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오래된 미래-부산근현대역사관] 지하 금고 빗장 여니 문화 발길…근대유산 ‘새 가치’를 입다

지난 2024년 가을 찾은 부산비엔날에서 인상적이었던 곳은 메인 전시장 부산현대미술관이 아닌, 원도심에 자리한 한 건물의 지하 공간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철제 창살과 육중한 이중 철문으로 둘러싸인 지하 금고는 어엿한 전시장으로 변신해 있었다.

[오래된 미래-부산근현대역사관] 지하 금고 빗장 여니 문화 발길…근대유산 ‘새 가치’를 입다

[오래된 미래-부산근현대역사관] 지하 금고 빗장 여니 문화 발길…근대유산 ‘새 가치’를 입다

[소멸 위기 원도심 불 밝히다]

1963~2013년 사용된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부산시, 100억원 매입 리모델링 후 2024년 개관

본관, 은행 구조 살린 금고 미술관·역사 전시실

별관, 옛 동양척식주식회사·미국 문화원 건물

1만여권 자료 보유한 특화도서관·인문학 거점

야구도시·피란 수도 등 정체성 살린 기획전 눈길

2026년 09월 01일(화) 20:20

한국은행 부산본부 지하 금고를 리모델링한 ‘금고미술관’에는 옛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현재 열리고 있는 ‘해양수도 부산-파도를 넘어 미래로’전 모습.

지난 2024년 가을 찾은 부산비엔날에서 인상적이었던 곳은 메인 전시장 부산현대미술관이 아닌, 원도심에 자리한 한 건물의 지하 공간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철제 창살과 육중한 이중 철문으로 둘러싸인 지하 금고는 어엿한 전시장으로 변신해 있었다. 작품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독특한 ‘공간’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금고미술관’이다.

이 매력적인 장소는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로, 부산시가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2024년 부산근현대역사관 본관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부산근현대역사관은 본관과 이웃한 별관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 2013년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먼저 문을 연 별관은 동양척식주시회사 부산지점, 미국문화원으로 사용되던 역사적인 건물이다.

부산근현대역사관은 부산의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원도심 대표 역사문화 거점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본관 42만명, 별관 12만명 등 모두 56만여명이 다녀갔다. 올해도 평일에는 300~400명, 주말이면 2000~3000명이 찾을 정도로 개관 2년만에 자리를 잡았다.

부산비엔날레가 열리기도 했던 금고미술관에서는 다양한 전시가 열린다.

◇은행 건물 그대로 살린 ‘본관’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용두산 타워 바로 아래에 자리한 역사관은 도시의 오랜 역사를 지켜본 곳이다. 본관은 1963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은행 부산본부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 쇠락해가는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 애쓰던 부산시는 2015년 100억원을 들여 건물을 매입한 후 활용방안을 두고 고심했다. 2016년 공청회를 시작으로 숱한 논의를 거치면서 쇠퇴하는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부산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지역의 특성을 활용해 근현대사를 집중 조명하는 공간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부산근현대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공간으로, 어떻게 역사를 기록하고 이어갈 것인가 고민하며 공간구성과 콘텐츠 제작에 나섰다.

본관은 문화재(부산시 문화재자료 제70호)로 지정돼 있어 원형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리노베이션을 진행, 최대한 옛모습을 살렸다. 증축은 관람 동선의 편의를 위해 상행 에스컬레이트만 놓는 방향으로 최소화했고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체험 중심 공간 ‘어린이 체험실 들락날락’을 배치했다.

본관은 ‘은행’이라는 ‘장소특정적 역사’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은행의 은행’이었던 한국은행에는 보관과 안전이 철저히 갖춰진 금고가 반드시 필요했고 지하와 1층, 2층에 설치된 8개의 금고는 공간에 다양한 스토리를 불어넣었다. 두께가 50㎝, 강철 약 300㎏에 달하는 1층 서쪽 금고문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역사적 유물이며 49.16㎥(약15평) 규모의 공간에는 기념품숍이 들어서 있다. 문서를 보관하던 또 다른 1층 금고는 한국은행 건물의 역사와 당시 자료를 소개하는 아카이브실로 쓰인다.

1층은 과감히 카페로 활용, 방문객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관공서가 1층 대부분의 공간을 시민공간으로 개방한 것은 드문 경우다. 대형 커피 체인의 입점이 논의되기도 했지만 지역의 토종업체가 운영하는 게 의미있다는 의견이 우세해 부산 업체 ‘CASA BUSANO’가 5년 임대로 들어왔다.

