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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외국인 팔았는데 비중은 최고…코스피 수급의 역설

하지만 AI 서버에 쓰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에서는 글로벌 빅테크와의 3~5년 장기 공급계약이 늘어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일부 계약에 가격 변동 폭을 제한하거나, 계약금 비중을 높이는 조건이 붙은...

외국인 팔았는데 비중은 최고…코스피 수급의 역설

반도체 매도 속 평가액 증가…자금은 전력·조선·방산으로 이동

사진=신나은 기자

[뉴스클레임]

외국인 투자자가 5월 들어 코스피에서 대규모 순매도를 이어가고 있지만 시가총액 기준 보유 비중은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수 차익실현과 종목 교체 매매가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AI(인공지능) 인프라와 조선·방산 등 공급 확대에 시간이 걸리는 업종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6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외국인은 5월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 10조원대 중반 규모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연일 “역대급 매도”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매도 강도가 컸지만,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39%선을 넘어 최근 수년 내 가장 높은 수준까지 회복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규모 매도에도 보유 비중이 줄지 않은 배경에는 대형 반도체주의 영향이 컸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들어 AI 투자 기대를 타고 급등하며 코스피 내 시가총액 비중을 크게 늘렸다. 외국인이 두 종목을 집중적으로 팔았지만, 주가 상승 폭이 워낙 커 남아 있는 물량의 평가액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외국인이 반도체 핵심 종목에서 차익실현에 나선 것은 맞지만, 주가가 단기간에 크게 오르면서 지분율이 다소 낮아져도 평가액 기준 비중은 유지되거나 확대될 수 있다”며 “단순 순매도 금액만 보면 ‘탈(脫)한국’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구성 종목과 업종 비중이 재편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매도의 성격을 두고는 지수 리밸런싱과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글로벌 주가지수 편입 비중 변화에 맞춘 기계적 매매와 함께, 한 달여 사이 반도체주가 수십 퍼센트씩 오르자 이익을 확정하려는 매물이 동시에 나왔다는 것이다.

관심을 끄는 부분은 외국인이 어디에서 돈을 빼고 있는지가 아니라, 어디에 새로 돈을 넣고 있는가 하는 대목이다. 최근 외국인 순매수 상위 종목을 업종별로 묶어보면 전력 인프라, 조선·해양, 방산, 플랜트, 반도체 후공정·부품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눈에 띈다. 모두 설비 투자와 인허가, 생산능력 확충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이른바 ‘공급 병목’ 업종에 해당한다는 점에서다.

AI 데이터센터 확대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는 이런 흐름에 힘을 보태고 있다. 국내에서는 원전·가스발전, 변압기·차단기 등 송배전 설비를 보유한 기업들의 수주가 늘어나고, 관련 종목에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되는 모습이 관찰된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AI 투자가 소프트웨어와 모델에 머무르지 않고 전력망, 냉각, 변압기 같은 하드 인프라로 번지고 있다”며 “이 분야는 수십 년 축적된 공정 경험과 공급망, 인증, 운영 노하우가 함께 따라붙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조선과 방산, 대형 플랜트 업종 역시 공통적으로 다년 계약 기반의 매출 구조를 갖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대형 선박과 무기 체계, 원자력·가스 플랜트 프로젝트는 한 번 수주하면 수년치 매출이 사실상 잠기는 형태다. 시장에서는 “분기마다 가격이 다시 매겨지는 경기민감 업종보다, 장기간 계약으로 수익이 고정되는 업종에 대한 선호가 강해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반도체 안에서도 가격·계약 구조의 변화가 감지된다.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는 분기마다 평균판매단가(ASP)가 바뀌는 대표적인 단기 가격 민감 산업이었다. 하지만 AI 서버에 쓰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에서는 글로벌 빅테크와의 3~5년 장기 공급계약이 늘어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일부 계약에 가격 변동 폭을 제한하거나, 계약금 비중을 높이는 조건이 붙은 것으로 전해진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변화는 AI 확산 이후 ‘가격이 어떻게, 어떤 주기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자산 선호도가 갈리는 현상으로도 해석된다. 과거에는 메모리 반도체처럼 분기마다 가격이 재조정되는 자산이 대표적인 병목 산업으로 평가받았다면, 이제는 원전·조선·방산·전력 인프라처럼 다년 계약으로 가격이 사실상 고정되는 자산과, 장기 공급계약을 맺는 반도체 일부가 한 축을 이루는 구조라는 것이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외국인 수급을 보면 매도 규모만으로 ‘외국인이 한국에서 빠져나간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보유 비중, 업종별 수급, 장기 계약 기반 실적 가시성이 있는 업종으로의 자금 이동 여부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관건은 AI 시대에 가격 결정권을 쥐는 자산이 어디냐는 점이며, 지금은 소프트웨어 안팎에서 그 후보를 가려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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