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기자 일동, 언론자유 수호 선언… MBC 기자들도’.
경향신문 1974년 10월25일자 1면에 실린 기사다. 기사에 따르면 경향신문 기자 120명은 “취재 편집 보도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계속 투쟁하겠다” 등 내용을 담은 3개 결의항을 채택했다. 1면에는 ‘동아일보에서도 선언, 신문제작 늦어져’ ‘한국일보 기자들도’ ‘조선일보도 결의’ ‘중앙매스컴(현 중앙일보 및 JTBC)도 채택’ ‘합동·동양통신(현 연합뉴스)서도’ 등 5건의 단신기사가 이어진다. 기사들은 지면 중앙에 배치돼 있다. 결의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다음날인 10월26일자 1면에는 언론수호 선언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기사가 후속 보도됐다. 전남매일, 부산일보, 국제신보(현 국제신문), 매일신문, 강원일보, 춘천문화방송 등이다. 한국기자협회는 “언론수호운동 적극 뒷받침하겠다”는 성명을 냈다.
기관원들이 상주하며 빨간 줄을 그으며 기사를 검열하던 시대, 기자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폭행당하고 쓰레기장에 내버려지던 엄혹한 때였다.
1974년 ‘언론자유 수호 선언’
유신독재 맞선 기자 이야기 중심
시사방송에 많이 나왔던 소재
K콘텐츠, 강점은 표현력과 장르
선언을 하기로 한 편집국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그 기사를 쓰는 기자의 심정은? 기사를 출고하는 데스크는? 그리고 이를 인쇄한 윤전국 직원은? 영화 <암살자(들)>을 보는 내내 비슷한 질문에 마주했다. 그 물음이 향하는 끝은 간명했다. ‘나였다면?’
영화 <암살자(들)>을 개봉 첫날 봤다. “기자들이 보면 생각할 게 많아요.” 시사회를 다녀온 영화담당기자가 지나치듯 툭 내던진 말 한마디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이 중심이지만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유신독재에 맞선 기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영화 속 동성일보 기자들은 끝내 해직으로 이어졌던 동아자유언론실천투쟁위원회(동아투위)가 떠오르게 한다. 재래식이라 조롱받는 레거시 언론들이 그래도 이 땅에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가져오는 데 일조를 했었다는 것을 관객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정도의 감상평을 갖고 영화관을 나왔다.
그랬던 영화가 역대급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와 관련된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배우들은 레드카펫에 서지조차 못했다. 주연배우 집으로 극우단체들이 몰려갔고, 그와 관련된 광고는 줄줄이 중단됐다. 경북 구미에서는 주요 영화관들이 영화 상영을 중단했다고 한다. 점입가경이다.
육영수 여사 피격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이미 수차례 방송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 <PD수첩>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다뤘다. 불편해할 수는 있어도 집단적이고 물리적인 행동으로까지 이어질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파문이 증폭되는 중심에는 정치권이 있다고 본다. 국민의힘은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 이 영화 상영을 금지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물론 영화제 측은 “제작진의 창작적 비전을 존중한다”며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수진영의 집단적 대응은 블랙리스트 파문을 떠올리게 한다.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계에 덧씌웠던 블랙리스트 파문은 K콘텐츠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성을 위축시켰다는 점에서 해악이 적지 않았다. 사실상 사전검열로 작용하면서 투자는 줄었고, 제작은 늦춰졌다. 산업 전반적으로 중국의 강한 추격을 받는 상황에서도 K콘텐츠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하지 못하는 높은 수준의 비판과 풍자에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중국 배우 판빙빙은 “한국 감독·배우들이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자유로운 표현력과 다양한 장르 덕분”이라고 말했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는 거저 온 것이 아니다. 유신과 군부독재, 불법계엄에 맞선 양심들의 희생이 있었다. 영화 <암살자(들)>은 현대사의 그 한 조각을 다루고 있다. 그 자유를 지금 진보도, 보수도 누리고 있다.
<건국전쟁2>가 논란이 됐을 때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영화를 반대하는 사람도 존중한다. 그러나 영화 상영을 권력이 막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딱 그 정도면 된다. 거위의 배는 가르지 말자.
박병률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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