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우리 만남은] 노동절 청계광장 재봉틀 소리와 '봉제인 김우중'의 바람

그냥 인터뷰가 아니다. 만남이다. 묻고 답하는 게 다가 아니다. 대화고 나눔이고 공감이다. 사람 이야기 [우리 만남은]의 세 번째 주인공은 '봉제인 김우중'이다.

[우리 만남은] 노동절 청계광장 재봉틀 소리와 '봉제인 김우중'의 바람

김우중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서울봉제인지회장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1만인 청원운동' 참여자에게 주는 손수건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천동환 기자]

그냥 인터뷰가 아니다. 만남이다. 묻고 답하는 게 다가 아니다. 대화고 나눔이고 공감이다. 사람 이야기 [우리 만남은]의 세 번째 주인공은 '봉제인 김우중'이다. <편집자 주>

'지이이잉, 지이이잉'

재봉틀(미싱)의 위력은 대단했다. 고작 두 대가 돌아가고 있을 뿐인데 그 소리가 청계광장을 가득 채우는 듯했다. 노동절이던 지난 1일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노동절 행사장의 '씬 스틸러(scene stealer, 명품 조연)' 재봉틀이 귀를 사로잡았다.

서명하고 가세요! 손수건도 드려요.

재봉틀 소리를 뚫고 누군가 힘차게 말한다. 스치듯 지나치려 했는데 눈을 마주쳐버렸다. '패션·봉제산업의 미래를 위한 1만인 청원운동'이란다.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패션·봉제산업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것'이라고 하니 좋은 취지려니 생각하고 서명했다.

손수건도 받았다. 하늘색이다. 노란색이 예뻐 보였지만 그냥 주는 대로 받았다. 시끄럽게 돌아가는 재봉틀이 현장에서 바로 만들어 낸 따끈따끈한 즉석 손수건이다.

혹시라도 객관성을 잃을까, 취재 현장에선 청원운동 같은 데엔 참여하지 않았는데 뭔가에 홀리듯 이름을 쓰고 전화번호와 주소를 적고 서명도 했다. 재봉틀 소리에 홀린 것 같다.

서명까지 했으니 그냥 갈 순 없다.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주도자를 찾아 질문을 시작했다.

◇ 경제 성장의 주역

주도자는 김우중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장이다. 즉석 손수건을 받은 값으로 즉석 대화를 요청했다.

김우중 지회장은 올해 59세로 32년 봉제 경력자다. 봉제(封題)는 재봉틀이나 손으로 바느질해 의류나 완구 따위 제품을 만드는 일이다. 작업 과정은 크게 재단, 바느질, 완성 순으로 진행된다.

김 지회장은 재단사다. 봉제 작업의 시작을 담당한다. 지금은 서울 동대문구 패션봉제지원센터에서 기간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봉제인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1일 청계광장에서 1만인 청원운동 참여자에게 줄 손수건을 만들고 있다. [사진=천동환 기자]

그는 봉제산업이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이끌던 때를 추억하면서 그 위상을 잃은 지금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때는 굉장히 좋았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1997년 말)까지도 봉제산업이 굉장히 좋았다. 그 후로 점점 안 좋아지더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을 때 최저점을 찍은 것 같다. 지금은 일감이 외국으로 많이 빠져나가서 힘들다.

◇ 공감에서 공감으로

김우중 지회장은 봉제산업이 다시 힘을 얻길 바랐다. '산업이 살아야 봉제인이 살 수 있고 봉제인이 살아야 산업도 살 수 있다'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합리적이다. 막연한 피해의식과 억지가 없어 공감할 수 있었다.

봉제인들은 그들이 몸담은 산업과 사업주가 처한 현실을 공감했고 이런 공감은 최근 여러 이유로 '노조의 본질'을 고민하는 기자의 공감을 끌어냈다.

김 지회장과 같은 생각을 가진 봉제인과 상인, 디자이너 등 패션·봉제산업 종사자들이 모여 지난해 11월 '패션봉제인원탁회의'를 출범했다. 원탁회의는 △패션·봉제산업 혁신 및 생태계 재구축을 위한 연구 △패션·봉제인 원탁회의 당사자 네트워크 확대 강화 △평화시장 중심 청계 패션·봉제 혁신기지 프로젝트 추진 △자주·자립적 복지시스템 '패션·봉제인 전국 공제회' 건설 △패션·봉제인 정부·지자체 지원 제도 개선을 5대 사업 목표로 설정했다.

김 지회장은 "패션, 봉제가 지금 사양 산업에 들어와 있다. 일하는 분들 연령대가 높고 새롭게 배우려는 이들이 많지 않다. 이런 산업을 다시 살려서 '우리가 세계적인 K-패션 한번 만들어보자'라는 의미로 원탁회의를 출범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서울 청계광장을 찾은 한 시민(왼쪽)이 서울봉제인지회가 진행 중인 1만인 청원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천동환 기자]

문제는 업계 종사자의 힘만으로는 이런 바람을 현실화하는 게 버겁다는 거다. 그래서 패션·봉제인들은 1만인 청원운동을 통해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단순히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한국 패션·봉제산업을 살리고 사업주를 살리며 노동자도 살리는 노력에 힘을 보태달라는 간청이다.

이건 우리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자체나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 다시 한번 옛날의 패션 강국을 만들어 보자', '세계 4대 패션에 버금가는 K-패션을 만들어 보자'라는 취지로 1만인 청원을 받게 됐다.

김 지회장의 이런 의지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8월 청원운동을 시작해 약 9개월이 지났지만 2500여명에게 서명받는 데 그쳤다. 보빈(bobbin, 실을 감아두는 재봉틀의 부속품)에 촘촘히 감긴 실 만큼이나 갈 길이 멀다.

◇ 과거·현재·미래 잇는 안전망

김우중 지회장은 프리랜서가 주를 이루는 패션·봉제인의 삶을 지탱할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현직 종사자만을 위한 바람이 아니다. 미래 패션·봉제산업을 이끌어 갈 새로운 인재의 유입을 바라는 선배 봉제인의 고민이다.

김 지회장은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한다면 패션·봉제업은 젊은 인력이 꿈을 펼치기에 충분한 분야라고 힘줘 말했다.

옷의 활용 범위가 굿즈나 단체복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IT(정보기술) 강국이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기반도 충분하다. 젊은 패션·봉제인들이 미래 기술력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하면 복합적인 산업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김우중 서울봉제인지회장. [사진=천동환 기자]

김 지회장은 이런 측면에서 최근 봉제업계에 일어난 의미 있는 변화 한 가지를 소개했다. 봉제업계 종사자의 요구에 힘입어 봉제 기술 자격시험이 신설됐다고 했다.

그래서 국가기술자격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 알아봤다. 산업인력공단은 지난 2024년 6월부터 9월까지 '봉제기능사 국가기술자격 종목 개발 연구'를 진행했다. 이후 준비 과정을 거쳐 올해 정기 기능사 3회 시험부터 봉제기능사 시험을 시행할 예정이다.

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큰 변동 사항이 없으면 2026년 정기 기능사 3회에 봉제기능사 시험을 처음 시행할 예정"이라며 "아직 공고를 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신설된 자격시험이 봉제업계에 신규 인력을 유입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낼 거로 기대했다.

그는 "(자격시험이) 저희 기성세대들보다도 봉제나 패션을 배우는 젊은 세대들에게 필요하다"라며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나 젊은 세대는 자격증 하나가 사회생활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우중 지회장과 대화를 마무리할 때까지 재봉틀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봉제인들의 노력과 바람을 듣고 난 후 시끄럽던 소음은 희망찬 울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