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얼굴에 집착하지 않는 '열린 세상' [삶과 문화]

이미 우리는 일상에서 모습이 없는 인공지능(AI) 에이전트와 대화하며 그에게 인간 친구보다 더한 친밀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말이다. 역설적으로 얼굴에 대한 집착은 우리 사람들 사이에서 더 커지고 있다. 사람, 동물...

얼굴에 집착하지 않는 '열린 세상' [삶과 문화]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중 외계 생명체. 소니픽처스 제공

"얼굴은 과대평가됐어."

최근 극장에서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다가 격하게 공감한 대사다. 주인공이 우주에서 마주친 처음 보는 형상의 외계 생명체를 요리조리 살펴보며 중얼거린다. 영화 속 외계인은 얼굴이 없다. 당연히 눈도 없다. 바위처럼 거친 질감에 비정형의 각진 모습이다. 지구인이 보기에는 귀여움과 친근감을 느낄 만한 어떤 시각 효과도 갖고 있지 않은 낯선 존재와의 진한 교감을 그린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가 이것인 데는 뇌인지과학적으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보는 수많은 대상 중 얼굴이 가장 특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학적 증거는 차고 넘친다. 갓 태어난 아기들도 다른 그림에 비해 얼굴 그림을 좀 더 오래 바라보며, 대부분의 우리는 얼굴에 담기는 미묘한 표정 변화를 통해 그 사람의 감정을 알아채는 데 일가견이 있다. 얼굴이 사회적 존재에게 지니는 의미를 반영하는 진화의 증거이기라도 한 양,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 뇌에는 얼굴을 볼 때만 더 크게 반응하는 신경세포가 모인 영역이 따로 있다. '방추상회 얼굴영역'이라 불리는 이 뇌 부위가 망가지면, 시력에 문제가 없어도 얼굴만 인식을 잘 하지 못하는 '얼굴실인증'이 생길 수 있다. 심지어 우리는 눈이 녹다 만 땅이나 달 표면, 혹은 잘못 구워진 빵처럼 아무 의미 없는 대상을 얼굴로 보기까지 하는데, 이런 현상을 '파레이돌리아'라고 한다.

아마도 영화의 원작자와 감독은 관계맺기에서 얼굴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관심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미지의 영역인 우주의 생명체를 그리면서도 피하지 못하는 자기중심적 시각을 비판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이는 다른 SF 영화를 떠올리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포인트다. 그간 영화 속 외계생명체 대부분은 얼굴이 있었다. 외계인 형상의 원형과도 같은, 둥근 역삼각형 얼굴에 큰 눈을 가진 '미지와의 조우' 속 생명체, 주름진 피부의 낯섬을 상쇄하고도 남을 일렁이는 눈망울의 'ET'는 물론이거니와 '에일리언'이나 '프레데터' 속 공격적인 외계인도 파충류나 곤충을 닮은 외모에 끈적한 액체를 뚝뚝 흘릴지언정 날카로운 눈이 있는 얼굴을 보여줬다.

유인 우주선 아르테미스 2호가 지구에서 가장 먼 곳까지 날아가 달의 저편 영상을 찍어 보내주고 있다. 우리가 속한 이곳이 아닌 곳에도 생명이 존재하며, 그 존재를 마주치게 될 날을 현실감 있게 상상해보게 된다. 그 존재가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이든 아니든 뭐가 중요할까. 이미 우리는 일상에서 모습이 없는 인공지능(AI) 에이전트와 대화하며 그에게 인간 친구보다 더한 친밀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말이다. 역설적으로 얼굴에 대한 집착은 우리 사람들 사이에서 더 커지고 있다.

사람, 동물, 생명을 지니지 않은 존재를 포함해 나와 전혀 비슷하지 않은, 내 기준에 전혀 아름답지 않은 대상에게도 마음을 줄 수 있는 열린 세상을 그려본다.

김채연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뇌인지과학자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