석유 판매 가격 최고액 지정 제도를 꺼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공공부문부터 승용차 5부제를 실천하겠다”며 에너지 절약 동참을 호소했다. 자원안보 위기경보는 ‘주의’ 단계로 격상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촉발된 중동 정세에 대비해 ‘차량 부제 운행’을 언급한 데 따른 조치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넘어선 3월 9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휘발유·경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사진=임형택 한국경제신문 기자

“적국 외 선박엔 호르무즈 개방”…불확실성은 여전

한국 수입 원유의 70%는 중동에서 오고, 이 중 약 9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다. 정유업계가 보는 실질 비축유 재고는 68일 치다. JP모간은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전 세계 상반기 성장률이 1.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산했다. 고환율·고유가·고물가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업 비용 부담과 소비 위축이 겹치면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는 현실이 된다.

3월 22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 이란 대표 알리 무사비는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적과 연계된 선박을 제외하고 모든 선박에 개방돼 있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8시간 이내에 해협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의 에너지 인프라를 초토화할 것”이라고 경고한 직후 나온 발언이다.

무사비 대표는 “이란 정부와의 보안·안전 조율을 거치면 통과가 가능하다”면서 IMO와 협력 준비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란 측이 규정하는 ‘적국 연계 선박’의 기준이 어디까지인지, 한국 선박이 통항 허가를 받을 수 있는지는 현재로선 불분명하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 사진=AFP·연합뉴스

정부가 29년 만에 꺼낸 석유 판매 가격 최고액 지정 제도로 당장의 충격을 흡수하고 있지만, 인위적 가격 통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산업계에선 에너지 대체 공급선 발굴, 나프타·에틸렌 비축 체계 신설, 요소 전략물자 지정 확대 등 구조적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운송·물류·제조업 등 직접 타격을 받는 업종과 고유가에 취약한 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지금 당장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롤 IEA 사무총장은 이번 위기가 1970년대처럼 재생에너지 전환과 원전 투자 확대, 전기차 확산을 가속하는 구조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가스 대신 석탄 사용이 늘어나는 등 에너지 구조가 일부 역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피치 레이팅스는 중동 갈등 장기화가 에너지 비용 상승, 차입 비용 증가, 인플레이션 확대, 성장 둔화를 통해 선진국 경제에 새로운 신용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롤 사무총장은 분쟁이 종료되더라도 유전·가스전 정상화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건스탠리도 전쟁이 빠르게 끝나더라도 공급 차질은 수 주간 이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비롤 사무총장은 “가장 중요한 조치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재개”라며, 봉쇄가 지속될수록 문제는 날마다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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