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4천km 항해·연합 운용·장기 유지체계…무기 성능 넘어 플랫폼 신뢰성이 경쟁력으로
도산안창호함의 캐나다 에스퀴몰트 해군기지 입항 모습(Korea IT Times 재현 이미지). 한국 잠수함 최초의 태평양 횡단으로, 장거리 운용과 연합 플랫폼 역량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캐나다 빅토리아—
국산 3,000톤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SS-Ⅲ)이 약 1만 4,000km를 항해해 캐나다 서부 에스퀴몰트 해군기지에 입항했다. 한국 잠수함의 첫 태평양 횡단이자 최장 항해 기록이다. 그러나 이번 항해의 의미는 ‘최초’라는 기록 자체를 넘어 K-방산이 무엇을 수출하기 시작했는가에 주목된다.
도산안창호함은 지난 3월 25일 진해를 출항해 괌과 하와이를 거쳐 캐나다 빅토리아 '에스퀴몰트 해군 기지'에 24일 도착했다. 3,000톤급 장보고-Ⅲ(SS-Ⅲ) 1번함인 이 잠수함은 한국 독자 기술 기반으로 설계·건조된 플랫폼으로, 길이 약 83m 규모에 장기간 잠항과 장거리 작전을 전제로 개발됐다. 이번 전개에는 3,100톤급 호위함 대전함도 함께 참여했다.
도산안창호함의 태평양 횡단은 잠수함과 방산업의 경쟁 기준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과거 잠수함 경쟁은 속도와 소음, 무장 성능 같은 개별 제원 중심이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잠수함 시장의 평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얼마나 멀리 가는가보다 얼마나 오래 운용되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동맹 해군과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되는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잠수함이 단순 무기체계를 넘어 센서·통신·정비·지휘통제와 연동되는 ‘전략 플랫폼’으로 재정의되고 있다는 의미다.
도산안창호함의 항해는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이 전략 플랫폼을 실제로 운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번 항해는 그 질문에 대한 실증 사례로 볼 수 있다. 도산안창호함은 진해를 출항해 괌과 하와이를 거쳐 캐나다까지 이동하는 동안 장거리 항해, 중간 기항, 승조원 운용, 장비 점검, 보급·정비, 연합 통신 절차를 실제 작전 환경 속에서 수행했다. 잠수함 수출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설계도상 성능이 아니라, 수천 km 밖 해역에서도 플랫폼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동맹 해군과 같은 절차로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능력이다.
예컨대 캐나다 해군 잠수함사령부 승조원 2명이 하와이 구간부터 도산안창호함에 편승한 것은 단순한 상징 행사가 아니다. 외국 해군 인력이 실제 항해 구간에서 한국 잠수함의 운용 절차와 거주성, 지휘통제 방식, 장비 신뢰성을 직접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기에 연합 C4I(지휘·통제·통신·정보) 교신과 캐나다 해군과의 협력훈련이 더해지면, 도산안창호함은 ‘한국이 만든 잠수함’이 아니라 ‘동맹 작전망 안에서 작동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평가받게 된다.
이 때문에 이번 항해는 군사 이벤트이면서 동시에 ‘실해역 쇼케이스’의 성격을 갖는다. 제원표나 전시장이 아니라 실제 바다 위에서 장거리 항해 능력, 장비 신뢰성, 연합 운용성, 정비·보급 체계를 입증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미는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에서도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이어진다. 캐나다는 최대 약 60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차세대 잠수함 사업을 추진 중이다. 8~12척 규모의 잠수함 확보와 함께 수십 년간의 유지·보수·정비(MRO)를 포함하는 대형 사업으로, 한국과 독일 등이 경쟁 후보로 거론된다.
이 지점에서 K-방산의 성격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한국 방산 수출이 가격 경쟁력과 빠른 납기에 강점을 보였다면, 최근에는 조선·배터리·전자·디지털 유지보수 체계가 결합된 통합 플랫폼 공급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난다. 잠수함 수출 역시 선체 판매가 아니라 운용 데이터, 정비 체계, 승조원 훈련, 공급망 관리까지 포함한 장기 서비스 산업에 가까워지고 있다.
도산안창호함의 태평양 횡단은 결국 하나의 방향을 보여준다.
한국 방산은 더 이상 ‘잘 만든 무기’를 수출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는다. 경쟁의 기준은 플랫폼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연결하며, 얼마나 전략적 네트워크 안에서 작동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있다. 이번 1만 4천 km 항해는 그 변화가 카탈로그 성능이나 전시 홍보가 아니라 실제 바다 위에서 검증되고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다.
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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