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사진 /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조금은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디론가 밀려가듯 살아내던 나날 속에서, 문득 멈춰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도 없이, 이유도 없이, 그저 몸 하나를 기차에 실어 보냈다. 행선지는 오래전부터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던 이름, 춘천이었다.
그때의 기차는 느렸다. 창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이 빠르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았다. 한강은 늘 그 자리에서 흐르고 끝없이 이어지는 철길은 누군가의 기억을 조용히 끌고 갔다. 어느 해 오월의 바람, 어쩌면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사랑 같은 것들이.
예전에 서울에서 출발해서 춘천 가는 길은 경춘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점점 물가를 끼고 돌았다. 그 굽이마다 시간은 느려졌고, 도착은 늦어졌지만 추억은 그만큼 쌓여 갔다. 그리고 그 길목 어딘가에서, 늘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있었다. 의암호 위, 신연교를 건너며 보이던 작은 인어였다. 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있으면, 인어는 어느 순간 시야에 들어왔다가 이내 사라졌다. 마치 졸다가 잠깐 꾼 꿈처럼. 눈을 뜨면 이미 춘천이 가까워져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시절의 춘천은 늘 그렇게, 한 장면의 여운처럼 도착하곤 했다.
2025년 사진 /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시멘트로 빚어진 그 인어는 1971년에 처음 그 자리에 놓였다. 바다를 본 적 없는 춘천이 바다를 닮고 싶어 만든 상징이었다. 먼 나라 코펜하겐의 작은 인어동상이 도시의 얼굴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춘천도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내륙의 호수를 ‘바다’라 부르며, 그 위에 한 존재를 앉혀 두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세로.
그래서였는지, 사람들은 인어를 단순한 조각으로 보지 않았다. 연인들은 거기에 손을 대면 사랑이 이어진다는 소문도 있었다. 사실 그것은 인어가 만들어 준 기적이 아니라, 그 길 위의 공간이 허락해 준 감정이었을 것이다. 느리게 도착하는 길,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했던 순간들을 제공해준 것뿐이다.
그러다가 길이 바뀌었다. 2009년, 서울과 춘천을 잇는 고속도로가 열리면서 사람들은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예전의 길은 점점 ‘옛길’이 되었고, 물가를 따라 돌아가던 느린 시간도 함께 사라졌다. 이제 춘천은 가까워졌지만, 그만큼 도착은 가벼워졌다. 설렘은 줄어들고, 기억할 장면도 짧아졌
인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다만, 더 이상 스쳐 지나가며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 세월이 흐르며 시멘트는 닳고, 인어의 몸은 부식되었다. 결국 2013년, 단단한 청동으로 다시 태어났다. 형태는 같지만, 어쩌면 그 안에 담긴 시간은 전혀 다른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어동상 사진을 찍다가 문득 상상한다. 인어가 어느 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의암호로 몸을 던졌다면 어땠을까. 바위를 떠나 물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더 이상 상징이 아닌, 숨 쉬는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결은 잠시 흔들리다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잦아들 것이다. 어쩌면 이미 그런 일은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경춘국도를 따라 느리게 춘천으로 향하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인어는 몇 번이고 그렇게 뛰어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앉아 있었을 것이다.
춘천에 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떠오르는 얼굴, 이미 지나갔지만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시간. 그리고 아직도, 그 길 위 어딘가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존재가, 조용히 앉아 있을 것만 같다.
이로운넷=이로운관리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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