2~4층은 부산의 생활상과 역사를 알려주는 전시공간이다. 3~4층 상설전시실에서는 ‘근대도시 부산’, ‘현대도시 부산’을 주제로 다양한 전시품을 만날 수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쓰였던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

2층 기획전시실은 부산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기록하는 집중전시가 돋보인다. 현재는 6·25당시 대한민국의 수도였던 역사를 다룬 ‘피란수도 부산유산’전이 열리고 있으며 관련 유산들은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중이다. 개관 전시였던 ‘마! 쎄리라 야구도시 부산의 함성’전은 야구의 도입에서 고교야구, 아마야구 전성기를 거쳐 프로야구에 이르기까지 부산 야구의 발자취를 따라간 전시로 화제를 모았다.

또 가요 ‘동백아가씨’ 발표 60주년을 맞아 노래를 탄생시킨 부산 출신작곡가 고(故)백영호와 이미자의 작품 활동을 함께 소개한 ‘동백아가씨’전, ‘부산의 보물섬 영도’전, 부산 사진작가의 시선으로 1970~1990년 풍경을 담아낸 ‘부산의 기억, 도시 스케치’전 등도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이 흥미로워하는 공간은 지하금고를 그대로 살린 ‘금고미술관’이다. 한때 화폐와 금괴를 보관하던 견고한 금고들은 예술과 역사가 교차하는 장소로 다시 태어났다. 보안용 창살과 육중한 문, 이중 통로, 당시의 형광등과 배관시설 등을 그대로 살린 공간은 시간이 멈춘듯하다. 지하금고 중 원형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4호 금고, 미발행 화폐와 고액권을 보관하던 1호 금고 등이 모두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열리고 있는 ‘2050해양수도부산, 파도를 넘어 미래로’는 부산항 개항 150주년 기념전시다. 또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을 현대미술의 시선으로 해석한 ‘신선한 유산, 예술로 미래를 열다’전, 부산근현대역사관과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공동 기획한 2025 부마민주항쟁 제46주년 기념기획전 ‘ㅂㅁ’, 지하금고의 건축·시설·장식에 담긴 역사적 맥락을 소개하고 청년 예술가들의 작품을 연계한 역사·예술 융복합 투어형 전시 ‘금고, 커넥티드’전 등이 인기를 모았다.

부산근현대역사관 1층 카페.

“리모델링 과정에서 지하 금고의 흔적을 살리려 노력했습니다. 부산근대역사관은 원도심의 기록을 이어가는 공간입니다. 건물의 정체성과 시대의 흐름이 맞아떨어지면서 원도심이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부산근현대역사관 이창훈 아트 디렉터는 “부산의 근현대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이기도 하다”며 “원도심을 찾는 관광객들이나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고 말했다.

◇원도심 인문학 거점, ‘별관’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한국전쟁시 부산미국공보원 및 주한미국대사관을 거쳐 미국문화원으로 활용됐던 별관은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다.

별관(부산시 지정기념물 제49호)은 근대 건축에 서구양식이 도입되던 시기의 경향을 살필 수 있는 초기 모더니즘 건축양식의 건축물로 건물 자체가 볼거리다. 외벽 중앙은 넝쿨 문양의 부조로, 창호 주변은 연꽃 모양의 부조로 장식돼 있으며 노출된 2층 천장을 통해 신축 당시의 철골 구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여자화장실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당시 응접실의 천장 몰딩과 등이 복원돼 있어 당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또 시기별로 추가된 다양한 형태의 기둥 등을 통해 건축물의 변화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별관은 1만여 권의 부산 지역 관련 도서 및 아카이브 자료를 보유한 특화 도서관이자, 부산에 있는 인문 단체(공간)와 연계해 공동 기획 행사를 개최하는 등 원도심 인문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 예술, 사상을 주제로 대담과 초청강연을 진행하는 ‘별관 살롱’, 지역 서점 및 문화공간과 협업하는 ‘모두의 별관’을 비롯해 1970~80년대 광복동 대중음악의 정체성을 살린 ‘광복레코드 페어:그룹사운드’ 등 원도심 특화콘텐츠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상설전시관에서 만나는 1960~70년대 부산의 모습.

지역사 아카이빙을 위한 다양한 기록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대가의 2세들’은 기억을 공유하는 대표 기획으로 구술, 대담, 기록을 통해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단행본도 출간했다. 올해는 매주 토요일 개항 150주년 기념 인문학토크와 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부산근현대문화관에서 깡통시장 야시장, 국제시장, 오픈런을 이어가는 이재모 피자 등 핫플레이스는 모두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대만과 중국발 크루즈가 입항하는 부산항 1부두도 가깝다. 취재간 날도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공간을 둘러보고 있었다. 현재 제 1부두 부근에는 오페라하우스가 건립중이며 해양수산부 건물도 들어선다. 지역의 역사를 품은 원도심은 이제 ‘미래’로 한발 내딛는 중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부산 글·사진 =김미은 기자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