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정 대전시장이 지방선거 당시 대표 공약으로 내걸었던 ‘대전형 고유가 피해 재난지원금’을 결국 사실상 철회했다. 시민 1인당 20만원을 지급하겠다던 약속은 취임 후 “대전시 재정 여건상 2000억원 이상을 투입하기 어렵다”는 설명과 함께 접혔다. 허 시장은 시민들에게 사과하고 온통대전 2.0의 캐시백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재정 현실을 무시한 채 무리한 지출을 강행하지 않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사안을 단순한 정책 수정으로 넘기기에는 공약을 둘러싼 과정이 너무 무겁다.
가장 큰 문제는 재원 부족이 취임 후 갑자기 드러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허 시장이 후보 시절 시민 1인당 20만원 지급을 약속했을 때부터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대전시장 후보 경선 당시 경쟁자였던 장철민 의원은 이 공약을 두고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재원 마련의 현실성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같은 당 경선 경쟁자조차 선거 당시부터 공개적으로 경고했던 셈이다.
그런데 허 시장은 시장이 된 뒤 “생각했던 것보다 대전시 재정 상황이 훨씬 어려웠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거 당시에는 왜 가능한 공약이라고 자신 있게 약속했는가. 시장 후보로서 대전시 재정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선거 과정에서 민생 공약의 정치적 효과를 앞세워 재정적 한계를 과소평가한 것인가.
시민 1인당 20만원 지급은 소규모 사업이 아니다. 허 시장 자신의 설명대로 2000억원 이상이 필요한 대규모 현금성 지원이다. 수천억원 규모의 사업을 대표 공약으로 내걸었다면 가용 재원과 추경 편성 가능성, 기존 사업 조정 여부까지 면밀하게 검토했어야 한다. 선거가 끝난 뒤에야 “시의 살림을 살펴보니 어렵더라”고 말하는 것은 시민 입장에서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선거 공약에 대한 신뢰다. 공약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후보가 유권자에게 제시하는 약속이다. 특히 시민 생활과 직접 맞닿은 현금성 지원 공약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선거 때는 고유가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을 위해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고, 당선 뒤에는 재정난을 이유로 철회한다면 앞으로 시민들은 어떤 공약을 믿어야 하는가.
허 시장은 온통대전 2.0의 캐시백 확대에 재난지원 성격을 담겠다고 밝혔다. 지역화폐를 활성화해 소비를 늘리고 소상공인을 돕겠다는 정책 방향은 검토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시민에게 일괄 지급하는 20만원 직접 지원과 소비에 따라 혜택을 제공하는 캐시백은 지원 방식과 체감 효과가 다르다.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고 기존 공약이 이행된 것은 아니다.
물론 정책은 현실에 따라 수정할 수 있다. 재정 상황이 실제로 어렵다면 무리한 현금성 지원을 강행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책임 있는 선택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판단을 왜 선거 전에 하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당선 뒤 현실을 확인하고 공약을 수정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선거는 실현 가능한 정책을 경쟁하는 장이 아니라 무책임한 약속을 앞다퉈 내놓는 경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허 시장은 이번 철회를 계기로 시민들에게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공약 당시 어떤 재정 검토를 거쳤는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계획이었는지, 당내에서 제기된 재원 부족 경고를 왜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는지를 밝혀야 한다. 사과 한마디로 끝낼 일이 아니다. 왜 약속했고 왜 지키지 못했는지, 그 답변과 책임에서부터 시민과의 신뢰를 다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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