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형 교수
최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 정책토론회에서, 전남개발공사를 ‘전남광주전력공사’로 정관을 변경해 지방공기업으로 설립하고 이를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공급 전담기관으로 지정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사실 ‘전남광주에너지공사’는 내가 선거 기간 동안 해당 후보에게 직접 제안했던 정책 구상이었다. 반도체 클러스터 성공의 4대 요소로 전력·용수·부지·인재를 꼽은 문제의식은 정확하다. 그러나 그 해법으로, 아직 설립조차 되지 않은 신설 지방공기업에 국내 최대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공급을 통째로 전담시키자는 발상은, 전기공학적으로도 법·제도적으로도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반도체 팹은 국내에서 가장 까다로운 전력수요처다. 극미세공정 장비는 수십 밀리초 단위의 순간전압강하(voltage sag)에도 진행 중인 웨이퍼 전체가 폐기될 수 있어, 사실상 무정전에 가까운 전력품질이 전제되어야 한다. 2018년 3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는 단 40분의 정전으로 약 500억원의 피해가 발생한 바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통합 전력공기업이자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대형 전력회사인 한국전력공사조차, 154kV·345kV 기간계통과 보호협조, 이중전원 체계를 총동원하고도 이러한 초고신뢰도 공급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매번 힘겨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현실이다. 반도체 강국인 대만 역시 TSMC 등 첨단 팹의 전력은 국가 전력공기업인 타이파워(Taipower)가 전담하며, 지방정부 산하 별도 조직에 이를 맡기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어렵다.
그런데 계통운영 경험도, 보호협조·단락용량 설계 역량도, 대규모 송배전 투자 재원도, 비상시 광역 융통 능력도 아직 갖추지 못한 신설 지방공기업에 국내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공급을 전담시키자는 구상은 기술적으로 지나치게 무리한 설계다. 반도체 팹 하나의 순간정전이 조 단위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트랙레코드 없는 기관에 국가 핵심산업의 전력 공급 전체를 맡기는 것은 위험한 도박에 가깝다. 초기 투자재원을 지방채로 조달할 경우 지자체 재정건전성에도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가 한전과 신설 공기업 사이에서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법·제도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전기사업법 체계상 배전·판매 사업은 엄격한 면허 요건과 계통 관할 체계를 전제로 하며, 한국전력의 기존 송배전망 및 계통운영 체계와의 관계 정리 없이 특별법으로 이를 우회해 지자체 공기업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는 방식은 형평성 및 독점규제 원칙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 이는 향후 위헌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제도 설계이며, 메가특구 특별법과 국가인프라기본법 등 관련 입법을 추진하기 전에 반드시 법리적 검증과 산업통상자원부·전력거래소 등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야 할 대목이다.
그렇다고 지역 에너지공기업의 설립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전남·광주 지역은 태양광과 해상풍력 잠재량이 풍부해, RE100 이행을 지원할 지역 에너지공기업의 역할은 분명히 존재한다. 전남광주에너지공사(가칭)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육성, 기업과의 PPA·REC 중개, 분산에너지 특구 지원, 계통 접속 인허가 지원 등에서 착실히 트랙레코드를 쌓아가는 것이 순리다. 이것이 지역과 국가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현실적 경로이며, 검증되지 않은 성급한 확장은 오히려 지역 공기업에 대한 신뢰만 잃을 위험이 크다.
결론적으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안정적 전력 공급은 한국전력의 기간계통을 기반으로 하되, 전용 변전소와 이중전원, ESS 기반 순간정전 보상장치, 직접선로 등 특례를 신속히 지원하는 제도 정비로 풀어가야 한다. 아직 걸음마도 떼지 않은 신설 공기업에 국가 반도체 산업의 명운을 통째로 맡기자는 발상은, 의욕이 앞선 위험한 시도임을 분명히 지적하고 싶다.
이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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