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23일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선고 주문을 듣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7부(구회근 부장판사)는 ‘명태균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오 시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서울고등법원 제공=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에 이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도 항소심 무죄를 이끌어낸 재판장은 구회근(58·사법연수원 22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다.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 두 사건에서 1심 유죄 판단을 뒤집은 그는 과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반면 신약 개발을 둘러싼 청탁 사건에서는 1심보다 형량을 높여 피고인을 법정구속했다. 서로 다른 사건에서 나온 판결을 살펴보면 구 부장판사가 주목받는 이유와 주요 법관 경력을 확인할 수 있다.
24일 법조계와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구 부장판사는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순천고와 연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 22기를 수료했으며, 1996년 수원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사법연수원 교수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광주지법 순천지원장, 광주고법 부장판사 등을 거쳐 2019년 서울고법에 부임했다. 올해 2월부터는 선거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고법 형사7부에서 재판을 맡고 있다. 고 윤재식 전 대법관의 사위이기도 하다.
▶윤석열 이어 오세훈도 무죄…엇갈린 1심 판단 뒤집어
최근 그가 주목받은 것은 명태균씨의 여론조사를 둘러싼 윤 전 대통령과 오 시장의 형사재판이다. 두 사건 모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쟁점이었지만, 법원이 판단해야 할 구체적인 행위에는 차이가 있었다.
먼저 서울고법 형사7부는 지난 7일 윤 전 대통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명씨로부터 58차례에 걸쳐 2억7천440만원 상당의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1심은 징역 2년을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여론조사를 실시하거나 무상으로 제공하는 문제를 놓고 윤 전 대통령 부부와 명씨 사이에 사전 협의나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명씨가 제공한 조력을 정치적 이익으로 평가하는 것만으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봤다.
이어 지난 23일에는 오 시장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오 시장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조사 비용 3천300만원을 후원자 김한정씨가 대신 부담하도록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는 유죄가 인정돼 시장직을 잃을 수 있는 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은 검찰의 입증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오 시장이 명씨에게 구체적으로 여론조사를 요청하고 그 대가를 지급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명씨의 진술을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자료도 부족하다고 봤다. 유죄라는 의심이 남더라도 검찰이 혐의를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면 피고인에게 불리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형사재판의 원칙도 제시했다.
공판 과정에서 구 부장판사가 증인의 답변을 직접 정리하고 신문을 통제한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오 시장 사건에 증인으로 출석한 명씨가 질문의 핵심에서 벗어난 설명을 이어가자, 재판부는 여러 차례 답변을 간결하게 하고 질문에 집중하라고 요구했다.
▶위안부 피해자 손 들어주고 세월호 사건도 판단
그의 판결 이력을 정치 관련 사건에만 한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과거 다른 사회적 쟁점에서도 주목받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에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항소심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보고 시각을 허위로 기재해 국회에 제출한 혐의와 관련해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단을 유지했다.
2023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과 이용수 할머니 등 국내 피해자 16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1심 판단을 뒤집고 일본 정부가 피해자 1인당 위자료 2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법적 공방에서도 판단을 내렸다. 2024년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수험생 등이 제기한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에서 신청을 기각·각하했다. 당시 결정문에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의사들의 파업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적절한 수단도 아니라는 취지의 지적이 담겼다.
▶제넨셀 사건선 징역 4년…청탁 대가 인정해 법정구속
올해 9월에는 제넨셀 창업자 강모씨의 신약 개발 관련 청탁 사건 항소심에서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씨에게 징역 4년과 벌금 4천만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 사건은 강씨가 브로커 양모씨를 통해 김승원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을 청탁하고, 그 대가로 양씨에게 투자금 6억원을 지급했다는 의혹에서 비롯됐다. 1심은 강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지만, 6억원이 청탁의 대가라는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단을 달리했다. 강씨가 양씨에게 건넨 6억원을 알선 청탁의 대가로 인정하고 형량도 높였다. 김 전 후보자가 신약 개발을 통한 경제적 이익의 규모를 알면서 관련 요청에 협조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두 건에서는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가 충분한지를 따져 무죄를 선고한 반면, 제넨셀 사건에서는 청탁 대가가 인정된다고 보고 더 무거운 책임을 물은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일본 정부의 배상 의무를 인정했다.
구 부장 판사가 주요 판결마다 다룬 법적 쟁점은 서로 다르다. 이는 판결 결과만으로 성향을 단정하기보다 각 사건에서 법원이 어떤 사실관계와 증거를 근거로 결론을 내렸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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