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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울산서 시작되는 재고의류와 경찰복의 두 번째 삶

옷은 원래 오래 입기 위해 만든 물건이다. 몸을 감싸고, 추위를 막고, 한 사람의 하루를 함께 지키는 것이 옷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옷은 오래 입는 물건이 아니라 빨리 사고 빨리 버리는 상품이 됐다.

울산서 시작되는 재고의류와 경찰복의 두 번째 삶

변의현 사회적기업 ㈜우시산 대표

옷은 원래 오래 입기 위해 만든 물건이다. 몸을 감싸고, 추위를 막고, 한 사람의 하루를 함께 지키는 것이 옷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옷은 오래 입는 물건이 아니라 빨리 사고 빨리 버리는 상품이 됐다.

유행은 더 짧아졌고, 옷이 옷장에 머무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문제는 우리가 버린 옷이 눈앞에서만 사라질 뿐,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내 옷장에서는 없어졌을지 몰라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그대로 쌓인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는 세계 각지에서 흘러든 중고의류가 산처럼 버려지고, 가나에서는 헌옷 폐기물이 해변과 물길을 오염시킨다. 섬유 폐기물이 뒤섞인 쓰레기장 곁을 소가 맴돌고, 또 다른 곳에서는 코끼리가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죽는다. 우리가 버린 것들이 결국 다른 생명의 삶터까지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현실은 숫자로 봐도 심각하다. 유엔환경계획은 2000년부터 2015년 사이 전 세계 의류 생산이 두 배로 늘었고, 옷을 입는 기간은 36% 줄었다고 밝혔다. 전 세계에서 해마다 약 9,200만 톤의 섬유 폐기물이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옷 한 벌은 별것 아니어 보여도, 너무 많이 만들고 너무 빨리 버리면 결국 거대한 산이 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23년 국내에서 생활폐기물로 분리 배출된 폐의류는 11만 938톤으로, 2019년 5만 9천 톤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런데도 폐섬유 문제는 폐플라스틱만큼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페트병이 옷이나 가방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지만, 헌옷이 다시 실과 원단이 된다는 말은 아직 멀게 느껴진다. 옷장은 비워지고 있지만, 폐의류 문제는 점점 더 우리 가까이 쌓이고 있다.

왜 그럴까. 답은 옷 한 벌 안에 있다. 겉으로는 셔츠 한 장처럼 보여도 안에는 면, 폴리에스터, 나일론 같은 여러 섬유가 섞여 있고, 지퍼와 단추, 프린트, 봉제선까지 얽혀 있다. 헌옷을 자원으로 되돌리는 일은 낡은 스웨터 하나를 푸는 정도가 아니다. 오래 엉킨 실타래를 처음부터 다시 풀어내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소재별로 나누고, 단추와 지퍼를 떼어내 다시 쓸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버리는 데는 몇 초면 충분하지만, 되돌리는 데는 누군가의 손과 시간, 그리고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태워 없애던 옷을 다시 쓰이게 하는 일. 그 어려운 시도가 울산에서 준비되고 있다. 대기업 브랜드 재고의류와 경찰복 같은 공공기관 제복, 각종 폐섬유를 소각하는 대신 다시 원료와 제품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특히 경찰복은 보안과 식별 문제로 대부분 태워져 왔다. 하지만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가 추진한 '경찰복 등의 순환이용체계 구축 시범사업'을 계기로 변화가 시작됐다. 폐기 경찰복을 고품질 재생 원사와 원단으로 바꾸는 '파이버 투 파이버' 방식이 추진되고 있으며, 우시산도 관련 컨소시엄에 함께하고 있다. 버려진 옷의 끝을 바꾸는 일이 울산에서 하나씩 구체화되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이 문제를 기사나 통계로만 접한 것이 아니다. 우시산은 그동안 장애인과 어르신이 함께하는 현장에서 헌옷과 기업 유니폼, 자투리 원단을 직접 다뤄 왔다. 버려질 옷을 골라내고, 단추와 지퍼를 떼어내고, 새 제품의 재료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었다. 그 결과 옷은 장갑과 양말 같은 제품으로 돌아왔다. 버려질 뻔한 옷이 누군가의 일상에 다시 쓰이는 모습을 보며, 헌옷에도 분명 다음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헌옷과 재고의류를 그대로 기계에 넣을 수는 없다. 단추와 지퍼, 브랜드 표시를 떼어내고, 소재를 가려내야 한다. 겉으로는 단순한 분류 작업처럼 보여도, 이 단계를 지나야 비로소 옷은 쓰레기가 아닌 자원이 된다. 우시산이 이 일에 매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폐섬유 순환의 첫 단계는 기계보다 사람의 손이 먼저 필요한 일이다. 옷을 고르고, 부속을 떼어내고, 원단을 나누는 시간이 쌓여야 다음 공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일자리가 되고, 지역에는 새로운 가능성이 된다.

폐섬유 순환은 마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공공기관이 먼저 길을 열고, 기업이 함께 움직이고, 시민의 이해와 선택도 따라야 한다. 그리고 시장에서 쓸 만한 제품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버려진 옷이 실과 원단이 되고, 장갑과 양말, 작업복으로 돌아올 때 순환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 된다. 이 변화는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기업 재고의류도, 경찰복도, 헌옷도 꼭 소각장이나 매립지로 갈 필요는 없다. 제대로 모으고 나누고 다듬으면 다시 소재가 되고 제품이 될 수 있다. 울산에서 준비하는 일 역시 한 지역만의 사업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버려지는 옷의 끝을 바꾸고, 그 안에서 새로운 쓰임과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작지만 현실적인 출발이다.

옷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버려진 뒤에도 지구를 해치는 물건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아무렇게나 버리면 쓰레기가 되지만, 마음을 모으고 손을 보태면 다시 자원이 된다. 대기업 재고의류와 경찰복에 새 쓰임을 입히려는 이번 시도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버려지는 옷의 끝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 우리가 사는 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변의현 사회적기업 ㈜우시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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